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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와 싸울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행복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인춘의 웃긴다! 79살이란다(49)

[일러스트 강인춘]

[일러스트 강인춘]

찌질이 1.
인마! 늙으면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해.
마누라에게 밥 줘! 물 줘! 라고 호령할 위치가 아니라는 거
빨리 알아채야 하거든.

찌질이 2.
그나마 마누라 옆에 붙어 있으려면 음식이 짜네! 싱겁네!
투정도 금물이지.

찌질이 3.
국이나 찌개 국물을 먹을 때 밥상에 흘리지 마.
마누라가 짜증나면 마른반찬만 줄 수도 있으니까.

찌질이 4.
설거지 누가 하느냐고?
그야 당연히 내 차지지.

세월이 가면 갈수록 나를 포함해서 친구들까지
찌질이 모습들을 닮아간다.
오늘도 우리 찌질이들은 변함없이 공덕동 순댓집에 모였다.
소주잔들이 몇 순배 돌아가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기 찌질이 목청들을 하나씩 토해내기 시작한다.
내용인즉 모두 다 마누라 앞에서 쩔쩔매는
자신들의 신세 한탄들이다.
인생 칠십이 넘어서더니 남자 녀석들이 창피함마저도 던져버렸나 보다.

그래, 그래.
인생은 너나없이 반전이라는 게 있다.
나를 포함한 너희들 한때 젊어 마누라 앞에서 호기 당당했었잖아.
이제는 스스로 반성하고 얼마 남지 않은 여생
한평생 나를 위해 희생한 마누라에게 정성을 다하자.
혹여, 마누라가 열 번 백번 인상을 쓰면 쓸 때마다
불뚝불뚝 가슴 속에서 머리 처 받는 자존심 녀석일랑
두 주먹으로 쥐어박으며 방긋방긋 미소로 보답하자.

어쩌다 요 모양으로 움츠러들었냐고?
짜샤!
너도 내 나이 돼보면 알게 될 거다.
인생이란 이렇게 사는 거다.

강인춘 일러스트레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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