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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아마존 고, 국내 IT는 꿈도 못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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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안면인식 등 빅데이터 수집 #국내기업 규제, 해외기업은 가능 #네이버 12개, 구글 57개 역차별 #개정안 발의됐지만 국회서 발목

‘아마존 고(Amazon go)’.
정보통신(IT) 업계 거인인 아마존이 내놓은 무인 유통점이다. 수 백개의 인공지능(AI) 카메라 센서를 통해 매장 내 고객이 어떤 상품을 샀는지 실시간으로 계산한다. 영상 정보를 자동으로 판독해 결제가 이뤄지는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ㆍ그냥 걸어나간다)’ 기술이 핵심이다. 아마존은 아마존 고 매장 수를 올해 안에 50개, 2021년까지는 최대 3000개로 늘린다는 목표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위치한 무인 유통점 '아마존 고' 매장 입구. 스마트폰에 앱을 다운로드 받은 뒤 출입문 QR코드를 스캔하는 것 만으로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위치한 무인 유통점 '아마존 고' 매장 입구. 스마트폰에 앱을 다운로드 받은 뒤 출입문 QR코드를 스캔하는 것 만으로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마존 고’는 단순한 유통점이 아니라 ‘빅데이터(Big Data)’와 ‘인공지능(AI)’ 기술의 총아다. 아마존 가입자는 앱을 다운로드 받은 뒤 출입문 QR코드를 스캔하는 것만으로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 가족, 친구 등도 동반할 수 있다. 업계에선 아마존이 아마존 고를 통해 고객의 구매 데이터를 확보해 학습한 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서비스를 더 만들어 낼 것으로 본다.

아마존은 '된다', 네이버·카카오는 '안된다'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국내 업체들은 이런 서비스를 할 수 있을까. 현재로썬 ‘노(No)’다.
‘저스트 워크 아웃’ 같은 기술도 없거니와, 개인정보 수집 관련 규제가 까다롭다 보니 아예 서비스를 시작조차 못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국내 IT기업이 저스트 워크 아웃을 하려면 매장 입장에서부터 위치ㆍ안면 인식 정보 등의 수집과 이용 등에 대한 사용자의 동의가 이뤄져야 한다.

14일 익명을 원한 국내 IT업체 관계자는 "국내 IT업체들은 사업 아이디어를 내기 전에 기존 규제를 먼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아마존 고처럼 다양한 정보 수집이 필요한 영역의 비즈니스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라고 한탄했다.

해외업체들 사실상 규제 무풍지대에 

주요 IT업체별 개인정보 수집항목 수. 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주요 IT업체별 개인정보 수집항목 수. 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한 가지 놀라운 건, 구글과 페이스북 등 해외 IT업체들은 국내에서도 사실상 이런 규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거다. 규제를 적용할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이를 강제할 집행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내 사업자에게만 규제가 적용된다. 이는 각 IT업체가 수집하고 있는 개인정보 항목 수에서도 확인된다. 1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 통신위원회 소속 박성중 의원실에 따르면, 네이버와 카카오의 개인정보 관련 수집 항목은 각각 12개(선택항목 2개 포함)와 21개(선택 3개)에 그친다. 반면 구글은 57개, 페이스북은 51개다.

정보의 깊이도 차원이 다르다. 페이스북은 현재 위치와 거주 지역, 가고 싶은 장소 등에 대한 데이터까지 수집한다. 이를 통해 가입자의 과거 행동은 물론 미래 행동 패턴까지 예측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다양한 추천 서비스도 가능해진다. 이들 서비스의 이용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의 정보를 해외 업체에 내놓을 수밖에 없다. 한 예로 구글의 경우 개인정보 수집 항목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핵심인 지메일(Gmail) 계정 개설이 사실상 어렵다.

김범수 의장도 "골든타임 놓친다" 걱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현행 규제들이 국내 IT업체들을 역차별하는 사이, 해외와 국내업체 간 기술력 차는 더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김범수(53) 카카오 이사회 의장도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인공지능(AI) 분야 인재들이 한국을 떠나는 건 국내에서 데이터 수집과 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데이터를 활용하는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AI는 발전할 수밖에 없는데 ‘골든타임’을 놓치면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실제 외국 기업과 국내 IT 기업 간 서비스 수준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구글 포토 서비스는 위치 정보를 활용해 사진을 찍은 장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사진은 장소별로 자동으로 분류된다. 위치 정보에 대한 포괄적 동의를 받아둔 덕이다. 페이스북은 피드(게시판)에 사진을 올리면 안면 인식 등을 적용해 사진 속 친구를 찾아 자동으로 추천해준다.

반면 국내 사업자가 이런 서비스를 하려면 ‘바이오 정보 보호 가이드라인’에 따라 개인정보 및 바이오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목적 및 활용범위 등을 고지하고 별도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중기 적합업종' 지정 당시 악몽 재현될까 

이런 상황을 두고 2010년대 초반 ‘중소기업 적합업종(이하 적합업종)’ 지정 당시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당시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국내 대기업을 사실상 밀어낸 자리를 해외 기업들이 차지했었다. SK그룹이 중고차 매매업에서 떠난 뒤 해당 시장에선 국내 중소기업이 아닌 수입차 업체들이 큰 폭으로 파이를 키운 바 있다. 올해 초 청와대에서 열린 ‘중소ㆍ벤처 기업인과의 대화’에 참석한 김택진(52) 엔씨소프트 대표 등이 ‘스마트한 규제’를 요청한 이유다.

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1세대 벤처기업인과 유니콘 기업인 등 7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벤처기업 육성 방안 등에 대한 간담회를 열고 의견을 나누었다. 문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김택진 NC소프트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1세대 벤처기업인과 유니콘 기업인 등 7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벤처기업 육성 방안 등에 대한 간담회를 열고 의견을 나누었다. 문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김택진 NC소프트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제점은 다들 인식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지난달 국내 업체도 해외 업체와 같은 수준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개정안 역시 언제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광호 서울대 교수(개방형혁신학회 부회장)는 "규제를 준수하는 국내 사업자는 데이터 분석을 통한 추천 서비스나 맞춤형 서비스 제공 자체가 사실상 어려운 상태"라며 "해외 사업자들이 이미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규제로 인해 국내와 해외 사업자 간 서비스 품질 격차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는 국내 사업자의 서비스 출발선을 한참이나 뒤로 물려놓는 상황을 낳고 있다"고 우려했다. 판교=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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