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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닥친 기후위기…150개국 400만명 "비상 사태" 외쳐

중앙일보

입력

국제 기후행동 주간을 맞아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9·21 기후위기 비상행동'에서 참가자들이 온실가스 배출 제로와 기후 비상선언 선포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 기후행동 주간을 맞아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9·21 기후위기 비상행동'에서 참가자들이 온실가스 배출 제로와 기후 비상선언 선포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는 330개 시민·환경단체가 구성한 '기후위기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의 집회가 열렸다.

20~27일 '국제 기후 파업'(global climate strike) 주간'에 맞춰 열린 이 날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은 전 세계가 겪는 지금의 기후 변화를 '기후 위기(Climate Crisis)'로 선포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촉구했다.

비상행동은 이날 선언문에서 "지금은 비상 상황"이라며 "지구의 온도 상승이 1.5도를 넘어설 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시작된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남은 온도는 0.5도뿐"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집회는 독일 베를린과 영국 런던, 호주 멜버른 등 전 세계 150여 개 나라에서도 400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들 역시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를 한목소리로 선언했다.

이번 전 세계 동시 다발 시위는 23일 유엔 기후 행동 정상회의(Climate Action Summit)를 앞두고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과감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추진됐다.

세계 곳곳에서 기후위기 징후 뚜렷

브라질 북부 아마조나스주 휴마이타에 있는 아마존 강 유역의 열대우림에서 지난 7일 현지인 소방대원이 산불을 끄고 있다. [EPA]

브라질 북부 아마조나스주 휴마이타에 있는 아마존 강 유역의 열대우림에서 지난 7일 현지인 소방대원이 산불을 끄고 있다. [EPA]

기후 위기의 징후는 지구촌 곳곳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 국립우주연구소(INPE)가 3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달에만 3만901건의 산불이 발생, 남한의 3분의 1 정도되는 2만9944㎢의 아마존 열대우림이 불에 탄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8월의 6048㎢의 5배에 가깝다.

농지를 얻기 위해 인위적으로 불을 지른 것도 있지만, 예년보다 비가 적게 내리고 기온이 높은 상황에서 강한 바람까지 불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올해 1∼8월 수마트라 섬과 보르네오 섬 등 2984곳에서 산불이 나 삼림 3287㎢를 태웠다.
인도네시아 산불로 인한 연기는 인근 필리핀·태국 시민들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

빙하도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다.

지난 7월 폭염으로 그린란드에서는 7월 한 달 동안 총 1970억t의 얼음이 소실됐다고 덴마크 기상연구소가 밝혔다. 그린란드 빙하 중에는 올해 여름에만 두께가 9m나 얇아진 경우도 있다. 아이슬란드 서부 '오크(Ok)' 화산에서는 지난달 18일 사라진 빙하에 대한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다.
약 700년의 역사를 지닌 ‘오크예퀴들(Okjokull)’ 빙하가 공식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았음을 애도하는 행사였다.

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오르면서 허리케인도 거세지고 있다.
기온이 상승하면 대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게 된다. 기온이 1도 상승하면 대기는 수증기를 7% 더 포함할 수 있어 태풍은 강한 바람과 함께 물 폭탄도 쏟는다.
2013년 11월 태풍 하이옌으로 필리핀에서만 6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지난 1일 초강력 허리케인 '도리안'이 바하마를 강타해 2500여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바하마의 그레이트 아바고 섬에 상륙했을 때 풍속은 시속 297㎞였다.
이는 역대 허리케인 중 육지에 도달해 가장 강한 바람을 뿜어낸 1935년 노동절의 허리케인과 같은 기록이다.
대서양에서 4년 연속으로 가장 강력한 5등급 허리케인이 나타난 것도 처음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도리안의 비정상적 위력과 발달 속도는 온난화하는 세계에서 더 강력한 허리케인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다.
22일 들이닥친 제17호 태풍 ‘타파’를 비롯해 올해는 태풍이 6개나 한반도에 영향을 줬다.
지난 7일에도 제13호 태풍 ‘링링’이 지난 7일 제주도와 서해안을 강타했다.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장인 문일주 교수는 “온난화로 인해 강력한 태풍이 많이 발생하고, 최고 강도를 유지한 채 북상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100년 동안 전 세계 해수 온도는 평균 1도가량 상승했다.
중위도 해역의 수온은 열대 해역보다 더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런 영향으로 일본 오키나와를 지난 다음에도 태풍이 약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늘어나는 온실가스 탓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7월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인근 분수대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AFP=연합]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7월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인근 분수대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AFP=연합]

기후 위기라고 할 정도로 급격한 기후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지속해서 상승하기 때문이다.

