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랄한 수탈로 100만 명 굶어 죽었다, 뼛속 깊이 박힌 분노

중앙일보

입력 2019.09.24 13:00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30)

“모형이 아니라 진짜 배야. 1846년 당시 기근선을 복원한 거야. 굶어 죽지 않으려고 아일랜드를 탈출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지금은 다른 나라에 살고 있잖아. 당시 피난민을 내려놓았던 항구들을 차례차례 항해하고 돌아온 진짜 배라구.”

아일랜드 친구 레베카는 지니 존스턴 기근선(Jeanie Johnston Famine Ship)에 꼭 가보라며 권했다. 우리로 치면 서대문 형무소쯤이 되는 킬마이넘 감옥에 가서 부활절 봉기로 시작된 독립 역사를 알아야 아일랜드를 제대로 보는 거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대기근(Great Famine)얘기다.

1846년 더블린에서 출발한 이민선을 복원하여 지었다. 당시 아일랜드인들이 도착했던 미국과 캐나다 항구를 돌아 항해하며 그때의 비극과 선대 아일랜드인들을 기억하는 의식을 치렀다. 지금은 기념박물관으로 쓰인다. [사진 박재희]

1846년 더블린에서 출발한 이민선을 복원하여 지었다. 당시 아일랜드인들이 도착했던 미국과 캐나다 항구를 돌아 항해하며 그때의 비극과 선대 아일랜드인들을 기억하는 의식을 치렀다. 지금은 기념박물관으로 쓰인다. [사진 박재희]

아일랜드는 단위 면적당 성이 가장 많은 나라이고,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를 네 명이나 배출한 민족이다. 연간 1인당 국민소득 7만6000달러가 넘는 경제를 이룩했지만 그들에게는 불과 170년 전, 인구 4분의 1을 잃어야 했던 기근의 역사가 있다. 800만 인구 중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어 죽고, 다시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모국을 떠나야 했던 처참했던 역사를 증거하는 기근선이 리피 강변에 있다.

아름다운 사무엘 베케트 다리의 아치, 세계적 선도 기업들이 몰려있는 가장 부유한 지구에 속한 부두에 기근 당시의 처참한 모습을 보여주는 청동상이 있었다. 앙상한 뼈다귀만 남은 모습으로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사람들.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생명이 없는 눈빛으로 마치 죽음을 향해 걷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굶어 죽은 어린 자식의 주검을 어깨에 둘러멘 남자의 모습이 청명한 여름날의 더블린 하늘 아래서 부조화했다.

사무엘 베케트 다리는 아일랜드 국가 상징인 하프를 모티브로 하였고 가장 아름다운 다리중 하나로 꼽힌다.

사무엘 베케트 다리는 아일랜드 국가 상징인 하프를 모티브로 하였고 가장 아름다운 다리중 하나로 꼽힌다.

“감자 역병은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지만 100만명이 굶어 죽어야 했던 대기근은 영국의 악랄한 수탈 때문이에요.”

기근선 안내인 피터는 관람객 가운데 혹시 영국인이 있느냐고 물었다. 구석에서 머쓱하게 반쯤 팔을 들어 올린 사람들이 있었다. 피터는 그들에게 나직이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며 미안하다고 말한 후 설명을 이었다.

“대기근 당시에 밀은 풍년이었어요. 하지만 밀과 옥수수 같은 곡식은 재배하는 대로 전부 영국이 소작료로 몰수해 갔어요. 아일랜드 사람들이 아일랜드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바다 건너 영국인들에게 곡식을 바쳤어요. 아일랜드 인구의 3분의 1은 거의 감자만 먹고 살았습니다. 1845년 감자에 마름병이 돌았으니 그나마 먹고살던 감자도 없잖아요. 굶어 죽게 된 거죠.”

굶어 죽는 사람들로 사라지는 마을이 생길 만큼 심각한 지경이 되자 아일랜드인들은 영국 왕실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피터는 당시 빅토리아 여왕이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느냐고 묻더니 말했다.

대기근의 처참함을 표현한 청동 조각상. 아일랜드에서 캐나다로 가는 기근선을 타고간 이민자 후대손이 예술품 제작에 후원하여 기증했다. [사진 박재희]

대기근의 처참함을 표현한 청동 조각상. 아일랜드에서 캐나다로 가는 기근선을 타고간 이민자 후대손이 예술품 제작에 후원하여 기증했다. [사진 박재희]

"감자가 없으면 양들처럼 잔디를 뜯어 먹으면 되겠군"

정말 그랬을까? 시체들이 산처럼 쌓여있고 배고픔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살을 쥐가 파먹을 정도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니 간절하게 도움을 기대했던 사람들의 분노와 절망이 만들어낸 것일 수 있지만, 여하튼 빅토리아 여왕이 다른 나라의 원조금마저 거절한 것은 사실이다. 당시 오스만제국에서 10,000파운드 원조금을 보내겠다고 했을 때 영국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존귀하신 영국 왕실이 내린 은혜의 절반에 해당하는 만큼만!’

