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뉴욕타임스 발행인 “트럼프의 '가짜뉴스' 공격에 세계 지도자들도 전염” 작심 비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설즈버거 NYT 발행인(왼쪽)과 트럼프 대통령. [AP·UPI=연합뉴스]

설즈버거 NYT 발행인(왼쪽)과 트럼프 대통령. [AP·UPI=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발행인이 23일(현지시간) “전세계에서 기자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칼럼을 실었다. 2만자가 넘는 장문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독재 정부를 작심하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브라운대학교에서 초청 강연을 한 내용을 토대로 했다. 분쟁 현장을 취재하다 체포 위기에 몰린 NYT 기자들을 미국 재외공관이 방관했다는 내용도 공개했다.

설즈버거 발행인은 “나의 동료인 기자들은 현장 취재를 하다가 종종 부상을 입는다”며 “하지만 우리에겐 항상 든든한 안전망이 있었다. 바로 미국 정부였다”며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상황이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그 원인은 트럼프 정부에 있다는 게 설즈버거 발행인의 설명이다. 그는 “과거 리비아 반군에 NYT 기자들이 억류됐을 당시 국무부가 석방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준 적이 있다”며 “그런데 현 정부는 언론 자유를 수호하는 역할을 버리고 있으며, 그 결과 다른 나라들도 기자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적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뉴욕타임스 본사. 무장 경호원이 지키고 있다. 설즈버거 발행인이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기자들 보호 차원에서 무장 경호원을 고용했다. [AP=연합뉴스]

뉴욕 맨해튼에 있는 뉴욕타임스 본사. 무장 경호원이 지키고 있다. 설즈버거 발행인이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기자들 보호 차원에서 무장 경호원을 고용했다. [AP=연합뉴스]

그는 이어 “많은 나라에서 기자들이 자신들의 일에 충실하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기자들의 존재 자체가 도전을 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에만 전세계에서 수십명의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사실도 짚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러시아의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와 막심 보로딘 등이 대표적 피해자다.

NYT 기자들이 겪은 일도 공개했다. 2017년 이집트 주재 NYT 특파원 데클란 월시가 현지에서 체포될 위기에 놓였으나 트럼프 정부 관계자가 사태를 방관하면서 오히려 이집트 정부가 월시를 체포하도록 놔두었다는 것이다. 설즈버거 발행인은 “미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뒤 우리는 월시의 모국인 아일랜드 측에 지원을 요청했고, 아일랜드 외교관들은 월시를 보호하기 위해 즉각 달려와주었다”고 적었다. 이런 일이 빈발하고 있다는 것이 설즈버거 발행인의 지적이다.

설즈버거 발행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 뉴스’라며 언론을 매도하는 사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후 ‘가짜 뉴스’라는 말을 거의 600번 가까이 트위터에서 사용했다“며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를 토대로 한 비판을 가짜 뉴스라고 매도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NYT뿐 아니라 워싱턴포스트(WP)ㆍ월스트리트저널(WSJ)ㆍCNN 등도 거론하며 “사실에 근거한 비판을 하는 저널리즘을 가짜뉴스로 몰아가고 있다”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짜 뉴스’ 주장이 다른 국가의 지도자들에게도 전염되고 있음도 우려했다. 설즈버거 발행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언론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도 자국의 언론을 똑같이 공격하고 있으며 ‘가짜 뉴스’라는 말을 유행시켰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취재를 해보니 최근 들어 세계 50개국의 총리 등 지도자들이 ‘가짜 뉴스’라는 말을 사용하며 언론 자유 억압을 정당화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가 지면 전체를 트럼프 대통령의 '거짓말' 발언으로 디자인했다. [사진 스튜어트 톰슨 트위터]

뉴욕타임스가 지면 전체를 트럼프 대통령의 '거짓말' 발언으로 디자인했다. [사진 스튜어트 톰슨 트위터]

설즈버거 발행인은 “물론 언론은 완벽하지 않다”며 “우리는 실수를 하고, 우리에겐 사각지대가 있다. 때론 일부 사람들을 미치도록 짜증나게 하기도 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언론의 자유는 건강한 민주주의의 기본이며 시민들에겐 아마도 가장 중요한 도구”라며 “우리의 사명은 진실을 찾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NYT는 불편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최근엔 트위터에 “뉴욕타임스는 (재선될 경우 재임 기간이 끝나는) 6년 뒤엔 다 망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뉴욕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이 NYT에 나름의 애정을 갖고 있으나 NYT가 자신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유별나게 서운해한다는 얘기도 있다. 집권 초반엔 “NYT는 보석같은 존재”라며 “잘 지내길 바란다”고 말한 적도 있다. 당시 NYT는 “우린 결코 잘 지낼 수 없다”는 칼럼을 다음날 게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엔 설즈버거 발행인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나를 왜 그렇게 비판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