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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석유 펑펑 솟는 UAE·사우디도 원전으로 미래 그리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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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문희철 산업1팀 기자

문희철 산업1팀 기자

아랍에미레이트(UAE)는 말 그대로 기름이 펑펑 솟아나는 국가다. 세계에서 6번째로 많은 원유(1000억 배럴)가 묻혀있어 지금 세대는 당연하고 자녀세대까지 먹고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중동에 수백조원 원전시장 열려 #미국, 한국에 원전수출 동맹 제의 #탈원전 매몰, 미래 먹거리 놓칠라

그런 국가가 한국 기술을 빌어 원자력발전소 4기를 건설하고 있다. 심지어 아부다비공항 근처에서 화석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탄소 제로’ 도시(마스다르시티)를 세우는 중이다. 석유가 물처럼 흔한 국가에서 석유 한 방울도 안 쓰는 신도시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중앙일보가 12일(현지시각) 방문한 마스다르시티는 이미 태양광·태양열·지열·풍력·폐기물발전만으로 도시 전력 전체를 충당하고, 기름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자율주행차량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도 마찬가지다. 제24회 세계에너지총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의 에너지 비전(비전 2030)을 주제로 전시관을 꾸몄다. 여기서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가져온 한국형 원자로 모형을 전시했다. 심지어 원자로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인 모하메드 자크리 씨는 명함 뒷면을 영어 대신 한국어로 써넣고 다녔다.

이처럼 중동 산유국이 적극적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의 에너지 전략에 아쉬움이 남는다. 알아서 ‘탈원전’을 외치며 세계가 인정한 원자력발전 기술의 생태계를 뒤흔들었다.

아부다비국제전시장 에미레이트원자력공사(ENEC) 부스. 문희철 기자

아부다비국제전시장 에미레이트원자력공사(ENEC) 부스. 문희철 기자

미국은 한국과 손잡고 중동 시장에 원전을 수출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탈원전 정책과 원전 수출은 별개의 얘기’라며 ‘수출까지 막지는 않겠다’는 입장으로 전해진다.

선제적으로 움직여도 어려운 체스판에서 한국 정부가 소극적으로 말을 둔다면 원전 수출 기회를 사실상 포기하는 행동이다. 수백조원이 달린 원전 수출 시장에서 경쟁국이 한국 원전 기술을 마타도어 하면서까지 매달리고 있어서다. 아부다비에서 만난 원자력업계 관계자는 “러시아가 한국 ‘탈원전’ 기사를 아랍어로 꼼꼼하게 번역해서 가져다주면서, ‘조만간 한국 원전 산업 생태계는 무너질 수 있다’더라”고 귀띔했다. 2009년 이후 한국 원전 수출 실적이 ‘0’이다. 같은 기간 러시아는 12개국에서 36기의 원전을 수주했다.

지금 ‘팀코리아’를 이끄는 정부는 적폐청산·한일역사 문제에 사로잡혀 미래로 시선을 두지 못한다. 과거사에만 매달려만 있으면 ‘미래 100년 먹거리’를 확보하지 못한다. 후손이 대대손손 향유할 경제의 밑천을 다지는 정부가 필요한 시점이다.

문희철 산업1팀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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