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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유엔 발언에 실망" 오늘 청소년들 결석 시위 나선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청년기후행동회의에 참석한 김유진(17)학생과 정주원(25)씨(왼쪽부터). [사진 청소년 기후행동 김유진씨]

지난 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청년기후행동회의에 참석한 김유진(17)학생과 정주원(25)씨(왼쪽부터). [사진 청소년 기후행동 김유진씨]

전국의 청소년 1000여명이 '기후위기 대응'을 외치며 학교 대신 광장에 모인다.
'청소년 기후 행동'은 27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 공원에서 오전 10시부터 '우리를 위한,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열 예정이다.

청년기후행동회의 참석 김유진·정주원 #"기후변화 직접 피해자 보니 위기 체감" #기후 성적표 공개…'응답하라 대통령'

이 시위는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크레타 턴베리가 지난해부터 금요일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스웨덴 의회 앞에서 1인시위를 한 데서 시작됐다.

이번 결석시위를 주최하는 청소년 기후 행동 소속으로 지난 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청년기후 행동회의에 다녀온 김유진(17) 학생과 정주 원(25) 씨, 청소년 기후 행동 활동가를 26일 만났다.

지난 20일 콜롬비아에서 '지구를 위한 금요일'에 참가한 청소년이 피켓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0일 콜롬비아에서 '지구를 위한 금요일'에 참가한 청소년이 피켓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파리협정 잘 지키고 있다'는 대통령 발언에 큰 실망

지난 21일 유엔 청년 기후행동회의에서 안토니오 구테헤스 UN 사무총장이 청년 기후활동가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1일 유엔 청년 기후행동회의에서 안토니오 구테헤스 UN 사무총장이 청년 기후활동가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김유진 학생은 "역사상 처음으로 '기후변화'를 주제로 청년들이 모였고, 기후 대응에서 청년의 힘을 인정한 자리라 의미가 있었다"면서도 "그런데 청년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보다는, 청년에게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더 많았던 것 같아서 아쉽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년 정상회의 이틀 뒤인 23일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국은 파리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고, 녹색기후기금 공여액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김유진 학생은 "유엔 사무총장이 '1.5도 계획'을 갖추지 않으면 발언 단상을 주지 않을 거라고 말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대통령 발언이 없을 줄 알았다"며 "큰 기대가 없었지만 어떤 말을 할지 굉장히 궁금했는데, '파리협약을 잘 이행하고 있다"고 하더라. 다 듣고 나서 굉장히 실망했다"고 회상했다.

"청년을 도구로 사용…'어떻게 행동할지' 결과라도 내줬으면"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74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앞서 23일 기후행동정상회의에도 참석해 "한국은 파리협정을 잘 이행하고 있으며, 녹색기후기금 공여액을 두 배로 늘리겠다"등의 발언을 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74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앞서 23일 기후행동정상회의에도 참석해 "한국은 파리협정을 잘 이행하고 있으며, 녹색기후기금 공여액을 두 배로 늘리겠다"등의 발언을 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 씨는 "유엔 '청년 회의'를 흥행용 도구로 이용한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결과물만 좋다면 괜찮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면서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돈을 더 쓰는 게 아니라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말해주길 기대했는데,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나서 '우린 지금까지 뭘 한 거지?'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각국 정상들의 발언에서 '다음 세대(next generation)'라는 표현은 많았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다짐은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정 씨는 "청년들이 정부 관계자들을 접할 기회가 너무 없었고, 다른 나라 청년 대표들과 얘기하면서 앞으로 연계할 수 있는 활동이 없을까 고민하고 접점을 찾기 시작한 게 성과라면 성과”라고 했다.

"대한민국은 운 좋아 '아직' 기후변화로 위협받지 않는 것"

지난 2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Climate strike' 집회에서 발언 중인 미국 원주민. 그는 기후변화로 살던 집과 마을을 잃었다고 한다. [사진 청소년 기후행동 김유진씨]

지난 2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Climate strike' 집회에서 발언 중인 미국 원주민. 그는 기후변화로 살던 집과 마을을 잃었다고 한다. [사진 청소년 기후행동 김유진씨]

김유진 학생은 "유엔 회의 전 20일 뉴욕에서 있었던 대규모 결석시위(주최 측 추산 32만여 명)에 참여한 게 오히려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등교 파업'을 진행하는 학생들도 미성년자라서 학업을 병행하느라 겪는 고충은 우리랑 똑같은 걸 보고 동질감도 느꼈고, 실제로 집을 잃고 마을을 잃고 가족을 잃은 미국 토착 원주민들을 직접 보면서 '왜 이 가치를 위해 싸워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유진 학생은 "대한민국은 사실 운이 좋아서, 아직 기후변화로 생명이 위협받지는 않는데, 이 사람들은 집에 돌아가면 또다시 벌목꾼, 밀렵꾼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들이 다 같이 '연대의 노래'를 부르는 게 마음에 크게 울렸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1000여 명 참석…'응답하라 대통령' 외쳐

방글라데시에서 지난 20일 열린 '기후파업(Climate Strike)' 현장. [EPA=연합뉴스]

방글라데시에서 지난 20일 열린 '기후파업(Climate Strike)' 현장. [EPA=연합뉴스]

이들은 27일 오전 11시부터 서울 세종로 공원에서 '가을 운동회' 컨셉트로 각종 '기후변화 타파' 퍼포먼스를 연다.
청소년은 물론 학부모와 선생님의 발언도 있을 예정이다.

