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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딱…딱…딱, 무슨 소린가 했더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순의 시골 반 도시 반(10) 

도토리 나무로 둘러쌓인 숲. 10월이 되면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해진다. [사진 한순]

도토리 나무로 둘러쌓인 숲. 10월이 되면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해진다. [사진 한순]

시골집에서 밤에 잠을 자다 보면 한밤중에 “딱” “딱” 하고 집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곤 한다. 처음에는 집 짓는 과정에서 공사가 잘못되어 집의 어느 부분이 갈라지는 소리인가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지난밤에 소리가 났던 곳으로 올라가 이곳저곳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그곳에는 도토리가 떨어져 있거나, 아직 모자를 벗지 못한 도토리가 모자를 쓴 채 떨어져 있었다.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이렇게 큰가 하는 의아한 마음도 들었지만, 별다른 흔적을 찾을 수 없으니 도토리로 심증이 갔다.

나의 심증은 적중했다. 10월이 깊어질수록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는 요란해졌다. 도토리를 줍고 있으면 또 내 등을 ‘툭’ 치며 또 다른 도토리가 떨어졌다. 도토리를 줍고 갈참나무 나뭇잎을 주워 주변 정리를 하려 낙엽 태우는 통에 넣다가 문득 손이 멈추었다.

잠시 후면 나뭇잎과 도토리 껍질에 불이 붙을 것이고, 그것을 마지막 모습으로 그들의 생명은 다하게 된다. 나는 나에게 걸린 낙엽과 도토리의 다비식을 치르는 셈인데, 그들에게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이번 생이 후회 없는가? 도토리 너는 너 할 일을 다 했냐?” 그러자 모자를 삐뚜름하게 쓴 도토리가 픽 웃으며 “이 질문을 너에게 돌려주마” 했다.

나는 하하 웃으며 도토리의 반격을 받았다.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당황스러운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이렇게 자연의 사물과 내가 만나는 어느 순간 높은 스님들이나 할 만한 질문을 주고받는다든지, 징그러운 뱀 때문에 내 몸이 오그라든다든지 하는 ‘경계 없음’이 가장 당황스럽다. 자연의 사물들은 방어할 틈을 주지 않고 경계를 휙 넘어 내 안으로 쳐들어온다.

도토리에게 이번 생은 후회 없었는지, 할 일을 다 했는지 질문했다가 그대로 돌려받았다. [사진 한순]

도토리에게 이번 생은 후회 없었는지, 할 일을 다 했는지 질문했다가 그대로 돌려받았다. [사진 한순]

인간인 내가 도토리에 받은 질문은, 바쁜 일상에 쫓겨 허둥대다가 길을 잃은 한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기에 충분했다. 둘째 아이가 어렸을 때 퇴근 후 간신히 시간이 나서 아이와 놀이터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는 시소와 그네, 철봉 그리고 동그란 쇠막대를 이어 만든 미끄럼틀이 있었다. 아이와 나는 오랜만의 놀이터 외출에 신이 나 이것저것 만지고 타보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꽤 오랫동안 야외 활동을 하지 않았던 내가 동그란 쇠막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다 그대로 벌렁 누워 쇠에 머리를 부딪쳤다. 아이도 놀라고 나도 놀라 우리는 가능한 침착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걱정할까 봐 나는 내 방에서 진정하며 놀란 마음과 몸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너무 놀라 속이 메슥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저런 안 좋은 생각들이 나를 지배했다.

