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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삭발과 구레나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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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팀 차장

최민우 정치팀 차장

1860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주걱턱은 콤플렉스였다. 사납고 고집스러운 인상을 심어주는 탓에 정치인으로서 치명적 약점에 해당했다. 힘겨운 선거전을 치르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그레이스 베델이라는 11세 소녀의 편지가 날아왔다. “당신은 얼굴이 갸름하기 때문에 구레나룻을 기르면 훨씬 더 좋게 보인다”라며 “구레나룻을 좋아하는 여성들이 남편까지 (당신에게 투표하게끔) 닦달하면 당선될 것”이라고 했다. 소녀의 당돌한 권유는 링컨을 미국 16대 대통령에 오르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본질은 콘텐츠”라고 떠들어봤자 ‘꼰대’로 몰릴지 모른다. 어떤 소리를 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데 무슨 메시지 타령인가. 미디어 정치, 이미지 소비시대에 정치인의 외모 경쟁력은 그야말로 ‘갑’이다. 이는 미국 프린스턴대 알렉스 토도로프 교수의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그가 2005년 발표한 ‘외모에 의한 능력 평가와 선거 결과 예측’에 따르면 2000∼2004년 치러진 95건의 선거에서 외모 평가와 결과 예측이 일치한 적중률은 73%였다. (적중률 50%가 외모와 선거 관련성 없음) “인물이 좋으면 선거에 유리하다”는 속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삭발이 화제다. 당초 “삭발은 최후 수단이다. 야당 대표가 그러면 출구 전략이 없다”며 주변에선 말리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결연하게 싸우겠다”는 의도가 퇴색했을지 몰라도 투블럭·터미네이터 등 패러디 사진이 2030 사이에서 폭발적 반응을 끌며 “대선 때도 안경 벗어야” “장외집회 100번보다 낫다”는 평가가 나온다. 삭발·단식 등 정치권의 언어는 30년 전에 머물러있지만 이를 발랄하게 재해석하는 건 외려 대중이다. 3류 정치가 새삼 곱씹을 지점이다.

최민우 정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