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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보다 한발 늦은 경찰···전남편 살해 막을 기회 놓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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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경찰이 지난 3월 청주에서 발생한 의붓아들 A군(5) 사망사건 용의자로 고유정을 지목한 가운데 초기 수사가 현 남편 B씨(37)에만 집중돼 수사가 늦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찰이 사건 발생 당시부터 고유정의 행적 파악과 증거 분석에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두 달 뒤 제주도에서 벌어진 전 남편(36) 살해사건을 막을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이 청주의 아파트에서 경찰에 체포될 당시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는 모습. [중앙포토]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이 청주의 아파트에서 경찰에 체포될 당시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는 모습. [중앙포토]

충북경찰청은 고유정을 살인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군 사망을 두고 타살과 과실치사 가능성을 수사해 왔다. 타살의 경우 전남편 살해혐의로 재판받는 고유정을, 과실치사는 A군과 한방에서 잠을 잔 친아버지 B씨를 용의 선상에 올려놨다.

경찰, 고씨 의붓아들 사건 초기 현 남편 수사 초점 #아들 부검결과 나오기 전까지 고유정 수사 미온적 #이불, 베개 등 증거 사라져… 두달 뒤 전남편 살해 #경찰 "질식사 가능성으로 부모 적극 수사 어려워"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3월 2일부터 고유정 전 남편이 살해된 5월 25일까지 수사 초점은 B씨의 과실치사에 맞춰졌다. 사건 현장엔 고유정과 B씨, 숨진 A군만 있었다. 폐쇄회로TV(CCTV) 분석과 아동학대 정황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이 B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한 근거다.

경찰은 사건 직후 고유정과 B씨를 상대로 유족 조사를 마친 뒤 5월 1일 A군 부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약 두 달간 고유정에 대한 조사에 미온적이었다. 그 사이 고유정은 청주 아파트에서 피가 묻은 침대와 이불을 버리는 등 범행 증거를 없앴다. 범행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베개와 담요 등도 버렸다.

경찰은 5월 2일 고유정을 불러 46분간 조사했지만 특별한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경찰은 오히려 B씨를 의심하며 5월 15일 거짓말 탐지 조사에 응할 것을 제안한다. 경찰 관계자는 “고유정과 B씨를 동일하게 수사하려던 때 전남편 살해사건이 벌어졌다”며 “질식사 가능성만 두고 부모를 적극적으로 수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유정의 현 남편 B씨(37)가 지난 7월 충북 청주상당경찰서에서 아들 사망 관련 조사에 앞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1]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유정의 현 남편 B씨(37)가 지난 7월 충북 청주상당경찰서에서 아들 사망 관련 조사에 앞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1]

경찰은 고유정이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6월 1일 긴급체포된 뒤 뒤늦게 강제수사로 전환했다. B씨는 얼마 뒤 “(충북)경찰을 믿을 수 없다”며 고유정을 아들 살해혐의로 제주지검에 고소했다. B씨의 법률대리인인 이정도 변호사는 “A군 시신에 대한 정밀부검 결과가 나온 5월부터라도 고유정을 적극 조사했더라면 고씨가 전남편도 살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약물 감정 결과와 범행 전후 고유정의 행적,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의 수사자료 분석 등을 통해 그를 뒤늦게 최종 용의자로 판단했다. 경찰이 확보한 정황 증거는 B씨의 체내에서 검출된 수면 유도제 성분이다. 고유정은 지난해 11월 제주의 한 병원에서 수면 유도제를 처방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군이 숨질 당시 고유정이 인터넷을 검색하는 등 깨어있었다는 정황 증거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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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5세 아이가 특별한 이유 없이 사망했다면 어른에 의한 타살 가능성이 높은데, 고유정에 대한 수사가 미흡했다고 본다”며 “시신과 베개, 이불 등 A군이 어떻게 사망했는지를 규명할 직접 증거가 사라진 것도 아쉽다”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제주=최경호·최충일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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