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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기자의 송곳 질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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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경진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키워드가 빠졌다. 홍콩이다. 메르켈 총리께 묻는다. 홍콩의 긴장을 논의했나? 중국이 1984년에 체결한 ‘중·영 협정’을 준수하겠다는 보증을 받았습니까?”

지난 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질의응답에서 독일 기자가 송곳 질문으로 메르켈 총리를 찔렀다.

“인권·법치·홍콩을 광범위하게 논의했다. 홍콩에는 ‘일국양제’ 원칙이 적용된다”며 “1984년 체결된 협정에 근거해 제정된 ‘기본법’이 홍콩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한다”고 메르켈 총리가 대답했다.

중국의 답변은 그동안 결이 달랐다. 지난달 외교부 대변인은 “중·영 공동성명에는 홍콩 반환 후 외부 세력이 홍콩에 간여할 권리를 부여한 어떤 조항도 없다”고 강조했다. 주영 중국대사도 “중·영 공동성명은 역사적 문건”이라고 주장해 왔다. 메르켈 총리는 중국의 홍콩 인식을 되돌렸다.

6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독 총리 기자회견 장면. [AP=연합뉴스]

6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독 총리 기자회견 장면. [AP=연합뉴스]

독일 기자는 이어 리 총리에게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중국 지도부는 홍콩에 군사개입을 배제하나?” 리 총리는 “중국은 변함없이 일국양제, 홍콩인의 홍콩 통치, 고도 자치를 수호할 것”이라며 “중국인은 자기 일을 잘 처리할 능력과 지혜를 갖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후 독일과 중국의 보도는 180도 달랐다. 독일 총리실과 공영방송 ‘독일의 소리(도이체 벨레·DW)’는 회견을 공개했다. 중국은 외교부와 관영 매체 어디도 리 총리의 홍콩 답변을 싣지 않았다.

메르켈 총리는 질의에 앞서 “더 많은 국회의원이 중국 방문을 원한다”고 말했다. 홍콩 시위대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푸대접을 받은 독일 의원단을 지원한 언급이다. 메르켈 총리의 방중 직후 홍콩 시위의 아이콘 조슈아 웡이 베를린을 찾아 독일 외교장관을 만났다.

중국이 대국을 상대로 펼치는 외교의 핵심은 ‘투이불파(鬪而不破)’다. 싸우지만 판을 깨지는 않는다는 원칙이다. 민간에는 ‘불타불상식(不打不相識)’이란 말도 있다. ‘다투지 않고선 서로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외교도 예외는 아니다. 임기 중 12번째 중국을 찾으며 인권 외교를 잊지 않아 온 메르켈 총리는 살아있는 사례다.

한국 기자도 예전에는 질문 기회가 있었다. 역대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첫 국빈 방중마다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 사라졌다. 중국에 ‘부탁 외교’ 만으로는 나라다운 나라 대접을 받기 어렵다. 독일 기자의 송곳 질문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