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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잊어라,유흥계 이단아로 변신한 박해수

중앙일보

입력

영화 '양자물리학' 주연 배우 박해수를 17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메리크리스마스]

영화 '양자물리학' 주연 배우 박해수를 17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메리크리스마스]

“영화 보신 주변 선배(배우)들이 제가 가진 다른 모습이 궁금해진다고 하셔서 기뻤어요. 사람들이 계속해서 궁금해하는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tvN)의 야구선수 제혁이 클럽가의 이단아로 돌아왔다. 25일 개봉하는 범죄영화 ‘양자물리학’(감독 이성태)에서 첫 스크린 주연 데뷔한 박해수(37) 얘기다. 지난해 첫 드라마 주연작 ‘슬기로운...’이 최고 시청률 11.2%(닐슨 코리아 집계)로 성공리에 종영한 데 이어서다.
지난 17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언론시사회 때 처음 영화를 봤는데, 큰 화면에서 작품을 끌고 가는 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멍했다. 엄청 떨려서 좌석 속으로 막 파고들었다”고 했다.

25일 개봉 영화 '양자물리학' 주연 #비리권력 파헤치는 유흥계 이단아 #'슬기로운 감빵생활'서 180도 변신 #"버닝썬서 일부 촬영, 이야기 달라"

감독님은 '슬빵' 안 보고 캐스팅

영화 '양자물리학' 한 장면. 왼쪽부터 박해수가 연기한 이찬우, 오른쪽은 유흥업계 인맥퀸 성은영 역의 서예지다. 모종의 사연으로 뭉친 둘은 거대한 돈과 권력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다. [사진 메리크리스마스]

영화 '양자물리학' 한 장면. 왼쪽부터 박해수가 연기한 이찬우, 오른쪽은 유흥업계 인맥퀸 성은영 역의 서예지다. 모종의 사연으로 뭉친 둘은 거대한 돈과 권력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다. [사진 메리크리스마스]

'양자물리학'은 제목과 달리 과학과는 거리가 먼 영화다. 그가 연기한 주인공 이찬우는 죽어가는 업소도 살리는 화류계의 실력자. 다만, 그는 “세상은 고정되지 않고 생각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라는 양자물리학의 신봉자다. ‘불법’ ‘탈세’ 없이 혁신을 외쳐온 그는 우연히 알게 된 유명 래퍼(박광선)의 마약파티 사건을 가까운 형사(김상호)에게 알리는데, 알고 보니 이 사건은 검찰과 정‧재계까지 연루된 거대 비리였다.
자신의 클럽을 잃고 살인누명까지 뒤집어쓸 위기에 처하자 그는 업계 퀸 성은영(서예지)과 함께 “양자물리학적 신념”으로 권력과 한판 대결에 나선다.

영화 속 그는 과묵했던 드라마 속 캐릭터완 딴판이다. 이찬우는 팔도 사투리를 섭렵한 유려한 언변과 행동력으로 매 장면을 압도한다. 밑바닥부터 시작한 그에겐 성공의 상징 같은 새빨간 미니쿠퍼에 장신을 구겨놓고 신명나게 트로트를 부르는가 하면, 구수한 춤사위로 흥을 돋우는 모습이 새롭고 유쾌하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야구선수 김제혁(박해수 분)은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던 용의자를 과잉 폭행한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용된다. 맨 오른쪽 앞이 제혁 역의 박해수. [사진제공=tvN]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야구선수 김제혁(박해수 분)은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던 용의자를 과잉 폭행한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용된다. 맨 오른쪽 앞이 제혁 역의 박해수. [사진제공=tvN]

“이성태 감독이 ‘슬기로운...’을 안 보고 저를 캐스팅했다”는 그는 “제가 영화 주연이 처음이고 인지도도 증명되지 않아서 위험부담이 컸을 텐데 제작사와 감독님이 어려운 선택을 해준 게 그저 감사하다”고 거듭 말했다.

