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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 없이 번식하는 처녀생식, 인간에게도 가능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55)

처녀생식(處女生殖, parthenogenesis). ‘처녀가 애를 낳는다’로 풀이된다. 사회규범에 어긋나지만 현대에는 얼마든지 있다. 미혼모가 그렇다.

그러나 이 단어의 본뜻은 동물의 암컷이 수컷 없이 자손을 생산한다는 의미이다. 무성생식이라고도 한다. 가당찮은 이야기지만 인간에게도 있다. 성모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예수를 낳았고 그리스의 신화에도 남편 제우스의 바람기에 화가 난 헤라는 남편 없이 아들을 낳았다. 이는 과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단지 종교나 신화의 영역에서나 있는 일이다.

개미와 벌은 처녀생식

개미는 유성생식으로 일개미를 만들고, 난자만으로(처녀생식) 수개미를 생산한다. [사진 pixabay]

개미는 유성생식으로 일개미를 만들고, 난자만으로(처녀생식) 수개미를 생산한다. [사진 pixabay]

처녀생식은 이른바 난자만으로 생명체가 탄생한다는 것인데, 이는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 그러나 인간에게도 윤리적인 문제만 없다면 난자만으로 자손의 번식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다. 현대과학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사람에게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어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동물의 경우는 처녀생식이 드물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개미와 벌이다. 벌과 개미는 유성생식에 의해 일개미를 만들고 난자만을 그대로 발생시켜(처녀생식) 수개미를 생산한다.

진딧물은 날씨가 따뜻한 봄에서 가을까지는 처녀생식으로 암컷만 낳고 늦가을부터는 유성생식한 알이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봄이 되면 부화하여 다시 처녀생식을 반복한다. 이런 식으로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처녀생식과 유성생식을 번갈아 하는 동물은 또 있다. 기생벌, 윤충, 깍지벌레, 물벼룩, 성게, 미꾸라지, 코모도왕도마뱀, 귀상어 등 그 종류가 많다.

종래 포유류 같은 고등생물은 처녀생식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최근 처녀생식기술을 통해 순수하게 원숭이의 난자만으로 초기 배아를 만들었고, 2004년에는 수정하지 않은 난자만으로 쥐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외에도 여러 동물의 사례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처녀생식으로 태어난 척추동물의 경우는 암컷으로만 된다. 난자에는 수컷을 결정짓는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리스 신화의 헤라는 처녀생식으로 헤파이스토스라는 아들을 낳았고 성모마리아가 낳은 예수도 아들이다. 과학적으로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학적 유전과 생물학적 유전이 다르다고 얘기한다. 이른바 신성생식(?)과 동물의 처녀생식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종래 처녀생식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생소했다. 그러나 황우석 사건 이후 친숙해졌다. 실패한 핵치환줄기세포 실험에서 우연히 처녀생식에 의한 줄기세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핵치환세포를 배아로 키우기 위해서는 전기 자극을 가하는 과정이 있다. 이때 핵이 치환되지 않은 난자가 섞여 있다. 반수체(n)이던 염색체(유전자)가 2배체(2n)로 되어 배아줄기세포로 성장한 것이다.

이 세포는 핵치환줄기세포보다 시험관에서 배양이 쉽다는 이점이 있다. 이를 자궁에 이식하면 난자제공자의 인간복제도 가능하다. 단지 여성으로만 복제된다. 이를 시험관에 키우면 난자를 제공한 여성의 장기세포로 성장해 질병의 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다. 당연 자기 것과 동일하니 거부반응이 없어 연구대상으로 각광받았다.

사람의 줄기세포. 배아(胚芽)줄기세포는 자궁에 이식하면 하나의 인간으로 발생이 가능한데 대부분의 연구실에서는 실험 후 이를 폐기한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사람의 줄기세포. 배아(胚芽)줄기세포는 자궁에 이식하면 하나의 인간으로 발생이 가능한데 대부분의 연구실에서는 실험 후 이를 폐기한다. [사진 Wikimedia Commons]

반면 핵치환줄기세포는 난자의 제공자와는 관계없이 체세포(핵) 제공자와 유전적으로 일치한다. 남녀불문하고 핵제공자와 면역학적 거부반응이 없는 장기세포로 성장이 가능하다. 단연 처녀생식보다는 응용범위가 넓다.

여기에서 놀랍게도 이 두 경우 모두 자궁에 착상시키면 인간복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으로 금지돼 있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이 처녀생식에 의해 줄기세포를 만든 업적만으로도 황박사의 역할은 대단했다. 유수학술지에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핵치환줄기세포의 논문조작으로 이 업적이 묻혀버렸다. 아쉬운 대목이다.

배아의 생명체여부 논란 여전

이런 배아(胚芽)줄기세포는 자궁에 이식하면 하나의 인간으로 발생이 가능한데 대부분의 연구실에서는 실험 후 이를 폐기한다. 이도 하나의 생명체(?)로 본 것이다. 윤리적 문제가 제기됐다. 이른바 하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또 하나의 생명체를 파괴해야 하는가 하는 것. 그러나 배아줄기세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볼 것이냐 하는 것은 아직 이론(異論)의 여지로 남아 있다.

이런 논란에도 줄기세포가 의학연구에 중요한 이슈라 주무부처에서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을 공개하고 난자만을 이용한 처녀생식연구에 대한 근거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어디까지가 윤리이고 범법이며 허용가능범위인지 아직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이런 연구가 과연 신에 대한 도전인지도 따져봐야 할 일이다.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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