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나홀로 앙가주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2009년 6월 원로 철학자와 철학 교수 등 500여 명이 ‘전국 철학 앙가주망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대학원생까지 참여한 진보 성향의 모임은 “이명박 정부가 소통이나 여론 수렴 없이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시국선언으로 ‘앙가주망(engagement·지식인의 사회 참여)’에 나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한반도 대운하, 미디어법 등 국론 분열이 한계치에 도달했던 시절이다. 교수들은 정권을 향해 “각계에서 왜 똑같은 말을 계속하는지 귀담아들으라”고 외쳤다. 보수 지식인들은 “편향된 입장을 전체 교수의 견해인 양 과장한다”고 반발했다.

지식인의 사회 참여는 갈등 시대의 산물이다. 지성의 언어는 혼란스러운 대중에게 한 줄기 빛이 된다.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수치심을 느낀 전·현직 교수들과 장관 딸의 의학 논문에 분노한 의사들의 시국선언에 “진짜 앙가주망”이라는 응원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엔 조 장관이 선점한 앙가주망에 대한 비아냥이 깔렸다. 그는 민정수석을 사퇴하고 서울대에 잠시 복직할 때 “앙가주망은 지식인과 학자의 도덕적 의무”라며 폴리페서 논란을 돌파했다. 지금도 페이스북에 ‘학문과 앙가주망의 변증법’이라는 문패 글을 올려놓고 있다. 학문과 현실 사이의 장벽을 넘어 검찰 개혁에 성공하는 법학자 출신 법무부 장관이 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조 장관의 앙가주망은 현실에서 나홀로 떨어져 나온 듯하다. 눈앞에 분출되는 정의 구현과 탈(脫) 위선의 욕구를 담아내지 못해서다. “검찰 개혁에 성공하라”는 지지자들의 댓글은 뒤늦은 엄호 사격 같다. 프랑스의 지성 레이몽 아롱(1905~1983)이 『지식인의 아편』에서 던진 화두에 다시금 고개가 끄덕여진다. “객관성, 보편성과 소통하지 못하는 사상은 억지요, 고집일 뿐이다.”

김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