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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출근 전 알바 수입 짭짤, 사고 때 책임 전담 씁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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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인력거족의 명암

월급이 매번 스쳐 지나간다고 느끼는 직장인. 부모님께 손 벌리기가 눈치 보이는 취업준비생. 아끼고 또 아껴도 생활비 통장이 ‘텅장’이 돼버리는 주부. 시간은 부족한데 돈은 필요한 이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신종 아르바이트가 있다. 출퇴근 때나 이동할 때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부수입을 얻는 ‘배송 알바’다.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지만 사고가 날 경우 본인이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위험 부담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물류·운송업을 본업으로 삼고 있는 기존 종사자들과의 갈등도 피하기 어렵다.

플랫폼이 구인·구직 통로 #지원자 급증해 경쟁 치열 #근로기준법 보호 못 받아

# 직장인 김진호(가명·43)씨는 출근 전이나 휴무일이면 서울 구로구 일대에서 쏘카 핸들러로 일한다. 이용자가 쏘카를 신청하면 쏘카 차량을 주차돼 있는 곳에서 이용자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져다주는 일이다. 거리·시간 등을 계산해 자신이 원하는 호출 건을 골라 수행하면 된다.

출근 전 3시간가량 일하면 두세 건 정도 처리할 수 있다. 수입은 거리 등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건당 평균 9000~1만5000원이다. 시급 1만원 정도 되는 셈이다.

김씨처럼 배달 알바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배달 알바에 대한 수요와 공급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우선 취업난·경제불황 등의 여파로 부수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투잡(직업과 부업을 병행) 희망자는 약 78만 명에 이른다. 전년 동기 대비 30% 넘게 증가한 규모다.

올해 투잡 희망자 30% 이상 증가

비슷한 시기, 즉 지난해부터 온라인·모바일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들이 알바를 활용한 크라우드 소싱(일부 과정에 대중을 참여시키는 비즈니스 모델) 기반의 당일 배송 플랫폼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가령 쿠팡·배달의민족 같은 플랫폼 기업이 주문을 받으면 배달 업무를 일반인에게도 나눠 주는 식이다.

이에 대해 플랫폼 기업은 e커머스 시장이 커지면서 급증하는 배송 물량을 소화하기 위한 돌파구라고 말한다. 배달 앱인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성호경 홍보책임은 “점심·저녁 시간 등 배달 물량이 몰릴 땐 배달 인력이 부족했다”며 “최근엔 배달기사를 전업으로 하려는 사람이 많아 필요한 시간대에만 고용하기 힘들었는데 알바를 고용하니 문제가 해결됐다”고 설명했다. 알바생이 필요한 기업에도, 일거리가 필요한 알바생에게도 배달 알바는 ‘윈윈’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다.

이런 시스템을 도입해 쿠팡은 ‘쿠팡플렉스’ ‘쿠팡이츠’, 배달의민족은 ‘배민 커넥트’, 부릉은 ‘부릉 프렌즈’, 쏘카는 ‘쏘카 핸들러’, LG유플러스 사내 벤처팀은 ‘디버’ 등을 출시한 상태다.

근무 조건과 방법은 플랫폼별로 다르다. 쿠팡플렉스는 원하는 시간대를 선택한 다음 배송 캠프에서 상품을 수령한 후 자신의 차로 배달한다. 배민 커넥트는 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일할 수 있으며 자신의 오토바이·자전거·전동킥보드로 음식을 배달한다. 쏘카 핸들러는 택시 ‘콜’처럼 ‘핸들’이라는 쏘카 호출에 응답한 다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면 된다. 디버는 배달 건이 생겼을 때 거리·평점 등을 통해 자동 배차를 받아 일하게 된다.

대부분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어 인기가 수직 상승 중이다. 쿠팡플렉스는 지난해 8월 론칭한 이후 현재 하루 평균 4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배민 커넥트 관계자 또한 “8월 첫주 대비 9월 첫주 입직자 수가 10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배송위탁 업체들에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디버의 경우 일반인이 자신의 차량으로 일을 하는 ‘공유경제형’ 서비스를 실현해 단가를 낮췄기 때문이다. 결국 기존 퀵서비스 업체보다 저렴한 비용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디버는 기존 매출의 23% 정도인 중개수수료를 10%로 대폭 낮춰 알바를 유혹하고 있다.

생계형 물류·운송기사와 마찰 우려

하지만 신인력거족의 급속한 확산으로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도 감지된다. 배송 알바생들이 정보·후기를 공유하는 각종 커뮤니티에선 ‘이전보다 알바 지원자가 많아져 배정받는 수가 점점 줄어든다’ ‘친한 알바생에게만 호출을 몰아주는 느낌이다’ 등 불만이 속출한다. 취준생 이영빈(가명·27)씨는 “최근 쏘카 핸들러 알바를 관뒀다”며 “경쟁이 치열해져 ‘핸들’ 잡기가 어려운데 마지막 날엔 6시간 동안 한 건도 못 잡고 허탕만 쳤다”고 말했다.

사고 시 책임을 알바생이 떠안아야 하는 위험 부담도 크다. 일반인 알바생을 포함한 배달기사에게 산재보험·오토바이운송종합보험 등을 지원하는 업체는 배달의민족이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다. 즉 대부분의 업체에선 물품 오배송·파손, 교통사고 시 알바생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플랫폼 노동자는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박범일 글로벌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됐던 골프캐디·학원강사 등이 근로자가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배달 알바 같은 플랫폼 노동자도 근로자로 인정받을 때까진 법적인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수열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은 “플랫폼을 통해 배달일을 하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노동관계법, 산재·상해보험 등 사회적 보호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직장인의 경우 본업인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도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용노동법에 ‘겸업금지’ 조항은 따로 없지만 회사 자체적으로 투잡을 금지한다면 해고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기존 물류·운송기사와의 갈등도 예상된다. 택시업계의 강력한 반발을 샀던 ‘카카오카풀’ 사태처럼 불법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다. 하지만 자신들이 매입한 상품만 배송하는 쿠팡플렉스는 ‘자기 상품 배송’은 불법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합법을 주장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배송 물품의 무게를 20㎏ 이하(이상은 화물)로 제한해 화물자동차법(자가 화물차량의 유상 운송 행위는 불법)을 위배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결국엔 ‘파이 나눠 먹기’식의 무한경쟁이 될 우려도 있다. 수열 정책기획국장은 “전업 배송기사들이 일거리가 줄까봐 위협을 느낄 정도”라며 “배송 알바 시장이 커지면 배송 단가가 낮아질 수밖에 없어 배송 산업 전반에 출혈이 예상된다”고 토로했다.

한편 국내의 한 대형 물류업체 관계자는 “일반인이 처리하는 물량은 전체 물류 시장의 작은 일부분일 뿐”이라며 “하지만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배달 알바 관련 법안을 마련해 주길 기다린다”고 말했다.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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