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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스포츠는 사람 얘기, 선수 속내를 듣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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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알랭 드 보통은 뉴스가 스포츠 스타 등의 고귀한 정신을 소개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한국 미디어는 그렇게 하고 있을까. [연합뉴스]

알랭 드 보통은 뉴스가 스포츠 스타 등의 고귀한 정신을 소개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한국 미디어는 그렇게 하고 있을까. [연합뉴스]

언제부턴가 한국 스포츠 선수들은 속마음을 얘기하지 않는다. 경기 전 공식 인터뷰는 의례적인 얘기로 끝나고, 우승하더라도 역시 뻔한 얘기로 마친다. 골프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 스포츠가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로 가고 있다.

미디어에 입 닫는 선수들 늘어나 #인터넷 악플이나 선정 보도 탓도 #누구나 사연과 극복 스토리 있어 #사람이 사라지면 관심도 사라져

송지훈 중앙일보 축구팀장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기 위해 중구난방이던 인터뷰를 공식 기자회견과 믹스트존 인터뷰로 단일화했다. 그렇다면 공식 인터뷰를 성실하게 해야 하는데, 경기 결과가 좋지 않으면 믹스트존을 그냥 지나치는 게 관례처럼 굳어졌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뿐만 아니라 일본 J리그에서는 경기에 진 선수가 감정을 표현하면서 패인을 분석하는 인터뷰가 자연스러운데, 유독 한국 축구대표팀과 K리그는 인터뷰에 인색하다”고 지적했다.

김식 중앙일보 야구팀장은 “인터넷 야구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선수 인터뷰 내용에 대해 두고두고 비판하거나 놀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선수들이 말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듯하다. 선수들이 말하기 훈련이 안 돼 있는 것도 큰 이유다. 선수들은 시즌 전 스프링캠프 기간에는 인터뷰하긴 하는데, 시즌이 되면 예민해져 마음을 터놓고 하는 인터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선수는 힘들다. 시즌이 끝나면 쉬어야 하고, 시즌 중에는 경기로 바쁘다. 미디어가 너무 많아져 특정 매체와 인터뷰를 하면 다른 매체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터뷰하다 괜히 말실수할 가능성도 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왜곡되는 경우도 있다. 선수들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팬들과 어느 정도 소통할 수 있다’고 여기기도 한다.

악플도 골칫거리다. 한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댓글에 좋은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기사가 나가면 라이벌 선수 팬클럽이나 악플러들이 공격할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격이다. 골프는 멘털 스포츠라 선수들이 댓글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아예 기사가 안 나오는 게 낫다고 여긴다”고 전했다.

요즘 인터뷰 섭외는 대개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진행되는데, 매니지먼트사는 ‘수퍼 갑(甲)’인 선수에게 귀찮은 인터뷰를 하자고 말하기 어렵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선수들은 의례적인 내용을, 그것도 공식 인터뷰에서만 의무방어전 하듯 적당히 끝낸다. 그게 추세로 굳고 있다. 그래서 팬들은 선수를 잘 모른다. 미디어도 선수 겉모습만 안다. 안다해도 요즘 분위기는 선수가 밝히기를 원치 않는다면 쓰지 않는다.

한국 선수가 LPGA 투어에서 우승하면 무조건 큰 뉴스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희소성 때문이었다. 지금은 한국 선수 우승이 흔해져 우승 자체로는 큰 뉴스가 되지 않는다.

팬이 많은 박성현의 우승이나, 고진영의 희귀한 ‘노 보기(No bogey)’ 우승 등 특이사항이 없다면 더욱 그렇다. ‘또 우승했나 보다’ 정도로 여긴다. 팬들도 선수를 잘 모르니 공감하지 않는다.

KLPGA나 KPGA 투어도 마찬가지다. 거의 매주 우승자가 나오는데, 특이사항이 없다면 그저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그래도 기자는 모든 선수가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선수가 경제적 어려움, 신체적 핸디캡, 지독한 슬럼프, 사연 많은 가족사 등 남모를 이야기 한두 개씩은 있을 것이다. 그들은 눈물겨운 노력으로 이를 극복했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에서 “스포츠 스타를 포함한 셀러브리티 섹션을 흥미진진하게 만들되, 풍부한 심리학적 해석이 가능하고 교육적으로 가치 있는 고귀한 정신의 소유자들을 반드시 소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동의한다. 버디 몇 개, 홈런 몇 개가 아니라, 선수 내면의 빛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버디와 홈런 숫자만  얘기한다.

스포츠에서 사람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다. 결국은 사람들의 관심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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