Opinion :신용호의 시선

유시민의 거짓말론

중앙일보

입력 2019.09.30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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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신용호 논설위원

신용호 논설위원

“정치인은 거짓말도 하지만 마음에 없는 말을 더 많이 한다. 정치하는 사람은 표를 얻어야 한다. 표를 얻으려면 환심을 사야 한다. 듣기 원하는 말을 해야 표를 준다. (중략) 내가 정치를 안 하니까 이런 말을 한다. 정치하면 맞아 죽는 거다. 정치할 때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을 해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서 온 사회가 거짓말을 믿게 된다.”

민주당서도 선긋는 유시민 발언
지나친 자기 확신과 편파로 일관
진중권 “조국사태 진영 문제 아냐”

유시민(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017년 6월 ‘알쓸신잡’에서 “정치인이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거짓말을 많이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한 ‘거짓말론’이다. 방송에서 편하게 정치인의 거짓말에 대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썰전’에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후 예능 프로에서 호감도를 높였다. 그 덕에 지난해 연말부턴 여권의 대권 후보로 거론됐다.

유시민의 거짓말론을 다시 꺼내본 건 요즘 그의 언행 때문이다.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를 통해 정치에 발을 반쯤 담근 그는 ‘조국 호위무사’로 정치 깊숙이 들어왔다. 정계 복귀 계기라도 만들 기세다. 물론 그가 정치하겠다면 말릴 이유도 없고, 조국 편을 들겠다는 것도 그의 자유다. 하지만 문제는 이성을 잃은 듯한 그의 발언이다.

“(서울대 촛불 집회는) 한국당 패거리들의 손길이 어른어른하는, 물 반 고기 반이다”(8월 29일), “온갖 억측과 짐작, 추측, 희망 사항을 결합해 절대 부적격, 위선자, 이중인격자, 피의자라고 하는 것은 다 헛소리”(8월 31일), “조국을 주저앉히는 방법은 가족을 인질로 잡는 거다. 관자놀이에 총도 겨누고”(9월 13일), “(압수 수색 전 컴퓨터 반출은) 증거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검찰이 장난칠 경우를 대비”, “법원을 믿지 않는다. 과거 죄 없는 자들을 너무 많이 징역 살린 법원이고, 그 판사들이 그냥 다 있지 않나”(9월 24일)

알릴레오·라디오 등에서 한 말을 대충 모은 게 이 정도다. 그저께 창원에선 윤석열 검찰을 향해 “위헌적 쿠데타”란 표현도 썼다. 말이 바뀐 것도 있다. 2017년 5월 ‘썰전’에서 전원책이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윤석열에 대해 “아주 좁게만 보는 것 같다”고 하자 유시민은 “검사가 좁게 사건만 보면 되지 뭘 더 보나”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유시민은 얼마 전 “사건 자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맥락이 있는 데 윤 총장이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거짓말론을 얘기할 때 자신이 이런 말을 할 줄 알았을까. 내용 중 일부는 예언 수준이다. 유시민은 사실보다는 그의 말대로 지지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들이 듣기 원하는 말을 하고 있다. 발언 수위가 워낙 높고 자극적이어서 핵심 지지자들이 열광하기 제격이다. 듣기 원하는 말을 해야 표를 준다 했는데 유시민보다 더 입맛에 맞출 수는 없을 거다. 실제 정치권에선 “지지층 결집을 위해 중심에 섰다”는 평가가 공공연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을 해주는 것 때문에 온 사회가 거짓말을 믿게 된다 했는데 그런 건 고려라도 하고 얘기한 건가.

정도가 심하니 보니 민주당에서도 선을 긋고 있다. 공개적으로 “당원이 아니다”(우상호 의원), “(유 전 장관 말은) 우리 당하고는 관련이 없다”(송기헌 의원)란 반응이 나온다. 조국을 적극 방어하고 있는 민주당의 한 의원도 “한때 우리 당(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로까지 나왔지만 탈당해 국민참여당으로 갔고 경기지사 후보가 돼 한나라당에 패하는 등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했나. 마지막 당적도 정의당이다. 우리와 연관 짓지 말라”고 했다.

유시민은 지나친 진영논리에 빠져 있다. 스스로 알릴레오에서 “나는 편파적”이라고 할 정도니…. 지나친 편 가르기는 이편 저편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민주당에서도 젊은층·중도·무당층과 괴리감이 커질까 싶어 선 긋기를 하는 거다. 유시민의 조국 방어는 확증편향이다. 자기 확신이 강한 유시민의 정치적 행보는 탈당·출마 등의 과정에서 자신의 진영 마음에까지 못을 박은 경우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와 정의당을 홍보하는 팟캐스트(‘노유진의 정치카페’)를 함께 진행했던 진중권(동양대 교수)이 지난 27일 “조국 사태는 공정성과 정의의 문제지 결코 이념·진영으로 나뉘어 벌일 논쟁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백번 옳은 말이 아닌가. 진중권의 말이라면 곱씹어야 한다.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 자기 스스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인생을 자신만의 색깔을 내면서 살아가라고 격려했다.” 지난해 펴낸 『역사의 역사』의 에필로그에 유시민이 쓴 말이다. 책을 쓰며 배우고 느낀 것이라 했다. ‘자신만의 색깔을 낼, 스스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인생’이 설마 궤변을 앞세운 독하고 모질게 말하기는 아니길 바란다.

신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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