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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처럼 빠져드는 안재홍…가슴이 폴짝폴짝 뛴다

중앙일보

입력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안재홍. 기타를 치고 노래하며 의외의 ‘심쿵’ 포인트를 선보였다. [사진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안재홍. 기타를 치고 노래하며 의외의 ‘심쿵’ 포인트를 선보였다. [사진 JTBC]

JTBC 금토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리는 드라마다. ‘본격 수다 블록버스터’라는 설명에 걸맞게 한번 입을 뗐다 하면 원고지 서너장은 족히 채울 법한 대사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드라마 작가인 임진주(천우희)는 물론 다큐멘터리 감독 이은정(전여빈), 제작사 마케팅 PD 황한주(한지은) 등 한집에 사는 여주인공 세 명 모두 ‘말발’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모이는 순간마다 ‘말의 향연’이 펼쳐져 감당하기 힘들 정도.

[민경원의 심스틸러] #‘멜로가 체질’ 까칠한 스타 PD 손범수 #사랑 앞에선 자꾸만 착해지는 순정남 #‘응답하라’ 등 코믹함 벗고 감성 더해 #이병헌 감독 “너무 사랑스럽다” 극찬

하여 그 ‘말맛’에 푹 빠진 시청자들은 주옥같은 대사를 받아적기 바쁜 것도 모자라 두 번 보고 세 번 볼수록 더 재미있는 드라마라 극찬한다. 반면 TV 리모컨을 돌리다 우연히 마주한 시청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극 중 스타 PD인 손범수(안재홍)의 말마따나 “드라마는 만들어낸 이야기이자 멋진 거짓말”이어야 마땅한데 “그냥 하고 싶은 말을 막 뱉어버리는” 이 드라마는 당최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봐야 하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탓이다. 새로운 시청자 유입이 녹록지 않으니 1회 1.8%로 시작한 시청률 역시 10회 1.8%에 멈춰 있다.

‘멜로가 체질’에서 스타 PD와 신인 작가로 다시 만난 안재홍과 천우희. [사진 JTBC]

‘멜로가 체질’에서 스타 PD와 신인 작가로 다시 만난 안재홍과 천우희. [사진 JTBC]

두 사람은 2014년 웹드라마 ‘출중한 여자’에서 10년지기 친구로 호흡을 맞췄다. [사진 기린제작사]

두 사람은 2014년 웹드라마 ‘출중한 여자’에서 10년지기 친구로 호흡을 맞췄다. [사진 기린제작사]

이들이 드라마 속 드라마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를 준비하며 나누는 대화를 곱씹어보면, 제작진 역시 이것이 얼마나 무모한 도전인지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기려는 압박도 없고 이렇다 할 서사 없이도 매력 있는 캐릭터와 그들에게 착 달라붙는 대사의 힘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실험해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포털사이트에 주요 등장인물로 소개되는 30여명 모두 만만치 않은 명대사 대결을 펼치니 말이다.

“신인이 왜 유연해야 하냐” “그럼 기성은 딱딱해야 하냐”는 반문처럼 올 초 영화 ‘극한직업’으로 1600만 관객을 동원한 이병헌(39) 감독은 완벽하게 주류의 반열에 오른 기성 감독이지만 처음 TV 드라마에 도전하는 신인 PD이기도 하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출발선에 서서 신인의 패기로 똘똘 뭉친 모험정신을 선보이기 어렵단 얘기다. 어쩌면 30대의 끝자락에 서서 ‘서른 돼도 안 괜찮아져요’라는 것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멜로가 체질’의 안재홍. 천우희의 기분이 우울할 것으로 추정되면 일단 잘 먹이고 본다. [사진 JTBC]

‘멜로가 체질’의 안재홍. 천우희의 기분이 우울할 것으로 추정되면 일단 잘 먹이고 본다. [사진 JTBC]

드라마 PD로 분한 안재홍(33)은 이러한 감독의 분신 역할을 충실하게 소화한다. 신인 작가인 천우희가 대본을 쓰다 정신줄을 놓고 폭주할 때면 집 나간 이성을 되찾아 오기도 하고, 반대로 고백하는 장면을 못 써서 끙끙대고 있으면 느슨해진 감성줄을 살포시 튕겨주기도 한다. 자꾸 사람을 웃게 만들며 무장 해제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평양냉면같이 슴슴한 매력에 한 번 빠져들면 그의 일거수일투족에도 가슴이 폴짝폴짝 혹은 덩실덩실 뛰어댄다. 5년 전 두 사람이 처음 호흡을 맞춘 웹드라마 ‘출중한 여자’(2014)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찰떡 호흡이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병헌 감독은 “말투와 표정이 너무 사랑스럽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이번 드라마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어서 왕자가 필요 없긴 하지만 적정한 수준의 왕자님이었다”는 그의 말에는 안재홍을 향한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코믹한 이미지 탓에 안재홍과 멜로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버린 자신감도 한몫했을 터. 안재홍 역시 “실제로도 멜로가 체질”이라며 “여운을 남기고자 최대한 담백하게 연기했다”고 말했다.

영화 ‘족구왕’에서 주연을 맡은 안재홍. 들꽃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사진 광화문시네마]

영화 ‘족구왕’에서 주연을 맡은 안재홍. 들꽃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사진 광화문시네마]

사실 안재홍의 필모그래피가 채워져 온 과정 자체가 반전의 연속이기도 하다. 부산에서 상경해 건국대 예술학부 영화전공 동기 중 홀로 사투리를 고치지 못하고 있을 때만 해도, 2009년 단편영화 ‘구경’으로 데뷔 후 대학로 연극 무대에 오를 때도 배우로서 그의 성공을 점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 갖다 놔도 거슬리지 않을 평범한 외모는 배우에게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배우에게는 장점이지만 존재감을 발휘해야 할 주연 배우로 거듭나기에는 약점이 될 수도 있는 탓이다.

하지만 그는 정공법으로 난관을 돌파해 왔다. 신문을 소리 내서 읽으며 사투리를 고쳤고, 군대 때도 안 하던 족구를 섭렵하며 ‘족구왕’(2014)의 복학생 히어로가 됐다. ‘열아홉, 연주’(2014) ‘검은 돼지’(2015) 등 틈틈이 단편 영화를 연출하며 시야도 넓어졌다. ‘응답하라 1988’(2015~2016)의 정봉이를 보며 그의 드라마 데뷔작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거의 없지 않았을까. 탄탄히 다진 기본기가 지닌 힘이다. 덕분에 얼핏 돌아가는 듯했던 그의 이력은 가속도가 붙어 쾌속 주행 중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정봉이 역을 맡은 안재홍. 이때도 그는 로맨티스트였다. [사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정봉이 역을 맡은 안재홍. 이때도 그는 로맨티스트였다. [사진 tvN]

이번 작품이 끝나고 나면 아마도 그는 다시 한번 변신을 꾀할 것이다. 그게 코믹이 됐든 멜로가 됐든 자신을 한 곳에 가두는 걸 원치 않는 스타일이니 말이다. 첫 상업영화 주연작 ‘임금님의 사건수첩’(2017)을 두고도 “정봉이와 비슷해 보일까봐” 망설였던 그였다. 하지만 그가 맡은 사관 윤이서는 영특했고 비상했다. 짠내 풀풀 풍기는 ‘쌈, 마이웨이’(2017)의 김주만과 자신감 넘치는 ‘멜로가 체질’의 손범수가 다른 것처럼 그는 코믹이든 멜로든 곧 체질로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 스릴러가 체질, 액션이 체질인 그의 모습도 곧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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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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