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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시 69만 유엔군 지휘권 누가…최악땐 껍데기 전작권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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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4일 부산 유엔 기념 공원에서 열린 '유엔의 날' 기념식에서 유엔군 의장대가 유엔기와 유엔군 참전국가의 국기를 들고 있다. [사진 미 해군]

지난해 10월 24일 부산 유엔 기념 공원에서 열린 '유엔의 날' 기념식에서 유엔군 의장대가 유엔기와 유엔군 참전국가의 국기를 들고 있다. [사진 미 해군]

국방부가 다음 달 서울에서 열릴 제51차 한ㆍ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미국과 유엔군사령부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복수의 정부 소식통이 17일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소식통은 “지난달 벌였던 기본운용능력(IOC) 검증 결과를 양국 국방부가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유엔사 문제가 떠올랐다”며 “어떻게든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게 두 나라의 공통 인식”이라고 말했다.

IOC는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능력을 점검하는 예비고사 성격의 연합훈련이다. 사상 처음으로 한국군 대장(최병혁 한ㆍ미연합군 부사령관)이 사령관을, 미군 대장(로버트 에이브럼스 연합사령관)이 부사령관을 각각 맡아 진행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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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훈련 과정에서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 자격으로 지휘권을 행사하겠다고 주장했다. 연합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과 주한미군사령관을 겸직한다. 에이브럼스 사령관 때문에 연합훈련 과정에서 단일 지휘권이 확립되지 못했다.

이후 국방부와 유엔사는 소통 통로의 필요성을 깨닫고 지난달부터 국방부 정책실장과 유엔사 부사령관(호주군 소장)을 대표로 하는 협의체를 가동했다.

문제의 발단은 1978년 연합사가 생기면서 연합사와 유엔사 간 역할 구분이 복잡해지면서다. 한ㆍ미는 지난해 제50차 SCM에서 한국 합참-유엔사-연합사 간 관계를 규정하는 약정(TOR-R)에 합의했다. 당시 국방부는 “합참, 연합사, 주한미군사령부, 유엔사 간 상호관계를 (앞으로) 발전시킨다”고 밝혔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합참ㆍ유엔사ㆍ연합사간 관계가 덜 정리됐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 전작권 전환을 검토하면서 유엔사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미국이 전작권 전환 이후 유엔사를 연합사로부터 떼어낼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은 증원 전력이다.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날 경우 일본에 있는 7곳의 유엔사 후방기지에 병력과 장비가 모인다. 주로 미군(최대 69만명)이며, 영국ㆍ프랑스ㆍ호주 등 유엔사에 전력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나라도 도울 예정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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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증원 전력에 대한 작전권은 누가 갖느냐가 명확치 않다는 게 문제다. 현재 연합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기 때문에 증원 전력을 받아 지휘하면 된다. 그러나 전작권 전환 이후 유엔사가 작전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겠다고 주장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박원곤 교수는 “전작권 전환 기한이 두번 늦춰지는 과정에서 한ㆍ미가 증원 전력 작전권을 놓고 따로 의견을 나누진 못했다”고 말했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군 소식통도 “증원 전력 작전권에 대한 결정은 결국 미국에 달렸다”며 “증원 전력에 핵추진 항공모함 전단 등 미군의 전략자산이 들어가는데, 이를 한국군에 쉽게 내주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자도 “미국은 유엔사에서 다른 전력 제공국의 분담을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증원 전력이 다국적군이 되면, 유엔사가 자연스럽게 지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악의 경우 ‘껍데기’ 전작권 전환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우려다. 한국군 연합사령관은 주한미군(2만8500명)만을 지휘하며, 미군 증원 전력과 다국적군은 유엔사의 휘하에 남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2014년부터 유엔사의 몸집을 키우는 동시에 역할을 확대하려는 중이다. 연합사 창설로 간판만 남은 유엔사를 다시 활성화하려는 노림수다.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국제법센터장은 “정부가 유엔사를 껄끄러운 존재로 바라봐선 안 된다”며 “국방부에만 맡겨 놓지 말고, 청와대가 앞장서고 외교부도 가세해 전방위적 역량으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철재ㆍ이근평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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