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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마오쩌둥 유적지에서 “항우 전철 밟지않겠다”고 한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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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12일 베이징 향산에 새로 개관한 향산혁명기념관을 시찰한 뒤 간부들에게 ’항우의 전철을 따라선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신화=연합]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12일 베이징 향산에 새로 개관한 향산혁명기념관을 시찰한 뒤 간부들에게 ’항우의 전철을 따라선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신화=연합]

14일 일반인에게 공개한 중국 베이징 향산의 향산혁명기념관에 전투 없이 무혈 정복에 성공한 ‘베이핑 모델’을 설명한 전시관. 신경진 기자

14일 일반인에게 공개한 중국 베이징 향산의 향산혁명기념관에 전투 없이 무혈 정복에 성공한 ‘베이핑 모델’을 설명한 전시관. 신경진 기자

“인민해방군과 중국 공산당 베이핑(北平·베이징의 옛 이름) 지하 조직의 인내심과 진보 인사의 촉구로 푸쭤이(傅作義·국민당 장군)는 끝내 해방군이 제안한 평화 조건을 받아들였다. 역사적 의의를 갖춘 베이핑의 평화로운 해방은 ‘베이핑 모델’로 칭송받는다.”

1949년 마오쩌둥 머물던 쌍청별장·혁명기념관 시찰 #‘양개유호론’, ‘다섯개 범시’ 등 마오 향수 발언 잦아져 #“철저한 혁명 정신” 강조…미국·대만에 강경 메시지

14일 기자가 찾아간 베이징 교외의 향산(香山) 초입의 ‘향산 혁명기념관’에 전시 중인 ‘신중국을 위한 초석’의 설명이다.
일반인 공개 첫날 찾아간 기념관에는 800여장의 사진, 1200여 건의 문헌 등이 전시돼 있었다. 70년 전 신중국 개국 당시 베이징을 잘 보여주는 자료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점령에 성공한 ‘베이핑 모델’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대만을 통일하려는 중국의 의도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념관에는 28개의 복도 기둥이 1921년 공산당 창당에서 49년 건국까지 걸린 28년을, 높이 19.49m의 남쪽 광장의 국기봉은 1949년 건국을 상징하고 있었다.

14일 일반인에게 공개한 중국 베이징 향산의 향산혁명기념관에 전시된 마오쩌둥 조각. 1949년 4월 난징 정복을 알리는 호외를 보는 조각상 뒤로 ‘인민해방군이 난징을 점령하다(人民解放軍占領南京)’는 시구가 보인다. 신경진 기자

14일 일반인에게 공개한 중국 베이징 향산의 향산혁명기념관에 전시된 마오쩌둥 조각. 1949년 4월 난징 정복을 알리는 호외를 보는 조각상 뒤로 ‘인민해방군이 난징을 점령하다(人民解放軍占領南京)’는 시구가 보인다. 신경진 기자

전시장 중앙에는 49년 4월 24일 향산에 머물던 마오쩌둥(毛澤東)이 쌍청별장(雙淸別墅·쌍청별서)에서 난징 함락 호외를 보는 사진과 청동 조각이 ‘인민해방군이 난징을 점령하다(人民解放軍占領南京)’라고 씌여진 마오의 친필 시구와 함께 전시돼 있었다.
“종산에 비바람 거대하게 일어나니(鍾山風雨起蒼黃),
백만 정예군대가 창장을 건넜다(百萬雄師過大江).
호랑이와 용이 웅크린 난징에는 승리뿐(虎踞龍盤今勝昔),
하늘과 땅이 뒤집히니 어찌 강개하지 않겠는가(天飜地覆慨而慷).
남은 병사로 궁지에 몰린 적을 끝까지 쫓아야지(宜將剩勇追窮寇),
명성 얻으려다 실패한 패왕 항우의 전철은 밟지 않으리(不可沽名學覇王).
하늘에 정이 있다면 하늘 역시 늙겠지만(天若有情天亦老),
인간의 바른길은 상전벽해처럼 변화무쌍하네(人間正道是滄桑).”

기념관에서 2㎞ 떨어진 향산쌍청별장 역시 휴일을 맞은 베이징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인근 중관춘에서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장(張)군은 “향산에서 출발한 신중국이 70년 만에 이룬 성취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를 앞둔 12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쌍청별장과 향산 혁명기념관을 찾아 마오 주석의 시를 인용해 “항우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중국중앙방송(CC-TV)은 이날 “시 주석이 앞선 세대 혁명가의 ‘남은 병사로 궁지에 몰린 적을 끝까지 쫓아야지, 명성을 좇았던 패왕 항우를 배워서는 안 된다’는 ‘철저한 혁명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시찰을 마친 시 주석은 “새로운 역사적 특징을 갖춘 위대한 투쟁을 용감하게 진행하라”며 다시 자신의 투쟁론을 펼쳤다.
시 주석이 다음 달 1일 건국 70주년을 앞두고 항우(項羽)를 거론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항우는 유방(劉邦)을 홍문에서 죽일 수 있었지만 의롭지 않다는 참모 항백(項伯)의 충고를 따라 풀어줬다.