기상청은 최근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서 지난해 측정한 이산화탄소 연평균 농도는 415.2ppm으로, 2017년보다 3ppm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북반구 대표 기후변화 감시소가 있는 미국 하와이 마우나로아에서 측정한 지난해 이산화탄소 평균 농도는 408.5ppm으로, 전년보다 2ppm 높아졌다.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상승하는 것은 갈수록 더 많이 배출하기 때문이다.
유엔이 최근 내놓은 ‘기후 행동 및 지원 동향’ 보고서를 보면 2000~2007년에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이 연평균 3.1%(토지이용 산림 흡수 분야 제외) 증가했는데, 2010~2016년에는 연평균 증가율이 1.4%로 줄었다.

파리 기후협약에 따라 세계 각국이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고려하면, 2016~2030년 사이에도 배출량이 연평균 0.7%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 12월 체결된 파리기후협정에서는 지구 기온 상승을 2도 이하로 묶고, 가능하면 1.5도 이하로 묶기 위해 노력하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파리기후협정 이후에도 증가율이 낮아질 뿐 전체 배출량 자체는 늘어나는 것이다.

한국의 감축 성적은 전 세계 추세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수준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산화탄소 기준으로 2017년 7억901만t으로 1990년 이후 연평균 3.3% 증가했다.

더욱이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정한 '2020년 목표'와 비교해보면 실제 배출량은 연도별 목표치를 2.3~15.4%씩 초과했다.
줄어들기는커녕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을 때의 배출 전망치(BAU, Business as usual) 수준대로 증가하고 있다.
2020년 BAU 대비 30% 감축이란 목표는 물 건너 간 셈이다.
더욱이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설정한 2030년 BAU 대비 37% 감축도 힘든 상황이다.

2040년까지 1.5도 상승할 수도 

러시아 사하공화국 야쿠츠크에 위치한 영구동토박물관. 온난화로 영구동토가 녹아내리면 땅속에 갇혀있던 메탄이 방출돼 지구온난화를 부추길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중앙포토]

러시아 사하공화국 야쿠츠크에 위치한 영구동토박물관. 온난화로 영구동토가 녹아내리면 땅속에 갇혀있던 메탄이 방출돼 지구온난화를 부추길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구 평균 기온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1도 상승했고, 최근에는 10년마다 0.17도씩 상승하는 추세다.

이런 추세라면 오는 2040년이면 지구 기온이 산업혁명 전보다 1.5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온실가스 배출이 급격히 줄지 않는 한 기후 재앙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지구 기온 상승이 '도미노 현상'처럼 또 다른 문제를 계속해서 일으키고, 이로 인해 온난화가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을 통해 증폭된다고 설명한다. '양의 되먹임'은 작은 변화의 결과가 다시 원인을 키워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인 사례가 북극지방 영구동토층에 있는 메탄가스의 방출이다.
북극 영구동토층에는 전 세계 땅속 탄소의 30~50%가 저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온 상승으로 영구동토층이 녹고, 그에 따라 땅속 메탄가스가 방출되면 온실가스 농도는 급증한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3배나 더 강력한 온실가스다.

북극 바다 얼음도 마찬가지다. 태양에너지를 반사해 우주로 되돌려 보냈는데, 얼음이 없어지면서 바다가 태양에너지를 흡수해 지구 기온을 올리는 역할을 한다.

지금처럼 기온 상승이 계속될 경우 기후변화는 걷잡을 수 없는 양상으로 바뀌고, 지구는 '온실(greenhouse)'을 지나 '찜통(hothouse)'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기후 전문가들은 지구 기온이 2도 이상 상승할 경우 '도미노 현상'과 '양의 피드백' 상황에 돌입하고, 온난화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온난화가 가파르게 진행된다면 2100년에는 4~5도까지도 상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어떻게 해서든지 1.5도 이내로 묶어야 하고, 당장 필요한 조치를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3도 상승하면 기후 재앙 눈 앞에

지난 4월 16일(현지시간) 러시아 캄차카반도의 틸리치키 부근의 얼음 위를 걷는 북극곰. 굶주림으로 야윈 모습이다. [AP=연합뉴스]

지난 4월 16일(현지시간) 러시아 캄차카반도의 틸리치키 부근의 얼음 위를 걷는 북극곰. 굶주림으로 야윈 모습이다. [AP=연합뉴스]

세계 각국은 파리기후협정에 따라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출했지만, 이를 이행한다고 해도 지구 기온이 3도는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극단적인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2100년에는 기온이 3~4도 높아질 수도 있다.

