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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너도 나도 가면을 쓴 인간… 누가 정의를 말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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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호 면

“난 모든 걸 가졌지만 이 정도로 만족 못 해 .난 너희를 이끌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지(…) 양심 따윈 버려 그건 패배자의 것. 난 승리를 원하지 그게 바로 나, 난 최고니까.”
‘나 아니면 안된다’는 오만에 쩐 요즘 사회 지도층의 속마음일까.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프랑스 혁명을 부추긴 것으로 설정된 오를레앙 공작의 노래 ‘I'm the Best’의 일부다.

[유주현 기자의 컬처 FATAL]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11월 17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프랑스혁명에 대한 독특한 해석으로 2014년 신선한 충격을 던졌던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가 5년 만에 돌아왔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빈 뮤지컬 ‘엘리자벳’ ‘모차르트!’의 작가 미하엘 쿤체, 작곡가 실베스타 르베이 콤비가 창작진으로 참여한 일본 창작뮤지컬이다. 일본의 대문호 엔도 슈사쿠의 소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981)를 원작으로 2006년 일본 대형기획사 토호가 제작해 초연 당시 25만 관객을 동원했고, 2009년과 2012년에는 독일에서 공연되어 ‘유럽에 라이선스 판매된 최초의 일본 뮤지컬’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초연에 이어 다시 마리 앙투아네트 역을 맡은 김소현을 비롯해 뉴캐스트 김소향, 장은아, 박강현 등 실력파 배우들이 대거 포진됐고, 황민현·정택운 등 요즘 핫한 아이돌까지 과감히 기용했다. 하지만 이 무대가 새로워 보이는 이유는 캐스팅 때문만은 아니다. 예술은 생물이라더니, 오늘의 우리가 처한 시대 상황이 초연 때와는 전혀 다른 감상을 남기게 하는 것이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물량공세로 유명한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의 작품답게 베르사이유 궁전을 배경으로 극도로 화려한 무도회로 문을 여는 무대는 마치 궁극의 판타지를 보여줄 것 같다. 당대 로코코 양식을 반영한 거대한 드레스와 탑처럼 쌓아올린 가발의 향연 등은 대극장 뮤지컬 중에서도 가장 현란한 클래스의 비주얼을 자랑한다. 통상 시와 문학에 가까운 연극과 달리 뮤지컬은 미적 형식이 관건인 장르라 여겨왔지만, 대문호의 소설을 원작 삼은 무대라서인지 텍스트의 흡인력까지 돋보이는 무대다.

위태로운 각도로 기울어진 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회전무대는 달콤한 로맨틱 판타지가 아니라 계급 갈등과 계층 혐오, 배신과 반란이라는 인간 사회의 현실을 낱낱이 드러낸다. 이런 양극화된 세상이 결코 18세기 프랑스만의 일은 아니다. 베르사이유의 화려함과 지저분한 파리 거리가 끝없이 교차되며 보여주는 귀족의 삶과 가난한 시민의 삶의 극적인 대조는, 마치 최근 우리의 위선적인 사회 지도층이 깔아놓은 유리 바닥 위와 아래가 결코 섞일 수 없음을 은유하는 듯하다. 그래선지 단순한 역사극이라기보다 프랑스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가면을 쓴 인간본성과 진정한 정의에 대해 묻는 질문으로 다가온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마리 앙투아네트와 거리의 여자 마그리드 아르노는 대립하는 계급을 각각 상징하는 존재다. 마리와 쌍둥이처럼 닮은 것으로 설정된 가공의 인물 마그리드는 혁명의 배후세력인 오를레앙 공작에게 매수당해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된 ‘목걸이 사건’을 주도하고 마리에 대한 온갖 추문을 퍼뜨린 장본인이지만, 혁명의 위선과 공포정치의 잔인성을 목격한 뒤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 회의하는 입체적 캐릭터다.

마리의 이복동생임을 암시하는 그녀의 존재는 ‘출생의 비밀’ 같은 막장드라마 코드와는 거리가 멀다. 마리의 분신이자 마리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장치인 것이다. 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누구는 왕비로, 누구는 거리의 천민으로 살아왔지만 같은 드레스를 입으면 감쪽같이 모두를 속일 수 있는 두 사람의 내면엔 결코 ‘유리바닥’이 없다. “껍데기가 전부 (...) 우리 삶은 가면무도회”라는 노랫말처럼, 마리와 마그리드의 대조는 선인과 악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면을 쓰고 태어나느냐가 삶을 지배하게 되는 인간의 운명을 보여주기 위한 세포분열처럼 보인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각종 음모와 가짜뉴스를 퍼뜨려 혁명을 부추긴 오를레앙 공작의 고백도 지금 들으니 더욱 흥미롭다. 시민 편을 드는 척 정의를 외쳤지만, 결국 자기가 왕이 되고 싶었을 뿐인 것이다. 혁명을 일으킨 시민군이라고 정의롭지도 않다. 가짜뉴스로 민심을 선동하고, 힘을 갖게 되자 반대파 척결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결국, 다 그런 것 아닌가. ‘유리바닥’ 위에 어쩌다 올라가면 다시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게 인간이다.
“누군간 행복에 젖고 누군 눈물에 젖네. 알잖아 바꿔야 한단 걸 바꿀수 있잖아 너흰. 신은 너흴 버릴거야 변화하지 않으면. 신은 너흴 저주할거야 언젠가는.” 마그리드의 절규가 울림이 길다. 행복은 꼭 ‘누군가’가 독점해야만 하는 걸까.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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