오후 3시쯤에는 청와대 사랑채 앞으로 행진해 국회와 정부에 대한 '청소년 기후대응 성적표'를 등급으로 발표하는 '응답하라 대통령'을 진행한다.

정주원 씨는 "지금까지 정부와 국회는 기후변화 문제를 '알지만 묵묵부답' 상태였지만, 이제 우리 이야기를 듣고 행동해줄 차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27일 결석시위에는 100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 행동 측은 "개인 참가 신청만 300명, 단체신청까지 합치면 800명이 넘는다"며 "현장 인원은 늘 신청자보다 더 많았던 걸 고려하면 1000명을 넘길 것 같다"고 밝혔다.

활동가 김보림(26) 씨는 "3월, 5월 시위 이후 전국을 다니면서 홍보했는데, 온라인 홍보보다 직접 만나면 열기가 느껴지는지 지지해주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며 "한 번은 교원 연수교육에 가서 '결석 시위' 얘기를 한 적도 있는데, 반응이 좋았다"며 웃었다.

'청소년 정치참여 보장' 요구에 '응답했다 교육감'

청소년 기후행동 측이 지역 사회단체를 찾아다니며 활동 내용을 설명하는 모습. [사진 청소년기후행동]

청소년 기후행동 측이 지역 사회단체를 찾아다니며 활동 내용을 설명하는 모습. [사진 청소년기후행동]

이름은 '결석 시위'지만, 이들은 '우리는 기후위기와 싸우는 것이지 선생님‧부모님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는 생각에 참가자들에게 '선생님‧부모님을 설득하고 나오라'고 한다.
김보림 씨는 "대부분 '체험학습' 신청을 하고 나오는데, 승인을 해주는 건 담임선생님 재량"이라며 "체험학습을 신청해도 당일에 '못 가게 됐다'며 울면서 전화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고 전했다.

김 씨는 "우리나라 입시 구조에서는 선생님을 이길 수가 없다"며 "지난 5월 24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에게 '학생들의 정치 참여를 보장해달라'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결석시위' 하루 전인 26일 서울시교육청은 '생태 문명 전환도시 서울' 공동선언 6조에서 '서울시 교육청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기후위기 대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지원금 마련과 학생들의 참여를 위한 시간을 적극적으로 확보한다'고 발표했다.

'지지는 하지만 참여는 안 돼'라고 말하는 부모님도 많다고 했다.
기후 행동의 김 서경(18) 학생은 "뭐라도 하고 싶고, 해야 할 것 같아서 활동하는 건데 '공부해서 수능 봐야지, 전문가 돼서 해, 공부하면 해결돼' 이런 말에 너무 많이 부딪히니까 맨날 우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늦게 들어가지 않고, 성적이 너무 떨어지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활동할 수 있는 우리 같은 경우도 정말 행운"이라고 미소 지었다.

그래도 이들의 활동을 지지하는 어른들은 집회에 함께 나오기도 한다.

김보림 씨는 "학생들이 어른들에게 공식적으로 말씀드리기 수월하도록, 신청‧참여 방법 가이드라인을 담은 '선생님을 위한‧부모님을 위한‧학생들을 위한'을 만들어서 나눠줬다"며 "이걸 읽고 오히려 선생님‧부모님이 학생들의 진심에 설득돼 함께 시위에 나오시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몰래 찾아와서 지지를 표한 선생님도 있고, 학생들을 데리고 함께 나온 선생님도 있었다.

"스펙 쌓으려는 거?" "대안학교 학생만?" 편견도

인도네시아에서 '기후파업' 시위가 진행되던 중 숲에 난 화재로 인해 한 청년이 용기에 든 산소를 흡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인도네시아에서 '기후파업' 시위가 진행되던 중 숲에 난 화재로 인해 한 청년이 용기에 든 산소를 흡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커진 행동이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도 반응은 다양하다고 한다.

김 서경 학생은 "학교마다 분위기가 다 다른데, 선생님들은 아직 '결석 시위' 단어를 좀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고, 학생들은 '우와 멋있다, 그렇지만 내 일은 아냐'부터 '나도 해볼까'지 다양하다"고 전했다.
그는 "원래 시험, 입시가 우선순위였다면 이제 뻔히 눈에 보이는 폭염‧태풍‧장마‧미세먼지 등을 보면서 위기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고 했다.

김보림씨는 "열에 아홉은 학생들에게 '너 이걸로 대학 갈 거냐' 물어본다"며 "스펙 쌓기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있는데, 활동하느라 결석이 쌓여 낙제 위기에 있는 학생도 있다. 진짜 위기감에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건데 오해하는 눈도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주로 하는 것 아니냐'는 편견에도 "참가 학생 절반 이상이 일반 학교 학생들이다. 기후위기 문제는 학교를 가려가며 생기는 게 아니지 않냐"고 응수했다.

김유진 학생은 "유엔에서 만난 다른 나라 청년 대표는 기후변화로 집을 잃은 당사자였는데, '기후변화 기사가 너무 일부의 문제처럼 인식돼있다'고 지적했다"며 "정부는 사회적 수요가 없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9·27 결석 시위로 우리 목소리가 사회에 많이 알려져서, 모두가 '기후변화는 내 문제다'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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