마오는 한시를 통해 항우처럼 궁지에 몰린 적을 놓아줬다가 나중에 당하는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라”는 루쉰(魯迅)의 주장과 같다.
항우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시 주석의 발언은 미국과의 무역 전쟁, 독립론을 펼치는 대만 차이잉원(蔡英文) 정부, 행정장관 직접 선거를 요구하는 홍콩 시위대 등 대내외 위기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시 주석의 발언 가운데 ‘철저한 혁명 정신’은 당내에 잠복한 반대 세력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최근 시 주석의 마오쩌둥 따라 하기는 향산 유적지 시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3일 시 주석은 중앙당교에서 열린 가을학기 중·청년 간부 양성반 입학식에서 다섯개의 ‘무릇(凡是·범시)’을 언급하며 당이 당면한 투쟁의 방향·입장·원칙을 밝혔다. ‘범시’는 과거 마오쩌둥이 후계자로 지명했던 화궈펑(華國鋒)이 “마오쩌둥이 생전에 내린 결정과 지시는 모두 옳다”고 주장했던 ‘양개범시론(兩個凡是論)’을 연상시킨다.

지난 4일에는 ‘두 가지 수호(兩個維護·양개유호)’ 실천을 공산당원의 으뜸 임무로 규정한 ‘중국공산당 문책조례’를 발표했다. 양개유호론은 “시진핑 총서기의 당 중앙에서의 핵심, 전당에서의 핵심 지위를 확고하게 수호하고, 당 중앙의 권위와 집중적이고 통일된 지도를 확고히 수호한다”는 의미다. 화궈펑의 양개범시론과 일맥상통한다. 문책조례는 2016년 7월 처음 제정된 뒤 3년 만에 다시 고쳤다. 마오쩌둥의 부활은 다음달 1일 천안문 군사 퍼레이드와 당 19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로 이어질 전망이다.

마오쩌둥의 향수를 부추기는 시 주석의 행보에 대해 개인의 권력 욕구가 아닌, 위기를 돌파할 강력한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공산당 조직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과 교수는 “문책조례 개정은 국가를 당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장기 계획의 일환”이라며 “마오쩌둥의 권위를 되살리는 것도 당조직이 시 주석의 권력을 추인하는 장치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14일 새로운 단장을 마치고 일반인에게 재개장한 중국 베이징 향산의 쌍청별장 마오쩌둥 집무실을 베이징 시민들이 둘러보고 있다. 신경진 기자

14일 새로운 단장을 마치고 일반인에게 재개장한 중국 베이징 향산의 쌍청별장 마오쩌둥 집무실을 베이징 시민들이 둘러보고 있다. 신경진 기자

14일 일반인에게 공개한 중국 베이징 향산의 향산혁명기념관에 전시된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 사진. 1949년 5월 서북군구 시중쉰 정치위원이 시안 보위 동원 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신경진 기자

14일 일반인에게 공개한 중국 베이징 향산의 향산혁명기념관에 전시된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 사진. 1949년 5월 서북군구 시중쉰 정치위원이 시안 보위 동원 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신경진 기자

14일 새로운 단장을 마치고 일반인에게 재개장한 중국 베이징 향산 쌍청별장 마오쩌둥 집무실의 책상. 추석 연휴를 앞둔 12일 시진핑 주석이 이곳을 찾아 마오의 당시 행적을 되새겼다. 신경진 기자

14일 새로운 단장을 마치고 일반인에게 재개장한 중국 베이징 향산 쌍청별장 마오쩌둥 집무실의 책상. 추석 연휴를 앞둔 12일 시진핑 주석이 이곳을 찾아 마오의 당시 행적을 되새겼다. 신경진 기자

14일 새로운 단장을 마치고 일반인에게 재개장한 중국 베이징 향산 쌍청별장 마오쩌둥 전시관에 마오쩌둥과 아들 마오안잉의 사진이 걸려있다. 마오안잉은 이듬해 한국전쟁에 참전해 폭사했다. 신경진 기자

14일 새로운 단장을 마치고 일반인에게 재개장한 중국 베이징 향산 쌍청별장 마오쩌둥 전시관에 마오쩌둥과 아들 마오안잉의 사진이 걸려있다. 마오안잉은 이듬해 한국전쟁에 참전해 폭사했다. 신경진 기자

14일 일반인에게 공개한 중국 베이징 향산의 향산혁명기념관. 28개의 복도 기둥이 1921년 창당에서 49년 건국까지 걸린 28년을, 높이 19.49m의 남쪽 광장의 국기봉은 1949년 건국을 상징하고 있다. 신경진 기자

14일 일반인에게 공개한 중국 베이징 향산의 향산혁명기념관. 28개의 복도 기둥이 1921년 창당에서 49년 건국까지 걸린 28년을, 높이 19.49m의 남쪽 광장의 국기봉은 1949년 건국을 상징하고 있다. 신경진 기자

14일 새로운 단장을 마치고 일반인에게 재개장한 중국 베이징 향산 쌍청별장 초입의 안내석. 신경진 기자

14일 새로운 단장을 마치고 일반인에게 재개장한 중국 베이징 향산 쌍청별장 초입의 안내석. 신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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