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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위해 한몸 불사른 전태일 대구 집, 기념관 거듭난다

중앙일보

입력

16일 대구 중구 남산동 2178-1번지 한옥. 이곳은 전태일 열사가 63년 서울에서 이사 와 1년여간 살았던 집이다. 대구=김정석기자

16일 대구 중구 남산동 2178-1번지 한옥. 이곳은 전태일 열사가 63년 서울에서 이사 와 1년여간 살았던 집이다. 대구=김정석기자

16일 오후 대구 중구 남산동 2178-1번지. 좁은 골목 사이에 한옥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한옥 마루에선 노부부가 소반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 대화를 나누며 점심을 하고 있었다. 집은 언뜻 봐도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방수포가 덮인 지붕에는 낡고 금 간 기왓장이 드러나 있었고, 벽에도 곳곳에 칠이 벗겨진 모습이었다. 이곳은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1948~70) 열사가 서울에서 20년 가까이 살다 대구로 돌아와 1년여를 살았던 집이다. 1963년, 그의 나이 15세 때였다.

전태일 열사 2년여간 살았던 대구 중구 남산동 2178-1번지 #시민들이 모은 기금으로 매입계약 체결…17일 체결식 열어 #현 소유주 "전 열사 동생 부탁으로 8년간 이사 않고 머물러" #전태일 50주기 2020년 맞춰 매입 마치고 기념관 설립 예정

70년 11월 13일 22세 나이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분신한 노동운동가인 전 열사는 48년 8월 26일 대구 중구 남산동 50번지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생가는 지금 도로가 돼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전 열사는 6세 때인 54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무작정 상경하면 대구를 떠났다. 서울에서 남대문국민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고 62년 대구로 다시 내려와 큰집에서 더부살이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서울대학교 법대생들이 1970년 11월 20일 고(故) 전태일 열사의 영정을 들고 문리대쪽으로 추도행진을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대학교 법대생들이 1970년 11월 20일 고(故) 전태일 열사의 영정을 들고 문리대쪽으로 추도행진을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전태일 열사 가족이 다함께 이 집에 살게 된 건 63년이다. 전 열사는 집 근처에 있는 청옥고등공민학교(현재 명덕초등학교)를 다녔다. 고등공민학교는 가정 형편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학생들이 다녔던 학교다.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엔 전 열사가 대구에서 이 학교에 다니던 때를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꼽았다고 나온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형편이 어려워지자 그해 12월 학교를 그만뒀다. 이듬해인 64년 초 어머니가 식모살이하러 서울로 떠났고, 전 열사도 막냇동생 순덕을 업고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갔다. 이후 전 열사는 서울 평화시장 의류제조회사 견습공, 구두닦이, 재봉사 등을 전전하며 일했다. 고향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지금 집 주인인 최용출(69)씨는 이 집에서 54년을 살았다고 한다. 전 열사가 집을 떠난 뒤 바로 이곳에서 살게 된 셈이지만, 전 열사나 그의 가족과는 만난 적이 없다. 워낙 낡아 이 집도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상황. 그는 어째서 이곳을 지키고 있었을까.

최씨는 “8년 전 이 집을 떠나 새집으로 이사를 하려고 했는데,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69)씨가 간곡하게 부탁을 하기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계속 살았다. 전씨는 내가 떠나면 집이 허물어질 수 있다며 이사를 말렸다”며 “나도 역사적인 공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끝내 집을 팔지 않고 살았다”고 말했다.

지난 3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이소선 여사 8주기 추모식에서 아들 전태일 열사의 동상에 단결 투쟁 머리띠가 묶어져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이소선 여사 8주기 추모식에서 아들 전태일 열사의 동상에 단결 투쟁 머리띠가 묶어져 있다. [연합뉴스]

이곳은 앞으로 기념 공간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전 열사의 삶을 기리기 위해 구성된 단체인 ‘(사)전태일의 친구들’이 17일 최용출씨 부부와 집 매매 계약을 체결하기로 하면서다. 오후 3시에 열리는 매입 계약 체결식에는 전태삼씨가 참석할 예정이다.

‘전태일의 친구들’은 지난 3월 창립 후 시민기금으로 1억원가량을 모금했다. 매입 계약금 10%을 치른 후 전 열사 50주기인 내년 6월까지 잔금을 모두 치러 최씨 집 매입을 마칠 예정이다. 집값은 총 5억원으로 알려졌다.

매입 후 이 집을 ‘대구 전태일 기념관’으로 꾸밀 계획이다. 구체적 계획은 아직 없지만, 기념관엔 전 열사가 살았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은 물론 일부 시설을 노동인권센터, 노동교육공간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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