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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김정은 비밀친서 "트럼프 평양 오라, 3차 정상회담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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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비공개 친서를 보내 3차 북ㆍ미 정상회담과 평양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고 복수의 외교 소식통이 15일 전했다.

소식통 “8월 셋째주 초청장 전달” #트럼프 공개 친서와 별개의 서한 #실무협상 더디자 또 톱다운 추진 #실무차원 협상 진전 없자 배수진 #두 차례 실패한 톱다운 다시 꺼내 #폼페이오 “체제보장” 화답한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9일 백악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서 친서를 받았다면서 ’매우 아름다운 편지였다“고 밝히고 있다.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종료되는 대로 협상 재개를 희망한다’는 김 위원장의 입장을 밝혔다. [사진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9일 백악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서 친서를 받았다면서 ’매우 아름다운 편지였다“고 밝히고 있다.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종료되는 대로 협상 재개를 희망한다’는 김 위원장의 입장을 밝혔다. [사진 로이터]

익명을 원한 소식통은 “광복절이 포함된 지난달 셋째 주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했다”며 “그 전주인 9일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한 친서와는 별개의 서한으로, 일종의 초청장 성격”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9일 기자들에게 “어제(지난달 8일) 김 위원장으로부터 인편(hand-delivered)으로 3페이지짜리 친서를 받았다”며 “친서는 아주 긍정적이고, (김 위원장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은 서한에서 ‘한ㆍ미 연합훈련(지난달 11~20일)이 끝나면 미사일을 쏘지 않겠다’고 했다. 그(김 위원장)는 시험이, ‘워 게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그것을 좋아한 적이 없다. 돈을 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6월 23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사진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읽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6월 23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사진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읽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 내용을 공개한 지 1주일 여 만에 다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새로운 친서를 보낸 건 이례적이다.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불만과 북ㆍ미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자는 김 위원장의 제안에 트럼프 대통령이 바로 긍정적 신호를 보내자 이를 보다 구체화하고, '직거래'(톱다운)를 통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다만 소식통은 "3차 북미정상회담을 평양에서 열자고 제안한 것인지, 아니면 3차 정상회담 개최와 평양 초청을 별개로 제안한 것인지는 명확지 않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지난주(last week) 김 위원장에게서 친서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당시에는 2주 전(지난달 9일)에 공개한 서한을 트럼프 대통령이 착각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전직 고위 당국자는 “6월 30일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회동 이후 두 달 넘게 양측이 탐색전을 펼쳤지만, 미국의 ’빅딜‘과 북한의 ’단계적ㆍ동시적 해법‘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김 위원장이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6월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친서에서 또다시 '톱다운 방식의 선(先)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2차 북ㆍ미 정상회담 당시 양측은 비핵화의 방식과 범위 등을 놓고 실무협상에서 조율되지 않은 채 정상회담으로 넘겼다 결렬됐다. 이후 북한 내부에선 그 충격파로 혼란과 숙청이 야기됐고, "앞으로는 실무협상에서 충분히 돌다리를 두드린 뒤에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6월 30일 판문점 회동에서 ’선(先) 실무협상 후(後)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럼에도 이번에 김 위원장이 친서에서 정상회담 카드를 다시 꺼낸 건 자신이 시한부로 정해 공표한 '올 연말'이 다가오면서 시간에 쫓기고 있는 데다, 실무차원의 진전이 없자 직거래를 통한 담판을 짓겠다는 일종의 ’배수의 진‘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3일과 31일 북한의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제1 부상이 각각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미국외교의 독초”로 칭하고, “우리(북한)의 인내심을 더이상 시험하려 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담화를 낸 것도 김 위원장이 보낸 '정상회담 촉구' 서한에 조속히 답을 내놓으라는 독촉이었을 수 있다. 나아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 9일 담화를 내놓고 '9월 말 실무협상 복귀'를 밝힌 것도 결국은 트럼프 대통령을 3차 북·미정상회담으로 끌어내기 위한 유인책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로선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친서에 답신을 보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미 고위 당국자들이 최근 들어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을 언급하고 있는 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북한이 껄끄럽게 여기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한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올해 일정 시점에 만날 것”(12일)이라 밝힌 것은 김 위원장이 주문한 결단에 대한 ‘화답’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여전히 '빅딜'을 선호하는 미 정부 실무진들과 “새로운 셈법이 아니라면 9월 말 실무협상이 끝”(9일 담화)이라는 북한 실무진의 벼랑 끝 전술이 치열하게 맞서고 있다. 따라서 3차 북미정상회담 성사 여부는 미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득실 계산, 방위비 협상 등 한미 간 이견 조율, 북한이 내놓을 새로운 카드 등에 따라 연동되는 고차 방정식의 양상을 띨 전망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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