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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칭] 살인의 추억 범인은 콩밥 먹고 다녔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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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넷플릭스]

살인의 추억 [넷플릭스]

"밥은 먹고 다니냐?"

송강호의 여러 명대사를 남긴 영화 <살인의 추억>.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무려 10명을 잔혹하게 죽이고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화성연쇄살인을 모티브로 만든 봉준호 감독의 흥행작이다.

끝내 풀리지 않을 줄 알았던 사건의 실마리가 30여년만에 드러났다. <살인의 추억>을 재주행하기에 충분한 사유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이모(56)씨를 지목했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지난 7월부터 과거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증거물 DNA를 분석해 범죄자 DNA 데이터 베이스와 매칭한 결과, 3건이 이씨와 일치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1994년 처제 강간살인을 저질러 25년째 수감중이다.

30년 묵은 미제사건을 푼 건 발전한 과학 수사 기술이다. 30년간 미제로 남았던 이유 역시 과학 탓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좀체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범인을 잡아낼 방법이 없었다.

영화의 첫 살인 사건 현장에서 두만(송강호)는 논두렁에 찍힌 발자국을 발견한다. 범인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지만 야속하게도 트랙터가 발자국을 밟고 지나간다. 범죄물에서 당연히 볼 수 있는 폴리스라인 같은 것도 <살인의 추억>에는 나오지 않는다.

시대 배경이 1980년대다. 군사정권이 지배하는 나라는 온통 폭력적이었다. 경찰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고졸 출신 형사 용구(김뢰하)는 구둣발로 용의자를 짓밟고 구타하며 자백하게 만든다.

"향숙이 예뻤다"  [살인의 추억]

"향숙이 예뻤다" [살인의 추억]

용구는 살인 용의자만 때리는 게 아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나선 시위대들도 때리고 짓밟는다. 영화에선 데모하는 여대생을 때리고, 식당에서 술마시던 대학생들도 뜬금없이 때린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몽둥이였던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

두만 역시 용구를 부추기거나 방조하며 범인 만들기에 열중한다. 육감으로 찍은 용의자의 운동화를 가져다가 논두렁에 발자국을 남기고 사진을 찍어 증거라고 들이대는 수준이다.

하다 하다 안 되니, 무당집까지 찾아가는 두만. [살인의 추억]

하다 하다 안 되니, 무당집까지 찾아가는 두만. [살인의 추억]

반면 서울에서 파견 온 태윤(김상경)은 두만이나 용구와는 반대편에 있는 캐릭터. 그는 입버릇처럼 "서류는 절대 거짓말을 안 한다"고 말한다. 서류와 증거, 과학적 사고를 신뢰하지만 아쉽게도 그 시대의 과학 수준이 태윤을 뒷받침하기엔 한계가 있다.

양 극단에 있는 두만과 태윤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간다. 두만은 자신이 만들었던 용의자 노트를 찢어버리고, 점차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인물로 발전한다.

육감으로 뛰는 두만(송강호)과 서류를 믿는 태윤(김상경). [살인의 추억]

육감으로 뛰는 두만(송강호)과 서류를 믿는 태윤(김상경). [살인의 추억]

반대로 태윤은 수사 과정에서 접촉했던 여학생이 끔찍한 몰골로 살해된 장면을 본 뒤 이성을 잃는다. 여러가지 정황 증거상 범인이 분명하다고 믿었던 현규(박해일)의 DNA 분석 결과 범행 현장에서 나온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미국발 서류를 받아들고도 "뭔가 잘못됐다"며 폭주한다.

영화는 두 시간 짜리지만 실제 사건은 몇 년에 걸쳐 벌어졌다. 그 사이에 시대 분위기도 바뀌었고, 수사 기법도 바뀌었으니 두 주인공의 변화도 어색한 일은 아니다.

구반장(변희봉)의 집권기엔 용의자를 고문해 자백시키는 게 당연한 듯한 풍경이었지만, 구반장이 잘리고 신동철(송재호)이 수사본부를 맡은 뒤론 구타는 금지된다. 물론, 신동철은 "내가 때리지 말라고 캤지(했지)?"라며 용구를 구타하지만 말이다.

여경에게 커피 심부름이나 시키던 시절이지만, 여경 귀옥은 결정적 단서를 찾아낸다. [살인의 추억]

여경에게 커피 심부름이나 시키던 시절이지만, 여경 귀옥은 결정적 단서를 찾아낸다. [살인의 추억]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 폭력은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위계의 맨 아래 놓인 힘이 약한 자는 방어할 길이 없다. 잔혹한 연쇄 살인으로 몇 년에 걸쳐 힘 약한 여성 열 명이 죽어나간 건 단순히 흉악한 범인 한 사람 탓만은 아니다. 그걸 제어할 수 없었던 시대의 한계이기도 하다.

2013년 이후 우리나라 살인사건 검거율은 97% 이상을 꾸준히 기록했다. 2017년엔 검거율 100%였다. <살인의 추억>이 추억인 시대라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싶지만, 글쎄. 최근 몇년간 흉악범죄 발생 비율이 한해 30~40%씩 뛰어오르고 있다. 웬만하면 잡힌다 해도 한 해 300명 가량 살해되는 것 역시 현실이다.

치안, 방범 인프라가 깔리지 않은 곳에서 홀로 밤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살인의 추억> 피해자들의 공포는 여전히 실감난다. 분명히 봤던 영화인데도, 비가 내리고 여자 혼자 걷는 장면에서는 또다시 심장이 조여온다.


제목   살인의 추억
주연   송강호, 김상경, 김뢰하
장르   미스터리
방영   2003
등급   15
특징   서스펜스
평점   IMDb 8.1  로튼토마토 90%  에디터 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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