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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핸드폰사진관] '버섯의 여왕' 노랑망태버섯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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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망태버섯 20190903

노랑망태버섯 20190903

지난주(9월 3일) 남산 둘레길에서 노랑망태버섯을 만났습니다.
찾고자 해서 찾은 게 아닙니다.
상상조차 못 한 우연이었습니다.

노랑망태버섯 20190911

노랑망태버섯 20190911

일반적으로 노랑망태버섯의 삶은 이러합니다.
이른 새벽 버섯 갓에서 노란색 망사모양 균망이 아래로 펼쳐집니다.
두어 시간 만에 노란 드레스를 펼친 자태가 됩니다.
그 고혹한 자태를 보고 ‘버섯의 여왕’이라 합니다.

노랑망태버섯 20190911

노랑망태버섯 20190911

하지만 햇살이 숲에 들면 버섯이 녹아내립니다.
한순간 피었다가 속절없이 지는 한나절 삶인 겁니다.
어찌 보면 세상 그 무엇보다 슬프디슬픈 짧은 삶입니다.

이처럼 짧은 삶이니 좀처럼 만나기 힘든 겁니다.
몇 해 전 이 친구를 만나려고 산을 뒤진 적 있었습니다.
결국 못 찾았습니다.
찾으려 해도 못 찾았던 친구를
길가에서 이렇게 우연히 마주친 겁니다.
게다가 이미 시들었어야 할 정오 무렵에요.
실로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애기낙엽버섯 20190910

애기낙엽버섯 20190910

지난 9월 10일 아침,
다시 그곳을 찾았습니다.
비 온 뒤라 혹시나 해서 찾은 겁니다.
노랑망태버섯이 피었던 자리엔 흔적도 없었습니다.
대신 애기낙엽버섯이 온 숲에서 올망졸망 피고 있었습니다.

버섯은 일반적으로 피던 곳에서 또 핍니다.
그래서 주변을 샅샅이 살폈습니다.
노랑망태버섯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노랑망태버섯 20190910

노랑망태버섯 20190910

결국 못 찾고 다른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먼발치에 또렷한 노란색이 보였습니다.
비 온 뒤 흐린 날,
채도 낮은 숲에서
저 홀로 노랗게 빛나니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다가가서 보니 여느 노랑망태버섯과 색이 다릅니다.
연한 노란색입니다.
마치 노랑 병아리가 다소곳이 앉은 모습입니다.

노랑망태버섯 20190910

노랑망태버섯 20190910

사진을 찍은 후 주변을 둘러보니
또 다른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짙은 노란색입니다.
노란 치마를 한껏 펼친 무희 같습니다.

노랑망태버섯 알 20190910

노랑망태버섯 알 20190910

주변에 달걀 크기의 알이 몇 개 보입니다.
이 알에서 대와 갓이 올라오고 균망이 펼쳐지는 겁니다.
이렇게 조그만 하얀색 알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노란색이 나온 겁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후략….'

그렇습니다.
한순간 어마어마한 일생이 노랑망태버섯에 온 겁니다.

노랑망태버섯 20190911

노랑망태버섯 20190911

어제(9월 11일)도 비가 내렸습니다.
이른 아침 비가 멎자마자 남산을 찾았습니다.
길가에서 두 친구를 만났습니다.
비를 맞으면서도 드레스를 펼쳤나 봅니다.
고와도 어찌 이리 고울 수 있을까요.

노랑망태버섯 20190911

노랑망태버섯 20190911

벌이 망태버섯을 찾아 왔습니다.
색 고우니 꽃인 양 여겼나 봅니다.
가만히 지켜보니 개미도 옵니다.
온갖 하루살이도 옵니다.
이들이 포자를 퍼트립니다.
이 짧은 삶에도 이리 다음 삶을 퍼트립니다.
오묘합니다,
노랑망태버섯 삶에 자연의 신비가 오롯이 담겼습니다.

노랑망태버섯 20190911

노랑망태버섯 20190911

숲에 빛이 듭니다.
제 한 몸 불사르기 전,
한껏 빛 받은 노란 드레스가 신비롭게 빛납니다.
과연 ‘버섯의 여왕’입니다.

노랑망태버섯 20190911

노랑망태버섯 20190911

행여 노랑망태버섯을 만나는 행운을 얻고 싶다면,

이른 아침 남산 둘레길 남산약수터 쉼터에서
남측 숲길 입구 방향으로 걸어 보십시오.

한가위입니다.
두루 행운 가득한 한가위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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