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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어” 제자 강요 혐의 치과의사가 무죄 받은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사진 px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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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 앞에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하든지, 아니면 계속 변명해 봐.”

2016년 11월 울산대학교 의대 서울아산병원의 치의학 교수 A씨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수련 중인 B씨를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전공의 시험을 보지 못할 것 같았던 B씨는 겁을 먹고 5분간 무릎을 꿇었다. B씨와 같은 레지던트들이 전공의 시험에 응하기 위해서는 65건 이상의 치료종결 증례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승인해주는 게 지도교수인 A씨였기 때문이다.

B씨는 경찰에 A씨를 고소하며 “당장 무릎을 꿇지 않으면 전문의 시험을 못 치게 하겠다고 협박성 말을 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또 검찰 조사에서는 “A씨가 제게 무릎을 꿇지 않으면 시험을 못 보게 하고,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으면 감봉만으로 끝내겠다고 했다”며 “심리적으로 제압당해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었다”고 말했다. 이에 검찰은 “협박하는 태도로 B씨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강요 혐의로 A씨를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동부지법 형사7단독 장동민 판사는 지난 10일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B씨가 연구실로 불려온 이유와 녹취록이 결정적 근거였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자신이 지도하던 레지던트들에게 평소 “위법의 소지가 있으니 전자진료기록부에 대리 서명하지 말라”고 공지해왔다. 그러다 사건이 벌어지기 일주일 전쯤 환자의 진료기록부를 정리하던 A씨는 B씨의 후배인 1년차 레지던트가 의무기록에 대신 서명한 것을 발견했다. 이후 B씨의 전공의 수련기록부 자료를 검토하다가 또 다른 환자의 진료기록에도 후배 레지던트가 대신 서명한 것을 본 A씨는 B씨를 연구실로 부른 것이었다. A씨는 “전자진료기록부에 직접 서명한 게 맞느냐”고 물었고, B씨는 처음에는 “직접 서명한 게 맞다”고 거짓말했다. 그러다 A씨가 “솔직히 무릎 꿇고 나한테 잘못했다고 그러든지 계속 변명을 하든지 하라”고 말하자 그제야 대리 서명 사실을 시인하면서 무릎을 꿇은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당시 B씨와의 대화 내용을 녹음하고 있었다. A씨가 제출한 녹취록에 따르면 ‘무릎을 꿇지 않으면 전공의 시험에 필수적인 승인을 해주지 않겠다’라거나 ‘전공의 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오히려 A씨는 “네가 전문의 시험을 못 보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B씨가 “문제가 되는 대리 서명 건을 모두 빼면 전문의 시험 못 보는 거죠”라고 말하자 A씨는 “가능할까 해서 물어봤지 내가 언제 뺀다고 그랬어? 전문의 시험 봤으면 좋겠다고 그랬잖아”라고 말한 사실도 드러났다. A씨는 이후 B씨가 전공의 시험을 응시하기 위해 필요했던 치료종결 증례에 대한 승인을 모두 해줬고, B씨는 예정대로 전문의 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장 판사는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증거들을 종합해 봤을 때 A씨가 연구실로 B씨를 부른 목적은 그동안 B씨가 한 행동이 위법한 행동임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고, 전공의 시험에 필수적인 승인을 해주지 않을 것처럼 협박해 무릎을 꿇을 것을 요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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