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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178개국 743만 재외동포 네트워크 강화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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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조형재 재외동포재단 차세대사업부장

조형재 재외동포재단 차세대사업부장

2017년 기준으로 우리 재외동포는 743만명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14%나 된다. 눈여겨볼 것은 재외동포가 지구촌 178개국에 흩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미국·중국·일본·러시아(CIS 포함) 등 4개 권역에 90%가량이 집중돼 있다. 재외동포가 주요 네 나라에 집중돼 있으면서도 178개국에나 걸쳐 있다는 사실은 글로벌 네트워크가 중요한 시대에 대한민국에는 유리한 자산이다.

글로벌시대 국가의 소중한 자산 #지속가능한 동포 사회 만들어야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주변국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데 이들 나라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는 정치적으로 중요하다. 일본의 무역 도발로 시장을 다변화해야 하는 통상국가 대한민국 입장에서 178개국에 흩어져 있는 재외동포는 경제적으로도 그야말로 천군만마 같은 존재다. K-팝을 비롯한 글로벌 한류의 첨병 역시 재외동포다. 문화적으로도 재외동포가 소중한 이유다.

이처럼 중요한 재외동포 사회는 지금 세계 도처에서 만만찮은 시련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농업에 강점이 있던 중국 동포(조선족)는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이전에는 잘 사는 소수민족이었다. 그러나 개혁·개방에 따른 산업화·도시화가 급진전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90년대부터 농촌을 떠나 중국 동부 연해 도시나 한국 등 해외로 대거 이주했다. 가족의 이산과 교육 황폐화 등으로 공동체 해체 위기가 진행 중이다. 이주한 곳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꿈꿔보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재일동포 사회는 과거와는 또 다른 시련을 겪고 있다. 해방을 맞으며 일본에서 외국인 신분이 된 재일동포는 온갖 차별 속에서도 한국 국적만큼은 지켰다. 그런 재일동포를 대상으로 남북한은 체제의 우월성을 알리는 데 열중했다. 남한은 민족 정체성 유지를 위한 노력을 해야 했지만 이를 위한 교육은 뒷전이었다. 결국 ‘한글을 잃어버린 재일동포’가 되고 말았다. 1세부터 4세까지 모국 지향, 현지 지향, 다시 모국 지향을 거듭하다가 90년대부터 일본 귀화가 늘었다. 동포사회가 느끼는 고뇌의 깊이를 절감하게 한다. 그 와중에 일본의 무역 도발로 한·일 양국이 정면충돌하자 망연자실한 상황이다. 어느 때보다도 모국의 따뜻한 포용과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250만명 규모의 미국 동포 사회는 중국·일본 거주 재외동포들과는 또 다른 도전을 맞고 있다. 세대교체에 직면해 있다. 실패하면 동포사회는 쇠락한다. 모국의 지원 아래 1000여 개의 한글학교에서 한글과 역사·문화 등을 가르친다. 그런데 학생이 4만4000명에 불과하다. 한인 단체에서는 1세대와 2세대 간 세대교체가 매끄럽지 않다. ‘한민족 정체성 유지’라는 하강 에스컬레이터에서 올라가지 못해 밀리는 인상이다. 나름 애썼지만, 노력이 충분치 못해 ‘한글을 잃어버린 재일동포’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러시아와 CIS 권역도 나라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재외동포들의 사정은 어렵다. 1990년대 초 옛 소련 붕괴 이후 공화국들이 독립하고 민족주의가 대두하면서 동포들은 설 자리가 좁아졌다. 다시 연해주 등지로 제2의 이주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 지역의 고려인 활동과 네트워크는 여전히 미약하다.

‘대한민국 미래 100년, 차세대가 함께 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난주 재외동포재단 주최로 ‘제22회 세계 한인 차세대 대회’가 열렸다. 16개국에서 100여 명의 차세대동포 리더가 참석했다. 세계 한인 차세대 네트워크 활성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했다. 글로벌 동포사회도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을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모국이 재외동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겠지만, 동시에 차세대 동포 리더와 단체 대표들도 글로벌 한민족의 도약과 상생을 위해 ‘지속 가능한 동포사회’의 초석을 깔아주길 바란다.

조형재 재외동포재단 차세대사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