킬마이넘 감옥은 아일랜드 공화국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을 수용하고 처형했다. 대기근 중에는 빈곤범죄가 급증해서 사람들을 수용할 시설이 부족하기도 했다.

킬마이넘 감옥은 아일랜드 공화국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을 수용하고 처형했다. 대기근 중에는 빈곤범죄가 급증해서 사람들을 수용할 시설이 부족하기도 했다.

식민지의 물자를 몽땅 수탈해가면서 왕실의 이름으로 찔끔 원조금을 보내 생색을 냈다니 우리나라를 강점하여 수탈을 일삼고 ‘일본은 조선에 근대 문물을 전해준 은인이다’라고 한 망발이 떠오른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기근을 견딜 수 없어 이민을 택한 사람이 100만명인데 그중에 20만은 배에서 굶어 죽고 병에 걸려 죽었다. 당시 이민선을 두고 ‘관을 실어 나르는 배’(Coffin ship)라고 불렀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영국과 왕실, 영국인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는 것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거예요. 아마도 아일랜드 사람들의 DNA에 기록되어 있을 걸요?”

잠시 참을 수 있고 숨을 고를 수도 있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숨을 쉬는 것처럼 영국인에 대한 근본적인 반감은 그런 것이라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숨기지 않았다.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자선 기부는 특별하지않은 일상이다. 후원하는 단체 서너곳 쯤을 정해 지속적으로 기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고 식당이나 술집에서도 계산대 옆에는 기부를 위한 박스가 놓여있다.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자선 기부는 특별하지않은 일상이다. 후원하는 단체 서너곳 쯤을 정해 지속적으로 기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고 식당이나 술집에서도 계산대 옆에는 기부를 위한 박스가 놓여있다.

배고픔을 아는 사람들이라서일까? 아일랜드 사람들은 온갖 자선 모금에 적극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번화한 길 어디에든 각종 단체에 기부를 권유하는 청년들이 통행하는 사람만큼이나 많다. 아일랜드의 상점이나 식당, 술집 어디든 자선 기부함이 없는 곳을 찾아보기가 더 힘들다. 세계 기부 지수(World Giving Index)를 살펴봐도 아일랜드는 언제나 세계 5위안에 들어있다.

지난해 전설의 록그룹 퀸을 그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세계적으로 뜨거운 인기몰이를 했다. 영화 마지막에 1985년 에티오피아 난민 구호를 위해 열렸던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 장면이 나온다. 인류 역사상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이 될 국제구호를 위한 자선 공연, 세계적인 뮤지션을 동원한 자선공연의 기획자도 아일랜드인 밥 겔도프였다. 공연 당시 아일랜드 기부금이 900만 파운드였다고 하는데 세계 어떤 나라의 기부금보다도 많았다.

아일랜드의 아리랑이라고 할 만한 노래 중에 '아덴라이 들판'이라는 곡이 있다. 대기근이 한창일 때 아덴라이 청년이 영국 지주의 곡식을 훔치다가 잡혀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는 감옥선을 타고 떠나야 할 운명을 노래한 곳이다. 노래 속 시골마을 아덴라이의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 식당 역시 지역 단체를 후원하고 있었다.

범죄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빵을 훔친 열살 소년, 배가 고파 매춘을 했던 소녀,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않으면 감옥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사회가 되는 비극을 맞이했다는 것을 역설하는 사진. 킬마이넘 감옥.

범죄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빵을 훔친 열살 소년, 배가 고파 매춘을 했던 소녀,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않으면 감옥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사회가 되는 비극을 맞이했다는 것을 역설하는 사진. 킬마이넘 감옥.

‘1만 2천 1백 5십 4 유로 14센트’ 1500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시골마을의 작은 동네 식당을 찾는 사람들의 기부로 모은 금액으로는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에 붙은 기부 증명서를 살펴보다가 카운터에 앉은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의아해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는 없지만 ‘마을 사람들’이 있거든요.”

‘마을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아름다워 잠시 멈춰졌다. 인구의 1/4을 잃어야 했던 참혹한 역사는 기근선에 실려나가 다른 나라에 살면서 스스로를 ‘아일랜드계’라 부르는 사람 7000만명을 만들었고 그때를 잊지 않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자선과 기부가 일상으로 남겨줬다. 아덴라이의 식당을 나오면서 나도 커피 한 잔 값을 기부함에 넣었다.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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