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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시신처리때 음악 듣소"···까슈끄지 암살 순간 충격 녹취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10월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목숨을 잃은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0월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목숨을 잃은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0월 터키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공작원들에게 암살당한 반정부 성향의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사망 당시 상황이 담긴 음성녹음 자료가 9일(현지시간)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날 터키 데일리사바, 알자지라 등 외신은 이를 녹취록으로 구성해 세밀히 전했다.

터키 정보당국 당시 녹취록 공개 #카슈끄지 암살 과정 상세히 기록 #무함마드 왕세자, 여전히 의혹 부인

카슈끄지는 지난해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암살당했다. 터키 국가정보기구(MIT)가 확보한 음성녹음 자료에는 카슈끄지가 영사관에 들어서기 직전부터의 상황이 상세히 담겨 있다. 암살을 주도한 사우디 공작원들은 카슈끄지 암살 뒤 그의 사지를 절단했는데, 이러한 과정이 담긴 소름 끼치는 대화까지 기록돼 있었다.

오후 1:02 카슈끄지 도착 12분 전

카슈끄지 암살에 관여한 사우디 공작원은 10여명이다. 암살 작전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경호원이었던 마헤르 압둘아지즈 무트렙이 주도했다. 살해 후 시체 절단 등 뒤처리는 사우디 안보기관의 법의학 전문가 살라 무함마드 알투바이지가 담당했다. 녹취록에 기록된 무트렙과 알투바이지의 대화 내용을 보면 이들은 카슈끄지가 영사관에 도착하기 전부터 그를 살해하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살해 수법과 뒤처리 과정을 상의하는 내용이 녹취록에 포함돼 있다.

무트렙: 몸통을 가방에 넣을 수 있겠소?

알투바이지: 너무 무겁고 키가 커서 안 되오. 난 항상 시체들과 일 해왔소. 절단하는 법을 잘 알고 있지. 체온이 남아 있는 시체를 다뤄본 적은 없지만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요. 보통 난 시체를 절단할 때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소. 커피와 담배도 즐기면서. 절단 후 당신은 절단 부위를 비닐봉지에 담고 가방에 넣어 영사관 밖으로 나가시오.

자말 카슈끄지가 암살당한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영사관. [로이터=연합뉴스]

자말 카슈끄지가 암살당한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영사관. [로이터=연합뉴스]

오후 1:14 카슈끄지 영사관 도착

카슈끄지가 당시 영사관에 방문한 이유는 약혼자와 결혼 관련 서류를 떼기 위해서였다. 당시 카슈끄지의 약혼자 하티제 젠기즈는 영사관 밖에서 카슈끄지가 일을 마치고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이후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카슈끄지는 오후 1시 14분 영사관에 들어갔고, 암살 공작원들에 의해 강제로 2층 사무실로 끌려간 뒤 살아서 나오지 못했다.

무트렙: 앉으시오. 당신을 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로 데려가야겠소. 인터폴의 인도 명령이 있었소. 우리는 당신을 데려가려고 왔소.

카슈끄지: 나는 소송을 당하거나 한 적이 없소. 내 약혼자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소.

오후 1:22 카슈끄지 암살 10분 전

카슈끄지에 대한 심문을 이어가던 무트렙은 카슈끄지에게 스마트폰으로 아들에게 메시지를 남길 것을 종용한다.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한 카슈끄지가 거부하자 한 암살 공작원은 "짧게 쓰라"고 협박하는 내용도 녹취록에 담겨 있다.

무트렙: 전화기를 갖고 있소?

카슈끄지: 두 대 갖고 있소.

무트렙: 어떤 제품이오?

카슈끄지: 아이폰이오.

무트렙: 아들에게 메시지를 남기시오.

카슈끄지: 뭐라고 말해야 하오?

무트렙: 연습해봅시다. 내게 보여주시오.

카슈끄지: 뭐라고 말해야 하지? 곧 만나자?

공작원: 짧게 끝내시오.

무트렙: '난 이스탄불에 있단다. 연락이 닿지 않아도 걱정 말아라' 같은 걸 쓰시오.

카슈끄지: 납치당했다고 쓸 수는 없소.

공작원: 외투를 벗으시오.

카슈끄지: 어떻게 영사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소? 난 아무것도 쓰지 않을 거요.

무트렙: 자말 선생, 서둘러 쓰시오. 우리가 도와줄 수 있게 협조하시오. 협조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게 될 거요.

메시지와 관련한 승강이를 벌이던 공작원들은 카슈끄지에게 약을 먹였고, 카슈끄지는 의식을 잃기 직전 "천식이 있다. 질식할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공작원들의 뒤처리는 오후 1시 39분부터 자행됐다. 녹음자료에는 부검용 톱 소리도 기록됐다. 잔인한 뒤처리 과정은 약 30분 동안 이어졌다. 데일리사바 보도에 따르면 카슈끄지의 몸통은 가방 다섯 개에 나뉘어 영사관 밖으로 반출됐는데, 이후 어떻게 처리됐는지는 여전히 의혹이다.

자말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로 지목된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AP=연합뉴스]

자말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로 지목된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AP=연합뉴스]

무함마드 왕세자, 연루 의혹 부인

카슈끄지 암살 사건이 알려진 직후 사우디 정부는 그의 암살과 관련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며칠 뒤 주먹 다툼에서 일어난 우발적 살인이었다고 말을 바꿨다가 사건 3주 뒤 계획된 살인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서방 언론에 의해 암살 배후로 지목된 무함마드 왕세자를 비롯한 왕실의 개입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카슈끄지 암살 사건이 알려진 이후 수사의 초점은 주로 하위급 공무원에 맞춰졌다. 사우디 검찰은 지난 3월 카슈끄지 암살에 연루된 하위 공무원 5명에 대해 사형을 구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의 아들로 2017년 사촌형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를 밀어내고 왕세자에 책봉된 인물이다. 대내외적 직함은 왕세자 겸 부총리이지만 다른 왕족들을 숙청하고 사실상 절대 권력으로 떠올랐다. 사우디 경제 체질 개혁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그는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카슈끄지는 사우디 출신 언론인으로 2017년부터 미국에 거주하며 워싱턴포스트 칼럼을 통해 사우디 왕실을 비판해왔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카슈끄지 암살 연루 의혹과 관련해 지난 6월 아녜스 칼라마르 유엔 특별조사관은 보고서를 통해 "무함마드 왕세자가 연루됐다는 신뢰할 수 있는 증거가 있다"며 "카슈끄지는 사우디 정부의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암살로 사망했고 사우디는 국제 인권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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