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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 소설가 한강에 큰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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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6~29일 스웨덴에서 열린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도서전이다.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된 올해 도서전에는 전 세계 38개국 출판 관계자들이 참가했다. 정아람 기자

26~29일 스웨덴에서 열린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도서전이다.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된 올해 도서전에는 전 세계 38개국 출판 관계자들이 참가했다. 정아람 기자

“애초에 우리는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주빈국 한국, 나흘간 다양한 행사 #K팝 이어 한국문학에 관심 고조 #김언수 소설 『설계자들』도 인기

27일(현지 시각) 스웨덴 예테보리의 스웨덴 박람회장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소설가 한강이 비극적인 역사와 개인의 연관성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이 세미나는 ‘사회역사적 트라우마’라는 주제로 펼쳐졌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어서 큰 이야기 같지만 내겐 그게 개인적인 책이다. 또한 『채식주의자』는 한 개인의 내면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치적인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광주 출신인 그가 2014년 펴낸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다 죽음을 맞은 중학생과 주변 인물의 참혹한 운명을 그린 소설이다. 2016년 맨부커상을 받은 소설  『채식주의자』는 가부장제에 짓눌려 개인을 잃어가는 한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26~29일 스웨덴에서 열린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도서전이다.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된 올해 도서전에는 전 세계 38개국 출판 관계자들이 참가했다. [연합뉴스]

26~29일 스웨덴에서 열린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도서전이다.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된 올해 도서전에는 전 세계 38개국 출판 관계자들이 참가했다. [연합뉴스]

한강은 “20세기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상처를 남긴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역사의 비극은 그에게 창작의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소설 『흰』에 등장하는 폴란드 바르샤바가 대표적 예다. 바르샤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고 학살이 자행된 곳이다. 한강은 “그 소설을 썼던 2014년 바르샤바에 머물렀다. 사람들이 사시사철 꽃과 초로 애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수도 한복판에서 이런 애도를 해본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1980년 5월(광주민주화운동)뿐 아니라 2014년 봄(세월호 참사)의 비극에 대해서도 마음대로 애도할 수 없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문장을 썼다”고 회고했다.

올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의 주인공은 한국 그리고 한국문학이었다. 1985년 시작한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은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도서전이다. 1만1000㎡(3300평) 규모의 전시장에 38개국, 800여개 기관·회사가 참가했다. 26~29일 나흘 동안 전시장은 8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이 혼잡했다. 전 세계에서 독서율이 가장 높은 나라답게 책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다.

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을 맞아 주빈국으로 참가한 한국은 ‘인간과 인간성’이라는 대주제 아래 한국 작가들의 세미나와 전시, 문화 행사 등을 개최했다. 김금희·김숨·김행숙·신용목 등 한국을 대표하는 9명의 작가가 대담을 펼쳤고, 김지은·이수지·이명애 등 그림책 작가도 독자들을 만났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은 “이번에 스웨덴에 소개되는 작가들과 그의 작품들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면서도 세계인과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강 작가가 예테보리 도서전에서 스웨덴 독자에게 사인 해주고 있다. [사진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강 작가가 예테보리 도서전에서 스웨덴 독자에게 사인 해주고 있다. [사진 대한출판문화협회]

171㎡(약 52평) 규모로 마련된 한국관에는 한국 도서 77종과 한국 그림책 54종이 전시됐다. 바닥은 다른 전시공간과 달리 1도 기울어져 있었다. 한국관 설계를 맡은 함성호 건축가가 미세한 기울기를 통해 ‘우리는 모두 운명의 경사에 놓인 불편한 의자에 앉아 있는 존재들’이란 주제를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한국관의 전시 도서와 주제 선정을 총괄한 김동식 문학평론가는 “케이팝(K-Pop), 한국 음식 등의 영향으로 스웨덴에서 K-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특히 한강·김언수 작가에 대한 인기가 뜨겁다”고 했다. 이어 “도서전 주최측으로부터 두 작가를 꼭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강은 최근 이슈인 양성평등이란 주제에 부합하는 세계적인 작가이고, 김언수는 스웨덴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릴러 장르의 작품을 쓰는 작가라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스웨덴에서 한국문학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스웨덴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은 1976년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시작으로, 김소월·이문열·황석영·문정희·황선미·김영하 등 작품 33종뿐이다. 40여년 동안 한 해에 채 한 권도 번역되지 못한 것이다. 스웨덴에서 한국문학의 입지가 좁고, 문학작품을 번역할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에 이어 지난해 김언수의  『설계자들』, 올해 한강의  『흰』이 번역되면서 스웨덴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2016년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영향력이 컸다. 도서전을 찾은 비시드 한손(37)은 “스웨덴어로 출간된 한강의 책을 모두 읽었는데 그의 섬세한 감수성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최근 스톡홀름대학교 등 스웨덴에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이 많이 늘어나 문학작품을 번역할 인력이 증가한 것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평가된다.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은 “그간 한국이 겪은 근현대사의 고통과 영광 속에서 한국문학이 확보한 독특한 활력과 역동성에 매력을 느끼는 외국인들이 많다. 스웨덴에도 한국문학 바람이 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기영 작가도 “한국문학이 좁은 남한 땅의 경계를 넘어서 세계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프리다 에드먼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디렉터는 “한국과 스웨덴은 경제 혁신과 교육 등에서 성공을 거뒀지만 동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이번에 도서전을 통해 스웨덴이 한국문학에 더욱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아만드 린드 스웨덴 문화부 장관은 “이번 도서전은 스웨덴 사람들이 한국의 문학작품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테보리=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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