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재정 중독’과 요원한 페이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해외여행이 보편화한 요즘 휴대전화 사용자가 선호하는 방식 중 하나가 현지 통신사의 ‘선불 충전식(Pay as you go·페이 애즈 유 고)’ 유심 카드를 구입해 사용하는 것이다. 먼저 비용을 내고 충전된 일정 시간만 사용하는 이 방식이 국내 통신사의 로밍 서비스보다 저렴해서다. ‘Pay as you go’라는 말은 ‘외상을 하지 않고 현금으로 낸다’ 혹은 ‘돈을 번 만큼 쓴다’는 뜻이다. 지출을 수입 내에서 억제한다는 의미다. 국가 재정과 관련해 쓰이는 ‘페이고(Pay-Go)’ 원칙도 이 말에서 나왔다.

미국 등에서 시행되는 페이고 원칙에 따르면 정부가 경기부양이나 각종 정책을 위한 새로운 지출 계획을 짤 때 재원 확보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 지출 내역에서 경기 부양 효과가 작은 곳은 삭감하고 큰 쪽으로 몰아주는 방식도 쓴다. 국가 재정 건전성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포퓰리즘 정책을 차단하고 정부의 무분별한 예산 지출을 막기 위해서다.

가계나 정부 등 경제 주체가 살림하다 보면 수입보다 지출이 더 클 수 있다. 문제는 커지기만 하는 씀씀이다. 내년도 513조5000억원의 ‘초 수퍼 예산’을 편성한 정부의 상황이 딱 이렇다. 예산 증가 속도(9.3%)는 경상성장률(명목성장률·3.8%)의 2.4배다. 국세 수입이 7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서며 역대 최대 규모(60조2000억원)의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국민 1인당 나랏빚(1인당 적자 국채)은 767만원에 이를 전망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비장한 각오로 예산안을 편성했다”고 말했다. 경제 체질을 바꾸려는 정책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어떤 비장한 각오로도 ‘재정 중독’ 탈출은 요원할 뿐이다. 직불카드 같은 페이고까지는 기대할 수 없겠지만, 신용카드를 마구 긁어대듯 재정을 써대면 빚더미에 올라앉을 수밖에 없다.

하현옥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