대학로선 거친 사내·괴물 도맡았죠

그는 출연 계기부터 “양자물리학적이었다”고 했다. “비리 검사로 나온 이창훈 배우가 이 감독과 ‘십분간 휴식’(2007)이란 단편영화로 워낙 친한 사이였어요. 신작 얘기를 들은 이 배우가 연극바닥에 이런 친구 있다며 저를 불렀는데 감독님이 대화 와중에 바로 출연제안을…. 논리적 판단이 아니라 이찬우가 가진 에너지와 제가 맞는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박해수는 겉모습이 번지르르한 이찬우 캐릭터가 자칫 비호감으로 비치지 않도록 진정성을 전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사진 메리크리스마스]

박해수는 겉모습이 번지르르한 이찬우 캐릭터가 자칫 비호감으로 비치지 않도록 진정성을 전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사진 메리크리스마스]

그는 연극계에선 이름난 스타다. 2008년 창작 뮤지컬 ‘사춘기’에서 시니컬한 고교생 역으로 첫 주연을 맡고 불과 1년 뒤엔 알프레드 히치콕 코믹 스릴러 ‘39계단’의 동명 연극에 발탁돼 얼떨결에 살인사건에 연루된 독신남 역을 유머러스하게 소화했다.  2011년 연극 ‘더 코러스:오이디푸스’에선 서른한 살에 오이디푸스 역을 맡아 크게 주목받았다. 2014년 국립극단 연극 ‘맥베스’의 맥베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2017년 조광화 연출의 연극 ‘남자충동’에 류승범과 더블 캐스팅 된 주인공 장정 등 무대에선 대부분 고전 속 괴물이나 거친 고난사를 연기했다. 늘 고통스러울 정도로 작품을 파고들어 분석했다. 의도치 않게 영생을 얻은 무사로 분한 연극 ‘됴화만발’에선 극 중 설정대로 연습할 때부터 얼굴에 바른 진흙이 숨통을 죈 통에 폐를 다칠 뻔한 적도 있다.

'성추문' 버닝썬 클럽서 촬영했지만...

내내 묵직한 역할을 도맡던 그에게 이번 영화의 이찬우는 속 시원한 캐릭터였다. “대사를 폭발적으로 쏟아내는 초반 10분간이 제일 재밌었어요. 사전에 대사를 제 ‘말’처럼 편안하게 체득해서 촬영 때 대사량에 대한 큰 부담은 없었죠. 오히려 이 인물의 어떤 면이 사기꾼처럼 꼴 보기 싫게 느껴지지 않도록 자기 일에 대한 진정성, 상대를 대하는 진심 어린 태도가 잘 전달되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클럽은 많이 안 가봤는데 음악 나오는 펍은 몇 번 가서 분위기를 익혔죠.”

형사 박기헌(김상호)과 마약에 연루된 래퍼 프랙탈. 이 역할은 밴드 '울랄라 세션' 멤버로도 유명한 박광선이 맡아 개성 강한 연기를 펼친다. [사진 메리크리스마스]

형사 박기헌(김상호)과 마약에 연루된 래퍼 프랙탈. 이 역할은 밴드 '울랄라 세션' 멤버로도 유명한 박광선이 맡아 개성 강한 연기를 펼친다. [사진 메리크리스마스]

영화엔 거물인사 자제의 폭력사건 등 현실을 연상시키게 하는 장면도 많다. 1억짜리 ‘만수르’ 양주세트 등 최근 성스캔들이 있었던 버닝썬 클럽을 떠오르게 하는 공간도 있다. 실제 버닝썬 클럽에서 일부 촬영을 진행했다. 박해수는 “공간이 같을 뿐이지 이야기는 다르다”면서 “실제 사건에 대한 피로감 때문에 관객들이 영화를 보기도 전에 오해하실까 봐 염려된다”고 했다.

소재 자체는 기존 범죄영화들과 다를 게 없지만, 전개방식은 제법 긴장감이 넘친다. 특히 배우들 간의 호흡이 빼어나다. 음험한 명동 큰손 역의 변희봉을 비롯해 김응수‧김상호 등 조연진도 탄탄하다. 박해수는 “주연인 제가 극을 이끌었다기보단 모든 배우가 큰 유기체처럼 움직이며 매장면 힘을 모아줬다. 김상호 형님이 힘들면 애쓰면서 끌려가지 말고 선배들 등에 업혀서 와라, 하신 말씀이 정말 뭉클했다”고 돌이켰다.

실제 10년지기 룸메와 단짝 역할 호흡

그를 비롯해 무대 출신 배우가 많다보니 연극 공연하듯 호흡 맞춘 장면들도 있었다. “공연은 일단 시작하면 끊을 수 없잖아요. 대사가 틀리거나 사고가 나도 그 상황에서 서로 의지해서 헤쳐 나가죠. 이번 영화도 카메라 뒤에서 서로 응원하고 지켜봐 주는 선한 기운조차 관객들이 다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며 촬영했어요.”

