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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헌재,"자살 조력 처벌 할 수 없다"... 사실상 안락사 허용 파장

중앙일보

입력

이탈리아 급진당 소속 정치인 마르코 카파토(가운데)가 24일 로마에 위치한 헌법재판소에서 자신의 조력자살 사건에 대한 심리를 듣기 위해 방청석에 서 있다. [EPA=연합뉴스]

이탈리아 급진당 소속 정치인 마르코 카파토(가운데)가 24일 로마에 위치한 헌법재판소에서 자신의 조력자살 사건에 대한 심리를 듣기 위해 방청석에 서 있다. [EPA=연합뉴스]

"견딜 수 없는 육체적·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자살하는 것을 돕는 행위가 늘 처벌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통받던 음악가 자살 도운 급진파 정치인, 자살 방조 혐의로 기소 #이탈리아 헌재 "처벌 안돼" 판결...보수 가톨릭 국가 파장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안락사를 인정하는 판단을 내렸다. 이탈리아 헌재는 25일(현지시간) 밀라노 법원이 안락사를 비롯 자살 방조 및 교사 행위에 대한 현행법 해석 문제에 대한 명확한 심판을 요청한 데 대해 이같이 판단했다.

사건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급진당 소속 정치인 카파토는 지난 2017년 2월 유명 음악가이자 DJ 파비아노 안토니아니(사망 당시 40세)를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로 데려가 자살하도록 도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안토니아니는 2014년 교통사고로 사지가 마비되고 시력까지 잃었다. 고통 속에서 삶의 의지를 잃은 안토니아니는 이탈리아 대통령에게 "새장 속에 갇힌 기분"이라며 안락사를 허용해달라는 요구가 담긴 편지를 남기고 카파토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카파토는 이후 이탈리아로 돌아와 자수했다.

통상적으로 이탈리아에서 타인의 자살을 방조·교사한 사람은 5년 이상 1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그러나 밀라노법원은 조력자살 혐의로 카파토에 대한 심리를 시작하는 한편 헌재에 자살 방조 법 조항 문제 심판을 요청하면서 헌재 판단이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이탈리아 헌재는 판결문에서 "생명유지장치로 연명 중이거나 돌이킬 수 없는 병리학적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 등 특수한 상황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을 돕는 행위는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번 헌재의 판단으로 카파토는 밀라노법원에서 진행될 재판에서 무죄를 받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카파토에 대해 무죄가 선고될 경우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이탈리아는 국민의 90%가 로마 카톨릭인 보수 국가다. 실제 이번 헌재 결정을 며칠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공개적으로 "(안락사 허용의) 유혹을 거부할 수 있고 또 거부해야 한다"고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카톨릭이 절대다수인 이탈리아가 안락사를 허용할 경우 안락사 허용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다른 유럽 국가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헌재는 판단에 앞서 지난 10월 입법권을 가진 의회에 안락사가 위법인지에 대해 법리적 논의을 거쳐 명확히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요청기한인 1년이 지나도록 이탈리아 의회는 아무런 검토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적 성향의 니콜라 프라토아니 하원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헌재의) 판결 이후 의회는 더이상 (안락사 관련 법 개정을 미룰) 알리바이가 없어졌다"며 "의회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위해 법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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