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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전·월세 신고제 도입 강행하면 주거비 급등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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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여당이 전·월세 신고제도 입법을 추진 중이다. 전·월세 거래 정보의 투명화 의도보다는 전·월세 상한제 및 임대소득세 과세를 위한 밑그림으로 보인다. 전·월세 신고제도의 도입을 마냥 반길 수 없는 이유다. 이 제도의 속성상 수도권 전·월세 시장의 불안을 촉발할 가능성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입법 추진에 논란 #전·월세 불안 등 부작용 따져야

2006년 당시 노무현 정부는 실거래가 신고제도를 도입했다. 아파트 부녀회의 가격 담합으로 오른다고 의심했던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호가가 아닌 실거래가 정보를 제공하면 안정될 것이라고 정부는 믿었다. 그러나 실거래가 신고제가 시행된 2006년 1년 동안 수도권 아파트는 30% 이상 급등세가 이어졌다. 이는 2000년 이후 지금까지 관측된 가장 높은 연간 가격상승률이다. 실거래가 신고제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시장 개입 정책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말이다.

멀게는 전세가 및 매매가 급등기였던 1990년에 전세 임대차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되자마자 전국의 전세가는 당시 국민은행 전세가지수로 한 달 사이 약 13% 상승했다. 가깝게는 2011년부터 전·월세 확정 신고 자료의 공개가 시작됐다. 그런데 그 해에도 수도권의 아파트 전세가가 전년도보다 높게 약 12% 상승했다.

이런 반복된 경험을 통해 매매가격이든, 전·월세 가격이든 실거래 가격을 알게 된다고 해서 시장가격이 안정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오히려 실거래 가격의 공식적인 정보화는 향후 그로 인해 발생할 수익의 감소나 비용의 증가를 해당 주체가 앞서 반영하게 한다. 지금 입법이 진행 중인 전·월세 상한제 및 임대소득세 과세와 연결된 전·월세 신고 제도의 도입은 임대인의 그런 욕구를 더 강화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전·월세의 상승을 촉발할 수 있다. 그 과정에 공급 감소도 있을 것이다.

국내 주택 임대료가 비싸냐고 물으면 필자는 “해외에 비해 비싸지 않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순수 월세에 기초한 해외 주택임대시장에서는 월급을 받자마자 그중 30% 정도를 월세로 먼저 떼어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비하면 국내 임대료는 저렴한 전세뿐 아니라 보증부 월세도 보증금의 기회비용을 고려하더라도 평균적으로 소득의 20%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람직한가의 문제를 떠나 국내 주택임대시장이 대부분 보유나 운영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비제도권 민간임대주택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국내 임차 가구의 절반 이상은 아파트가 아닌 비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대도시권 비아파트 주택임대시장은 소유단위로는 단독주택이고 실질적으로는 공동주택인 다가구 단독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다가구 단독은 세제 부담이나 건축 관련 규제를 피하기 쉽다. 이처럼 비제도권 주택임대시장에서 유지돼온 저비용 요소들이 전·월세 신고제도 및 그와 연결될 제도 정비가 이뤄지면 앞으로는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국내 주택임대시장을 제도권으로 흡수하는 노력이 바람직한 방향일 수도 있지만, 규제 정책은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매매보다 거래 빈도가 극히 높고 비정형 거래가 많은 임대 계약들이 효과적으로 신고되고 관리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처럼 전·월세 신고제도의 도입은 단순히 거래 정보의 투명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주택임대시장의 구조적인 변화를 촉발하며 주거비용을 상승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하경제에 가까운 국내 주택임대시장을 제도권으로 흡수하는 어쩔 수 없는 대가로 인정하더라도 전·월세 상한제와의 결합이 가져올 부작용, 임대 소득세 과세의 현실적인 대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급진적이기보다는 장기적인 로드맵을 구상해 점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