기온이 그렇게 치솟는다면 지구는 어떤 상황이 될까.
지난해 3월 세계자연기금(WWF)은 학술지 '기후변화(Climate Change)'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지구 기온이 2도 상승할 경우 전 세계 33개 '우선 지역(Priority Places)'에서 생물의 25%가 멸종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선 지역'은 아마존이나 마다가스카르, 보르네오 등 희귀 생물이 서식하는 지역이다.
WWF는 지구 평균기온이 4.5도 상승하면 아마존 열대 우림의 69%가 멸종하는 것을 비롯하여 우선 지역 생물의 절반이 멸종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플로리다공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연구팀은 지난해 5월 '기후변화(Climate Change)'에 게재한 논문에서 지금 추세라면 2100년 바닷물 수온이 2.8도 상승, 산호초와 북극곰이 멸종하는 등 해양생태계가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도 전 세계 해양에서는 바닷물 온도 상승으로 산호초가 하얗게 죽어가고 있다.
2017년 호주 정부의 조사 결과, 대산호초의 91%가 백화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호주 대산호초를 포함해 전 세계 산호초의 70%가 이미 피해를 보았다.

폭염도 갈수록 심각해진다.
특히 중국 북부 평원의 경우 2070년이면 여름철 폭염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바뀔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70년과 2100년 사이 이 지역의 습구온도(wet-bulb temperature)가 35도까지 치솟는 일이 많이 늘어날 전망이다.
습구온도는 얇은 천을 물에 적셔 기온을 측정하는 것으로, 상대습도나 불쾌지수를 알기 위해 쓴다.
습구온도가 35도에 이르면 너무 뜨겁고 습도도 높아 사람의 몸은 땀으로 체온을 식힐 수가 없어 그늘에서도 6시간 이상 버틸 수가 없다.

극지방 얼음이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한다. 수온 상승에 따른 바닷물의 열팽창도 해수면 상승의 원인이 된다.
지난 2013년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 협의체(IPCC)는 보고서를 통해 2100년경 해수면이 60~98㎝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일부에서는 2~3m도 상승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나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서는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해수면과 비슷한 높이에 사는 인구가 1억6800만 명이나 된다.
신혼여행지로 인기 있는 몰디브는 국토의 80%가 해발 1m 이하다.

전시 같은 비상한 대처가 필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에서 20일(현지시각) 학생들과 시민들이 국제 기후 파업 주간을 맞아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에서 20일(현지시각) 학생들과 시민들이 국제 기후 파업 주간을 맞아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지속가능성 리더십 연구소의 폴 길딩 연구원은 최근 펴낸 '기후 비상의 정의' 보고서에서 “비상사태는 우리가 사회와 경제 등을 관리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우리가 직면 한 위험을 적절히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고 지적했다.
비상사태는 위험이 높고, 실패의 결과를 용납할 수 없을 때, 대응이 적절한지 판단하는 데 시간 제약이 있을 경우를 말한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는 “기후 비상사태를 맞아 국가의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하는 전시 체제를 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폴 길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상황을 제시한다.
미국의 경우 군사비 지출이 전쟁 전에는 국내총생산(GDP)의 2% 미만이었지만 1945년에는 37%를 차지했다. 그 사이 GDP 자체도 75% 증가했다.

각국 정부도 느리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는 하다.
23일 유엔의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연설을 통해 한국의 노력을 소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각국 정부의 변화는 너무 느리다.
청소년 환경 운동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스웨덴의 10대 운동가 그레타툰베리(16)는 20일 뉴욕 집회에 참석해 "지금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우리"라면서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것"이라고 말했다.

27일 국내에서도 청소년들은 학교 수업을 빠지면서 청소년 기후 행동이 주관하는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에 참여한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AP=연합뉴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AP=연합뉴스]

그들은 말한다. "기후 재앙으로 살 수 없는 세상이 눈앞에 닥쳤는데, 학교가 무슨 소용이냐"고.

결국 기후위기는 태풍에 대비하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대처하는 수준을 요구한다.
다만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참여해야 하고, 하루 이틀 혹은 한두 달이 아닌 지속적인 참여, 끝이 정해지지 않은 미래까지 지속적인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

더는 말로만 약속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약속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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