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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차 천국' 미국서 1000㎞ 질주···넥쏘는 목말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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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천당에서

‘친환경차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대에서 수소차를 타는 건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현지에서 현대자동차가 만든 수소전기차 ‘넥쏘’를 처음 시승하며 든 생각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달리는 일정이었다. 1000㎞ 남짓 거리, 3박 4일 장거리 행군이었지만 든든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거리(609㎞) 덕분이었다.

세계 수소경제 현장을 가다④ #수소차 6547대 보급한 미국 #캘리포니아만 충전소 45곳 #대도시 집중 ‘미완 생태계’ #“수소차 뒷받침 인프라 과제”

시속 120㎞까지 치고 나가는 데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실내는 전기차답게 조용했다. 운전대와 가속 페달에서 손발을 떼고도 곡선도로를 매끄럽게 내달리는 자율주행 기술은 흠잡을 데 없었다. 수소 충전비는 무료. '친환경차'라는 이유로 한국의 ‘버스전용 차로’ 격인 ‘카풀(carpool)’ 차선을 마음대로 달릴 수 있다는 ‘특권’도 운전 즐거움을 더했다. 데렉 조이스 현대차 미국법인(HMA) 대변인은 “캘리포니아는 세계에서 수소차와 수소 충전소가 가장 많이 보급된 친환경차 천국”이라며 “내연기관차를 운전할 때보다 장점을 더 많이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옥으로

문제는 내비게이션의 ‘지령’을 어기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고 달리는 캘리포니아 1번 해안도로에 접어들면서다. '빅 서'(Big Sur) 교각으로 유명한 도로다. 꼬불꼬불한 데다 오르막ㆍ내리막이 이어지는 해안도로에 접어들자 평지와 달리 계기판에 찍히는 주행가능 거리가 뚝뚝 떨어졌다. 수소를 충전하라는 경고음이 쉴 새 없이 울렸다. 한반도 면적의 2배에 달하는 캘리포니아에서 수소 충전소는 LA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 인근에 몰려있었다. 수소차가 언제든 편하게 주유할 수 있는 내연기관차가 아니란 점을 실감했다.

가까스로 새너제이 인근 충전소에 도착했다. 텅 빈 수소탱크를 완전히 채우는 데 걸린 시간은 5분. 충전소에서 만난 도요타 미라이(수소차) 운전자 조지프 창(51)은 “수소차는 어디까지나 가벼운 출퇴근용 ‘세컨드 카(second car)’”라며 “자동차를 정보기술(IT) 장난감이라고 여기는 얼리 어답터라서 수소차를 타는 것일 뿐 캘리포니아를 벗어나는 건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한 수소 충전소에서 수소차 넥쏘를 충전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김기환 기자

김기환 기자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한 수소 충전소에서 수소차 넥쏘를 충전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김기환 기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월 ‘수소 경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16쪽 분량 보도자료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나라가 강점이 있는 수소차와 연료전지를 양대 축으로 수소 경제를 선도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 수소차 누적 생산량을 2018년 2000대에서 2040년 620만대로 확대하고,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한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수소 경제의 핵심이 ‘수소차’란 점을 엿볼 수 있다. 최근엔 문재인 대통령이 넥쏘를 전용차 중 하나로 채택했다. 수소차는 정확히 말해 ‘수소연료전지자동차’다. 연료탱크에 수소를 충전해 산소와 반응시켜 물을 만든다.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로 전기 모터를 돌려 달린다. 이승훈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H2KOREA) 사무총장은 “글로벌 수소차 시장에선 한국ㆍ일본이 선두를 다툰다”며 “도요타 ‘미라이’, 혼다 ‘클래리티’, 현대차 ‘넥쏘’가 시장을 삼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업계를 선도하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수소차는 매우 바보 같다(extremely silly)”고 혹평하기도 했다. 수소를 생산ㆍ저장하는 과정이 복잡한 데다 내연기관차는 물론 전기차와 비교해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는 물론 인프라가 뒤진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높은 기술력으로 시장을 선점한 회사엔 기회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경우 가격도 확 낮출 수 있다. 무엇보다 긴 완충 주행거리(전기차 최장 400㎞ 수준, 넥쏘 609㎞)와 짧은 충전시간(전기차 30분 이상, 수소차 5분)이 돋보인다. 글로벌 수소충전소 구축에 뛰어든 에어리퀴드의 에르윈 펜포니스(Erwin Penfornis)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수소차와 전기차는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라며 “수소차는 특히 버스ㆍ선박 같은 장거리ㆍ대규모 운송수단에서 전기차 대비 강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국은 캘리포니아와 연방정부(에너지부)를 중심으로 민ㆍ관이 파트너십을 맺고 수소차 보급을 늘려왔다. 5월 기준 수소차 6547대를 보급했다. 수소충전소 확대에도 적극적이다. 캘리포니아에만 45개가 운영 중이다. 2023년까지 충전소 설립에 매년 240억원을 투자해 2030년까지 1000개를 구축할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에서조차 수소차는 ‘미완(未完)’의 생태계다. 캘리포니아를 벗어나면 충전소가 손에 꼽을 정도다. 캘리포니아에서도 대도시 인근에 충전소가 집중됐다. 그마저도 수소가 떨어져 운영을 일시 중단한 충전소가 종종 눈에 띄었다. 잭 브라우어 미국 국립수소연료전지연구센터(NFCRC) 소장은 “미국조차 수소차에 대한 관심이 아직 부족하고 인프라 구축도 막 걸음마를 뗀 단계”라고 평가했다.

한국은 수소차ㆍ연료전지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다. 정부가 초기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는 등 ‘방향’도 잘 잡았다는 평가다. 모리 마코위츠 수소에너지협회(FCHEA) 회장은 “미국ㆍ일본ㆍ독일 등 수소 경제 선진국에선 수소차뿐 아니라 수소 인프라를 지탱하는 밑바탕인 수소 생산ㆍ충전ㆍ운송 기업 투자가 활발하다”며 “제조사(현대차)가 치고 나가는 상황인 만큼 이를 뒷받침하는 ‘풀뿌리’ 수소 생태계를 구축하고 관련 규제를 푸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LAㆍ샌프란시스코(미국)=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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