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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기술과 감정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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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소아 기자 중앙일보 증권부장
이소아 산업2팀 기자

이소아 산업2팀 기자

정보기술(IT) 산업이 세계를 주도하면서 기술은 혁신이자 생존의 조건이고 권력이 됐다. 기업들이 연구개발과 인재 영입에 사활을 걸고, 미국이 화웨이를 이유로 중국과 척을 지는 것도 기술 패권을 지키기 위해서다. 2011년 애플과 삼성 소송, 2012년 애플과 구글 소송, 2017년 36조원에 달했던 애플과 퀄컴 소송 등 이름깨나 알려진 글로벌 기업에게 기술 분쟁은 일상다반사다.

한국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한국 기업의 특허 분쟁은 284건인데 우리 쪽이 제소한 것도 104건이나 된다. 미국에서 특허 등록을 가장 많이 한 기업 명단엔 삼성전자(2위)와 LG전자(7위)가 있다. 최근 감정싸움처럼 보이는 국내 대기업 간 마찰도 크게 보면 기술 분쟁의 연장선이다. 삼성과 LG간 TV 논쟁의 본질은 ‘8K TV 화질의 조건’ ‘QLED TV와 OLED TV의 차이’ 등 기술이다. LG와 SK의 배터리 소송에도 기술 유출 여부를 다투는 엄연한 배경이 있다.

기업이 저마다 기술력을 알리고 권리를 찾겠다는데 이를 ‘소모전’ ‘이전투구’로 일축할 순 없다. 그러기엔 기술 하나에 걸린 경제적 가치와 파장이 너무 커졌다. 국내 기업끼리 좋게 가자는 논리도 정부 주도 개발 시대라면 모를까, 글로벌 무대에서 서로가 경쟁하는 지금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의 중재 선례가 외국 기업과 기술 분쟁을 벌일 때 한국 기업의 대응 폭을 옥죄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이 ‘기술 먹튀’라는 오명 아래 세계 곳곳에서 소송에 휘말린 건 정부의 비호 탓이 크다. 기업의 기술 분쟁은 대부분 양측의 이해관계에 따라 합의에 이르곤 했다. 기술 경쟁이 치명적 손실 대신 기술 발전과 협력으로 이어지는 그 지점을 기업들은 의외로 잘 알고 있다.

이소아 산업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