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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반기업 정서' 재확인한 민주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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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고 부르면 또 가긴 가야겠죠. 근데 ‘반기업’이 민주당 주류 정서인데…기대 안 합니다.”

재계는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대화 물꼬가 트이나 했는데…씁쓸하다”는 임원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 26일 당 회의에서 자신이 전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찾아 했던 발언에 대해 노동계에 사과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반응이다.

이 원내수석부대표는 대기업 14곳의 고위 임원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가 모든 대기업 노조, 민주노총 편이 돼서 일하는 게 절대 아니다”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 노동이 행복한 나라를 꿈꿔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일할 수 있는 기업환경을 만들 것인지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고도 말했다.

특별할 것이 없는, 상식적인 수준의 발언이다. 그런데도 그는 “노동계가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바로 다음 날 사과 입장을 냈다. 대기업과 간담회는 이 원내수석부대표 외에도 전 원내대표(홍영표), 국회 정무위원장(민병두) 같은 여당 중진 등 국회의원 11명이 모인 자리였다. 정부ㆍ여당이 ‘적폐’로 규정한 전경련에서 열린 데다, 의원측 요청으로 전경련을 탈퇴한 4대 그룹(삼성ㆍ현대차ㆍSKㆍLG)도 참석했다. 정치권과 재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전경련이 대기업 채널 역할을 못 하면서 지난 2년여 간 대기업과 당ㆍ정ㆍ청 사이엔 소통 기회가 별로 없었다.

이날 박찬대 원내대변인은 “기업에 ‘민주당에 반기업 정서가 있다는 선입견 갖지 말고 규제개혁을 위해 국회의원들과 소통해달라’, ‘(대기업이)청와대 경제수석과 소통해 국가 경제의 큰 그림을 그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러면서 3시간 동안 기업 투자활성화를 얘기하던 의원들은 하루 만에 간담회 의미를 축소하는 데 급급하다. 재계는 “민주당은 여전히 ‘반기업 친노조’라는 걸 재확인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라면 여당 의원이 주문한 생산적인 소통을 기대하긴 어렵다. 규제개혁 등 혁신성장 환경을 제도화하기보다는 개별 기업의 이해를 중심으로 하는 비공식적인 대관(對官)으로 기울어질 뿐이다. 혹시 그런 관계를 바라는 것일까.

최순실 사건 이후 대관 활동에 소극적이었던 대기업이 최근 이 채널을 강화하게 ‘됐다’는 얘기가 들린다. 정부ㆍ여당 곳곳에서 부르거나 기업 현장을 방문하고 싶다는 요청 빈도가 늘어서라고 한다. 정부 출범 3년 차에, 일본 무역갈등과 침체된 경기 등 대내외 여건상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여당은 공개 만남조차 양대 노총의 심기를 거스를까 노심초사다. 한국경제 위기 극복보다는 표를, 선거에서 고정지지층을 지키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시간당 34.3달러)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고, 늘어나는 규제에 기업은 해외로 떠나는데도 정부ㆍ여당이 노동시장 개혁에 손도 못 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
박수련 산업1팀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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