'양자물리학'에서 밑바닥부터 함께 올라왔단 설정의 죽마고우 (왼쪽부터) 김상수와 이찬우. [사진 메리크리스마스]

'양자물리학'에서 밑바닥부터 함께 올라왔단 설정의 죽마고우 (왼쪽부터) 김상수와 이찬우. [사진 메리크리스마스]

극 중 죽이 척척 맞는 죽마고우 김상수 역 배우 임철수와는 실제로도 “소울메이트”다. 대학로에서 공연하던 시절부터 박해수가 올해 초 결혼하기 전까지 10년간을 같은 집에서 룸메이트로 살았다. 두 사람의 10년지기 관계를 눈여겨본 이 감독이 동반 캐스팅했단다. 급히 도망치느라 자동차 조수석에 서로 포개져 타는 등 웃음을 자아내는 좌충우돌 장면들도 현장에서 합을 맞추며 자연스레 탄생했다.
“저의 오랜 멘토인 배우 이석준 선배님이 시사회에서 저랑 철수랑 둘이 나오는 장면 보자마자 눈물 났다고 하시더군요. 어릴 적부터, 그 과거를 아니까. ‘해수야, 잘했다, 고생했다’ 하시고. ‘슬기로운...’ 같이한 박호산 선배님, (정)해인이도 영화 좋았다고…. ”
그가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철수랑 ‘우리가 같이 영화를 하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그랬어요. 진짜 양자물리학 같았죠. 상상만 했던 일이 현실이 됐잖아요.”

연기, 인생 목적으로 삼은 적 없지만...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박해수가 연기한 이지란.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으로, 전장에서 만난 이성계에게 반해 의형제를 맺고 동고동락한다. [사진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박해수가 연기한 이지란.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으로, 전장에서 만난 이성계에게 반해 의형제를 맺고 동고동락한다. [사진 SBS]

2015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SBS)의 여진족 출신 무신 ‘이지란’, 범죄영화 ‘마스터’에서 거물 사기꾼(이병헌)의 수하 ‘벙거지’ 등 그간 대중에 회자된 적도 여러 번이지만 “작품 선택의 폭을 확연히 넓혀준” 출세작은 단연 ‘슬기로운...’이다. 이 드라마로 지난해 그는 ‘더 서울 어워즈’ 드라마 부문 남우신인상도 차지했다.

어릴 적부터 쌓여온 삶에 대한 궁금증, 감성이 자연히 고등학교 연극부로 자신을 이끌었고, 또 대학에서 연극전공을 하고 보니 배우가 돼 있더라는 그다. “연기가 내 인생의 목적이다, 이런 건 없었는데 공연하다 보니 내 길이구나, 싶었어요. 자연스럽게 밟아가고 있는 걸 보면 제가 어딘가에 쓰일 데가 있어서일 거라 생각해요. 상대 배우와의 교류에서 오는 쾌감도 있죠. 상대와 나 사이, 혹은 공간 자체의 공기가 촤악 압축되는 느낌을 받을 때의 짜릿함이 있거든요. 여러 생각을 열어두는 유연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깊이 파고드는 작품에 자극 받죠

박해수는 올해 초 1년 동안 교제해온 6살 연하의 일반인 여자친구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비슈어스튜디오 제공]

박해수는 올해 초 1년 동안 교제해온 6살 연하의 일반인 여자친구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비슈어스튜디오 제공]

요즘은 이희준‧수현과 주연을 맡은 드라마 ‘키마이라’ 촬영이 한창이다. 1984년 연쇄살인사건의 발단이 된 폭발사고가 2019년 비슷하게 벌어지며 이를 파헤치는 얘기다. 윤성현 감독의 스릴러 영화 ‘사냥의 시간’(가제)도 개봉을 기다린다. 경제위기가 닥친 도시, 네 명의 청년을 뒤쫓는 사내 역에 나섰다. 이제훈‧최우식‧안재홍‧박정민이 함께 출연했다.

최근 아이유와 헤어진 연인으로 호흡 맞춘 넷플릭스 옴니버스 영화 ‘페르소나’ 등 어느 한쪽에 편향되지 않은 작품들을 고루 제안받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 중에도 마음을 끄는 건 “고전의 힘을 지닌 작품”이다. “고전의 매력은 한 대사를 계속 파도 다른 의미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고 거기서 엄청난 자극을 받거든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작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SF 영화 '사냥의 시간'에서 주인공 친구들을 쫓는 의문의 남자로 등장한 배우 박해수. [사진 리틀빅픽쳐스]

SF 영화 '사냥의 시간'에서 주인공 친구들을 쫓는 의문의 남자로 등장한 배우 박해수. [사진 리틀빅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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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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