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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친정에서 차례 지낸 며느리의 특별한 추석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22)

추석연휴를 맞아 남편과 딸은 제주도로 향했다. 나는 일정상 명절 당일에만 쉬게 되어 혼자 집에 남았다. [사진 unsplash]

추석연휴를 맞아 남편과 딸은 제주도로 향했다. 나는 일정상 명절 당일에만 쉬게 되어 혼자 집에 남았다. [사진 unsplash]

“어머니, 죄송해요. 마감이 딱 걸려서 내려가지도 못하고. 준비하시느라 피곤하시죠?”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 남편과 딸 아이는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고, 잡지 제작 일정상 명절 당일에만 쉬기로 한 나는 집에 혼자 남았다.

시댁으로 전화를 드린 건 연휴 첫날인 추석 전날, 차례상에 올릴 음식과 손님상 음식을 마련하느라 어머님 이하 집안의 모든 여성이 쉴 틈 없이 일하실 때였다. 설에는 큰 아버님 댁에서 문중 상을 차리고, 추석에는 아버님 댁에서 차례를 지내는 터라 다른 어떤 때보다 준비할 것이 많다는 걸 알고 있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제주의 명절은 육지와는 조금 다르다(제주도민들은 제주 외에 다른 지역을 보통 육지라고 부른다). 결혼 초에는 시댁 어르신들이 건네는 인사도 이해하지 못하는 ‘육지 며느리’였지만, 10년 넘게 이런저런 가족 행사를 함께 치르다 보니 지금은 어느 정도 제주 생활에 익숙해진 상태다.

제주는 친인척 간의 관계가 무척 중요하다. 친인척을 제주 말로 ‘괸당’이라고 하는데, 이 ‘괸당 문화’를 이해해야 제주의 풍습을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부침 많은 섬 생활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집단이 친인척이었을 테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추석은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로 여겨진다. 그 해에 수확된 작물로 차린 음식을 조상께 올리고, 가족 모두 함께 모여 인사하는 자리는 어느 지역이든 같겠지만 모임의 규모와 중요도가 남다르다고 할까.

제주에서는 음력 8월이 되면 8촌 이내 친척들이 모여 조상들의 묘를 차례로 벌초한다. 이를 '모둠벌초'라고 부른다. [중앙포토]

제주에서는 음력 8월이 되면 8촌 이내 친척들이 모여 조상들의 묘를 차례로 벌초한다. 이를 '모둠벌초'라고 부른다. [중앙포토]

우선 벌초부터 차이가 있다. 제주에서는 추석이 다가오는 음력 8월이 되면 8촌 이내 친척들이 다 함께 모여 조상들의 묘를 차례로 벌초한다. 모든 친척이 함께 벌초하기에 이를 ‘모둠벌초’라고 부르는데, 이때 참석하지 못하면 문중 친척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식께 안 헌건 놈이 모르고(제사 안 지낸 것은 남이 모르고), 소분 안 헌 건 놈이 안다(벌초 안 한 것은 남이 안다)’는 제주 속담은, 벌초를 어떻게 했는지로 그 집안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이곳의 문화를 잘 드러낸다.

요즘은 제주에 사는 젊은 삼춘(제주의 삼춘은 남녀구분 없이 아랫사람이 웃어른을 칭하는 일반명사로 생각하면 된다)들이 이전보다 많이 줄었기에 직접 벌초하는 대신 업체를 고용해 벌초 대행을 맡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제주에 살고 계시는 어른들은 선산에 모여 벌초 과정을 지켜보곤 하신다. 우리 가족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육지에 살더라도 벌초 때는 참가하라는 게 불문율이었지만, 지금은 부득이 못 오면 벌금을 내는 것으로 대신하라고 정리된 상황이다.

함께 차례를 지내는 가족의 숫자도 남다르다. 우리 집만 해도 아버님의 형제와 사촌분들과 그분들의 자손까지 합해 추석에 시댁에 오시는 친인척의 숫자가 60~70명에 이른다. 설에는 가족들이 무리를 지어 여러 친척 집을 돌며 조상과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고 음식을 나눠 먹는다면, 추석에는 한 군데에 모여 차례를 함께 지낸다는 게 차이다. 이 역시 가족과 친인척이 중요한 제주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다 보니 준비하는 음식도 많아지고, 당연히 집안 여성들의 일도 늘어난다.

“서운해서 어쩌냐. 식구들도 못 보고, 맛있는 것도 못 먹고. 집에 먹을 건 있니? 어쨌든 혼자 있더라도 잘 챙겨 먹어야 한다.” 되려 서울에 남아 있는 나를 걱정해주시는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더 죄송할 뿐이었다.

서울에 남아있는 나를 걱정하시는 어머님에 이어 친정엄마가 전화를 주셨다. 혼자 있지 말고 집으로 와서 같이 밥을 먹자는 것이었다. [사진 unsplash]

서울에 남아있는 나를 걱정하시는 어머님에 이어 친정엄마가 전화를 주셨다. 혼자 있지 말고 집으로 와서 같이 밥을 먹자는 것이었다. [사진 unsplash]

조금 후 친정엄마가 전화를 주셨다. “너 시댁에 못 내려간다고 해서 전화했다. 추석에는 회사 안 나갈 테니, 혼자 있지 말고 큰아버지 집으로 와서 아침 같이 먹자.” “상황 좀 보고 말씀드릴게요. 오늘 늦게 끝나면 내일 아침에 나가기 힘들 수도 있어서요.” “그래, 너 편할 대로 해. 밥은 꼭 챙겨 먹고.” 친정집 차례는 시댁에 비하면 단출하다.

큰아버지 댁에 모인 친척이라고 해 봤자 채 10명도 안 되는 데다가, 차례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같이하는 것이 명절 행사의 전부다. 결혼한 이후에는 대부분 시댁에 내려가느라 집안 어른들께 명절 인사를 드리기는 쉽지 않았기에 이번 기회에 찾아뵈면 좋을 것 같았지만 새삼스럽게 혼자 나서겠다고 선뜻 입이 안 떨어졌다.

사무실에서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엄마, 뭐해? 일하는 중? 내일 뭐 할 거야? 삼성동 큰할아버지 집에 가지.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도 만나고.’ ‘우리 딸이 다 컸네.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도 하고. 엄마가 알아서 할게. 제주도에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아빠 말 잘 듣고, 명절 잘 보내다 오세요. 흐흐’ ‘엄마, 그러지 말고 내일 가. 나중에 후회한다!’ ‘와~우리 딸이 이런 말을 다 하네. 알았어, 알았어.’ 초등학교 6학년 딸 아이가 보낸 문자에 마음이 철렁했다. 나중에 후회한다니! 갈까 말까 망설이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추석 아침, 조금 서둘러 큰아버지 댁으로 나섰고, 오랜만에 친정 차례상에 앞에서 인사를 드렸다. 예상치 못한 방문에 친정집 어르신들은 반가워하셨고, 식사하는 내내 음식을 챙겨주시며 안부를 물으셨다. 엄마, 아빠가 좋아하신 건 두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나 역시 30여 년 전 부모님 따라 차례 지내러 갔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 명절 기분에 한껏 빠져들었다. 추석은 이렇게 오랜만에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묻고 넉넉하게 차린 음식을 나누는 자리라는 것, 상차림이 큰 시댁이나 작은 친정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 이렇게 모두가 함께 모여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도 평생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라는 게 새삼 고마웠다. 13살 딸 아이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추석 아침에 친정집 차례를 지내고 왔다는 소식에 ‘엄지 척’ 이모티콘을 보낸 우리 딸 말이다.

김현주 우먼센스 편집국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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