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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1% 드라마’는 없었다…골수팬 양산하는 ‘멜로가 체질’

중앙일보

입력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멜로가 체질'(JTBC). [방송 캡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멜로가 체질'(JTBC). [방송 캡처]

지금까지 이런 ‘1% 드라마’는 없었다.
영화 ‘극한직업’ 으로 16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이병헌 감독의 첫 드라마 ‘멜로가 체질’(JTBC) 이야기다. 지난달 9일 방송을 시작한 이후 14일 12회 방송까지 줄곧 1%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극한직업’)에 버금가는 명대사를 쏟아내며 골수팬을 양산하고 있다. 17일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9월 2주차 드라마 화제성에서도  ‘열여덟의 순간’(JTBC), ‘아스달 연대기’(tvN)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의 첫 드라마 #명대사 쏟아내며 청춘 감성 공략 #시청률 1%대지만 화제성은 3위

드라마 관련 인터넷 게시판마다 “한번 보면 빠져나올 수 없는 인생드라마” “진짜 깜짝 놀랄 만큼 재밌는 감동” 등의 시청자 호평이 이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대사 맛이다. ‘극한직업’뿐 아니라 영화 ‘써니’ ‘과속스캔들’ ‘타짜-신의 손’ 등을 각색했고 영화 ‘스물’과 ‘오늘의 연애’ 등의 각본을 썼던 이 감독이 “10년 치 메모장을 털어” 썼다는 대사는 ‘명대사’와 ‘일반 대사’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웃음과 감동의 밀도가 높다.

가장 최근회인 12회만 봐도 곱씹고 싶은 대사들이 줄을 잇는다. 이날 방송에서 극 중 드라마 감독 범수(안재홍)가 작가 진주(천우희)에게 사랑 고백을 했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사이에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는 것을 걱정한 진주는 “하던 대로 일 잘하고 있으면 어련히 알아서 될 거를…”이라며 범수의 ‘고백 타이밍’에 문제 제기를 한다. 이 때 범수가 남긴 명대사. “남자가 여자를 좋아할 때는 일곱살 난 아이와 같은 거에요. ‘어련히’ 같은 느긋한 여유가 일곱살 난 아이한테는 존재하지가 않는다고.”
두 사람이 마침내 사귀기로 결정하면서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사귀는 게 뭘까요?”
“마음을 나누고, 그 마음을 다른 사람과 동시에 나누지 않고,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그 의무를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권리도 가지게 되고…”
“이럴 땐 단순하게 말하는 게 멋있을 수도 있어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거요.”
“세상에서 제일 좋을 거. 해요, 우리.”
“네, 합시다”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멜로가 체질'(JTBC). [방송 캡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멜로가 체질'(JTBC). [방송 캡처]

진주가 전 남자친구 환동(이유진)과 고급 식당에서 만났을 때도 명대사가 이어졌다. 사귀는 동안 비싼 밥 한번 못사줬다며  “딱 한번만 너랑 이런 음식 먹어보고 싶다”는 환동에게 진주는 이렇게 말한다. “니 마음 알겠어. 근데 그런 이유라면 난 너랑 이 식사 할 수 없을 것 같아. 미안해. 우리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누가 누구에게 비싼 밥 사주지 못한 거 후회할 건 아니야. 나도 너한테 이런 음식 못 사준 건 똑같아. 너 미워하고 욕하고…. 그래, 최근까지 그랬던 거 맞아. 나도 당연히 후회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근데 지금은 조금 달라.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가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를 앞질렀달까. 그때 우린 그때의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한 거야. 지난 시간은 그냥 두자. 자연스럽게.”
거창한 사랑 장면이 아닌 곳에서도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허투루 흐르지 않았다. 가난한 공시생 남자친구를 둔 동생이 진주에게 “돈은 언제까지 없는 거냐”고 물었을 때다.
“돈은 계속 없는 거야.”
“응?”
“지금은 공부하니까 없는 거야. 그러다 다행히 합격했어. 공무원 됐어. 안정적으로 월급 들어와. 그럼 결혼하겠지? 그럼 집 구해야지. 그게 니 집이야? 은행 집이야. 또 없는 거야. 그래도 성실하게 20년 동안 죽어라 일해서 갚아. 근데 애가 있겠지. 애들이 대학 간대. 그럼 또 없는 거야. 착실히 일해서 애들 공부시켜. 근데 은퇴할 나이네. 또 없는 거야.”
“와, 인생이 그냥 없는거야네”
“그나마 이게 성공사례야.”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멜로가 체질'(JTBC). [방송 캡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멜로가 체질'(JTBC). [방송 캡처]

드라마는 서른 살 동갑내기 세 친구(천우희, 전여빈, 한지은)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부모 가정과 성소수자 등을 등장시키지만 어설픈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대신 사랑에 빠져드는 청춘 남녀의 섬세한 감정 묘사에 집중한다. 신파 코드를 철저히 배제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으로 채워 넣은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으로 흥행 대성공을 거둔 이 감독이 멜로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시청률은 낮은 것일까. 이에 대해 김선영 TV평론가는 “극적인 스토리 대신 재치있는 대사에 의존하는 이병헌 감독의 시도가 TV 드라마와는 맞지 않았다. 대사가 많아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몰입하기 어렵고, 시청자들의 중간 유입도 힘들다”며 “앞으로 시청률이 반등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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