그런 생각들에 시달리다 “그래, 네가 지금 당장 죽으면 무엇을 가장 후회할 것 같으냐?”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었다. 그러자 당장 떠오른 대답은 아이들을 잘 키우려 나의 속마음을 다 보이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좀 엄하고 냉정한 엄마 노릇을 한 것이 제일 마음에 걸렸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훨씬 더 부드럽게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고,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네가 오늘 쇠에 머리를 부딪쳐 죽을 거라면,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다 죽어라. 그것이 후회를 최소화하는 일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나는 걱정을 떨쳐내고 방에서 나와 과일을 깎아 아이들과 웃으며 먹었다. 머리에는 혹이 나고 띵한 기운이 있었지만, 아이들과 웃고 먹으며 그 순간이 지나갔다. 혼란과 갈등이 많은 삶에서 이런 경험은 나를 막바지까지 몰아붙여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나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 그리고 사랑이다. 그런데 ‘사람’, 그 사람이 놀라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상처를 주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과의 직면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과 직면해서는 이제껏 보았거나 믿었던 자신을 부인해야 하는 순간들이 오게 마련이다. 그런 과정에서 잘못 파편이 튀면 주변에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도 같이 상처를 입게 된다. 그 파편이 관계에서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자신과 직면하는 시간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같이 타이밍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문제이므로, 그리고 매우 심각한 고개를 넘어야 하므로 그러하다.

관계에서 서로의 엇갈림이 오는 것은 매우 쓸쓸한 일이다. 대신 그간의 사람 관계를 깊이 생각해 보고 되짚어보는 좋은 기회가 마련된다. 격물치지(格物致知)란 말이 자꾸 마음자리에서 떠돌고 있는 요즘이다.

한 사람과 이인삼각으로 20년 넘게 함께 걷는다는 것은 꽤 오붓하고 또 외로운 일이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한 사람과 이인삼각으로 20년 넘게 함께 걷는다는 것은 꽤 오붓하고 또 외로운 일이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한 사람과 20여 년이 넘게 이인삼각으로 길을 걸은 것과 묶은 다리를 풀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고 다니는 것과 어느 경우가 사람 관계의 본질을 좀 더 가깝게 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일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과의 관계를 20여 년 함께하며 그 사람의 곁을 골목길처럼 걷는 일은 호젓하고 오붓하고 또 외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그리 아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사랑받기를 원하고, 사랑하기를 원하고, 주고받기를 원하나 자신이 더 갖길 원하고, 필요하면 오고, 필요 없으면 떠날 수도 있는 존재라는 사실. 그러나 그들 모두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사랑하고 싶고, 순백의 성혈로 사랑하고 싶은 소망이 있는 존재라는 것.

최근 나는 ‘인간은 배신의 역사’라는 말을 잘한다. 우리 아버지는 세상을 사실 만큼 사셨다며 연세가 들었다고 내 곁을 떠났고, 어느 경우는 자랄 만큼 자라 더는 간섭을 원하지 않는 배신(?), 트렌드가 바뀌었다고 떠나는 배신, 사업이라든지 실질적인 필요가 없어 떠나는 배신, 도토리가 나무에 매달릴 만큼 매달렸다고 떨어지는 배신도 있다.

나는 자연의 섭리와 배신이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배신이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영원하리라는 거짓말을 전제로 보면 모든 생태계는 배신의 역사다. 순환의 연속은 항상 변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완벽하거나 변하지 않는다면 그 생명체는 죽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아픈 것이다. 사람은 이상을 가지고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늘 바라고 꿈꾸기 때문이다.

사람 관계에서는 격물치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늘 상처받는다.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앎에 이름. 사람 관계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앎에 이를 수 있을까?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마음껏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단계에서 대부분 상처받고 떠나고 배신하고 분노한다. 사람 역시 늘 성장하고 변하는 끊임없는 자연의 현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처와 분노와 배신이 살아 있는 것들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 내려와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녹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숭고한 이상을 가진 인간이므로 아프다. 사람이라서 아프다. 살아 있기에 아플 수밖에 없다.

집 주변에 떨어진 낙엽과 도토리를 태우려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다. 도토리는 깊은 산 큰스님이나 건넬 법한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그것도 머리에 모자를 삐뚜름하게 쓴 불량한 자세로.

“도토리 넌 죽었다. 이렇게 무거운 질문을 던지다니…”

한순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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