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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재현 논설위원이 간다

조국 영장 여부, 정경심 사법처리 수위에 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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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국 내전 어떻게 전개될까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아래 사진)이 명예와 자리를 건 마지막 승부를 벌이고 있다. 검찰이 조 장관에게 뇌물 등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아래 사진)이 명예와 자리를 건 마지막 승부를 벌이고 있다. 검찰이 조 장관에게 뇌물 등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연합뉴스]

청와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접촉을 시도했지만 냉랭한 대접만 받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 댓글사건을 함께 수사했다. 수사 과정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총장의 항명성 발언으로 이들은 좌천됐고, 이 정부 출범 이후 출세도 같이했다. 그만큼 두터운 인연의 두께를 갖고 있다. 하지만 조국 법무부 장관 수사를 놓고는 정반대의 진영에 서게 됐다. 한 검사는 “윤 총장이 박 비서관에게 지나칠 만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청와대와의 유일한 소통 창구마저 끊었다는 의미다.

부부 함께 구속하지 않는 게 관례 #박근혜 판례로 수사 범위 넓힐 듯 #경제적 공동체 위한 묵인도 범죄 #민정수석 포괄적 뇌물 적용 가능

조국 내전(內戰)이 격화되면서 윤 총장과 수사팀이 속도전에 들어갔다. 윤 총장 특유의 ‘벌떼 수사’ 방식이 동원된 것도 같은 연유다. “우리는 우리의 길만 가면 된다”는 검찰 수사팀의 표현은 이제 레토릭에 불과하다. ‘별건 수사’ ‘정치적 수사’ 등의 여당 공격에 일일이 대꾸할 여유도 없어졌다. 지난 20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있었던 친여권 성향 단체와 시민들의 ‘검찰 개혁’ 시위도 윤 총장의 마음을 다급하게 만들고 있다. 작금의 정치적·사회적 분란을 잠재우기 위해선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수사를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수사팀의 최우선 목표는 조 장관에 대한 사법처리다. 가능한 뇌물 등 혐의를 묶어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을 정도로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조 장관과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 사모펀드인 코링크를 실질적으로 운영했던 5촌 조카 등 세 사람의 구도를 범죄 혐의와 연결 짓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수사팀이 코링크를 고리로 펀드 돈이 들어간 2차 전지 제조업체 등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는 것은 조 장관의 간여 또는 묵인 여부 등을 찾아 나가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위 사진)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명예와 자리를 건 마지막 승부를 벌이고 있다. 검찰이 조 장관에게 뇌물 등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위 사진)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명예와 자리를 건 마지막 승부를 벌이고 있다. 검찰이 조 장관에게 뇌물 등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연합뉴스]

검찰 관계자의 설명. “조 장관에 대한 수사는 후보자 임명을 전후해 검토되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조 장관이 유력한 법무장관 후보자로 거론되면서 이런저런 자료들이 들어왔다.” 이 정부 핵심 실세 중 한 명인 데다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자료 검토를 하면서 함량이 떨어지는 수사를 생각했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가족 펀드를 둘러싼 첩보와 진정 등이 대검 수뇌부를 움직이게 했다고 한다. “당시 사채 시장 등에선 조 장관 부인과 조카가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린다는 소문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말들이 윤 총장 귀에 들어온 것으로 보면 된다”는 것이 이 검사의 주장이다.

“윤 총장이 수사 착수에 앞서 문 대통령을 독대해 수사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는 정치권 일각의 설(說)에 대해 대검의 한 검사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하던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수사 상황을 물어보려다 완곡한 거절을 당한 경험이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으로 있으면서 청와대가 수사에 개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조 장관이 이 정부 출범 이후 민정수석에 있으면서 검찰의 압수수색이나 구속영장 청구 등과 관련해 사전에 보고를 받지 않았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수사팀은 지난달 27일 첫 압수수색에 나설 때도 일체 외부에 알리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당시 조 장관 후보자는 청문회 준비단에 전화를 걸어 “지금 저희 친척들 집에서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알아봐 달라”고 말했다는 전언이다. 청와대에 알렸으면 조 장관이 미리 알았을 개연성이 큰데,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눈치였다고 한다.

이후 검찰 수사는 조 장관 딸의 입시부정 의혹과 관련한 각종 문서 조작행위와 펀드를 둘러싼 부정한 돈거래 및 직위를 이용한 권한 남용, 이에 따른 경제적 이득이 뇌물로 의율할 수 있는지 등에 집중되고 있다. 수사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을 다뤄본 경험자의 기술이라고 했던가. 조 장관과 가족들은 섣부른 대응으로 자기 발등을 찍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정경심 교수의 어설픈 노트북 반출과 컴퓨터 하드 디스크 교체는 수사팀에게 ‘손 안 대고 코 풀기’라는 기대 밖의 소득을 가져다줬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팀의 입장에선 사건이 손아귀에 딱 맞아지는 느낌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한 검사는 “조 장관이 임명 전 청와대에 들어가 자신의 결백을 하소연한 게 가장 큰 패착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파악한 정보로는 조 장관이 청와대를 찾아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며 “이후 조 장관이 임명되면서 수사팀은 자리를 걸고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결기를 다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이 또한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정아 사건’이 불거졌을 때 노 대통령은 변양균 정책실장을 불러 소위 말하는 친국(親鞫)을 행했지만 변 실장의 읍소에 휘말려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검찰 조사에서 변 실장의 부적절한 행태가 드러났고, 이는 노 정권의 몰락을 앞당겼던 요소로 작용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당시 상황을 목격했지만 이번에도 조 장관의 해명만 받아들이는 우(愚)를 범했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조 장관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는 어떻게 진행될까. 지난달 말 있었던 김명수 대법원의 박근혜 전 대통령 뇌물 사건 판결이 조 장관 사건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가 돈을 모으는 것을 묵시적으로 동의했다는 이유로 뇌물죄가 인정된 배경에는 경제적 공동체라는 전제가 있었다. 타인 관계인 두 사람을 특별한 상황을 들어 경제적 공동체로 인정한 만큼 부부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조 장관이 부인이 경제적 이득을 얻는데 공모를 했거나 알고도 묵인을 했다는 점을 검찰이 밝혀내야 한다.

검찰 내부에선 금융사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던 한광옥 비서실장의 예를 들어 민정수석도 포괄적 뇌물죄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또한 조 장관의 공모 또는 묵인 여부를 밝혀내는 게 관건이다. 검찰이 최근 펀드 관련 수사에 집중하는 것도 조 장관 부부의 혐의를 동시에 밝혀내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정 교수에 대한 소환은 조 장관 조사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특히 정 교수에 대해 검찰이 영장을 청구할 경우 조 장관에 대해서는 불구속 기소로 마무리할 개연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부부를 동시에 구속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 교수에 대해 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경우 이는 조 장관을 상대로 검찰이 강공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전략이다.

수사가 시작되면서 윤 총장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거의 탈진을 했다고 한다. 그는 여전히 “이번 정부가 잘 되기를 바라는 충정에서 범죄 혐의자를 솎아내려고 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 장관 청문회 당일 날 정 교수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급히 기소한 것도 청와대에 메시지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윤 총장의 뜻이 왜곡되면서 그는 이제 조 장관을 상대로 명예와 자리를 건 일생의 마지막 승부를 벌이게 됐다.

급히 병원을 찾아 링거까지 맞으며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윤 총장의 투혼이 결말을 낼 시점도 얼마 남지 않았다. 조 장관이 부인과 자신에 대한 소환 조사 시점에 어떤 결단을 내릴지도 주목된다. 조 장관이 기소 이후에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어 법원 판결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려 할까.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