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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침략전쟁으로 40년 올림픽 반납 도쿄, 이번엔 왜 원폭투하일에 폐막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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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화해의 인류 축제가 돼야 하는 2020년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이 오히려 과거 군국주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최근 올림픽 당국이 군기인 욱일기를 사용한 응원을 허용하면서 이런 논란에 불이 붙고 있다. 개최 시기를 하필 1945년 원자폭탄 투하일이 포함된 덥고 습한 시기로 잡은 이유에 대한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과거 침략 전쟁을 벌이느라 1940년 도쿄 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했던 전력도 새삼스럽게 지적된다. 도대체 일본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 걸까.

1937년 중일전쟁 벌이며 올림픽 개최 포기 #평화·화합의 제전 대신 수천 만 살육 선택 #이번 올림픽은 덥고 습한 여름철 개최 논란 #‘원폭투하일 맞춰 피해자 연기’ 의도로 보여 #침략사 덮고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 우려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욱일기 사용 허용 논란 #침략 상징하는 군기 흔들며 응원하겠다는 뜻 #국제사회, 아베의 일본 제일주의 질주 막아야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1년 앞둔 지난 7월 24일 도쿄에서 열린 행사장에서 금, 은, 동메달을 공개하고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패럴림픽이 과거사를 묻고 일본을 전쟁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는 아베 퐁리의 정치적 행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1년 앞둔 지난 7월 24일 도쿄에서 열린 행사장에서 금, 은, 동메달을 공개하고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패럴림픽이 과거사를 묻고 일본을 전쟁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는 아베 퐁리의 정치적 행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쿄 올림픽, 왜 하필이면 폭서기로 잡았나  

2020년 제32회 도쿄 여름 올림픽은 개최 시기를 하필 여름 폭서기인 7월 24일~8월 9일로 잡은 것도 논란을 부르고 있다. 일본의 여름철은 온도와 습도가 동시에 높아 불쾌지수가 상당한 계절이다. 2018년의 경우 7~8월 폭염으로 전국적으로 14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도쿄도 바로 북쪽에 위치한 사이타마(埼玉) 현 구마가야(熊谷)시는 그해 최고 기온인 41.1도를 기록했다. 2020년 도쿄 여름 올림픽의 농구경기가 사이타마 현 슈퍼아레나에서 열린다. 게다가 일본의 여름은 태풍의 계절이기도 하다. 폭서와 태풍이 번갈아 오는 일본의 여름은 올림픽은커녕 여행하기도 꺼려지는 시기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도쿄 올림픽 개최 시기를 하필 이런 폭염의 계절로 잡았을까.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현장에 설치된 평화공원에서 비둘기들이 조형물 앞을 날아가고 있다. 내년 열릴 도쿄 여름 올림픽은 하필이면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8월 9일을 폐막일로 잡았다. 폭염이 계속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AP=연합뉴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현장에 설치된 평화공원에서 비둘기들이 조형물 앞을 날아가고 있다. 내년 열릴 도쿄 여름 올림픽은 하필이면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8월 9일을 폐막일로 잡았다. 폭염이 계속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AP=연합뉴스]

원폭투하일 맞춰 폐회…전쟁 피해자 시늉?   

상식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이 기간에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투하일,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일이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에 맞춰 도쿄 올림픽을 치르면서 일본이 원폭의 피해자임을 강조하면서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라는 사실을 희석하는 ‘역사 물타기’를 시도하려는 의도로 의심할 수 있다. 특히 나가사키 원폭 투하일에 치르는 올림픽 폐막식에 피폭자 스포츠 스타들을 등장시켜 효과를 극대화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이런 퍼포먼스를 통해 과거 침략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범죄를 저지른 가해국이라는 사실을 덮고, 전쟁과 핵무기의 희생자이자 핵무기 반대운동에 앞장서는 평화 국가로 이미지 변신을 꾀할 수 있다. 올림픽을 활용해 침략의 과거사 덮기와 평화 국가 이미지 조작을 꾀한다면 평화와 화합을 추구하는 국제올림픽 정신에 어긋나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1941년 2월 28일부터 8월 23일까지 계속된 충칭 대폭격 당시 불타는 시가지 모습. [위키피디아]

1941년 2월 28일부터 8월 23일까지 계속된 충칭 대폭격 당시 불타는 시가지 모습. [위키피디아]

중일전쟁으로 40년 올림픽 개최권 반납 전력

게다가 일본은 올림픽과 관련해 인류사에 불쾌한 기억을 남겼다. 이번 도쿄 여름 올림픽은 1964년 이후 56년 만에 이 도시에서 열린다. 그런데 사실은 이번 올림픽은 도쿄가 2번째가 아니라 3번째로 유치한 행사다. 사실 도쿄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이어 1940년 올림픽 개최권을 확보했다. 당시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여름 올림픽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침략 전쟁을 일삼던 당시 군국주의 일본에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은 어울리지 않았다.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37년 7월 7일~45년 9월 2일)을 일으키면서 각의에서 올림픽 개최권 반납을 결정했다. 자국이 일으킨 침략 전쟁을 핑계로 올림픽을 포기, 반납한 사례는 도쿄가 처음이자 유일하다. 부끄러운 일이다.
일본이 올림픽을 포기하고 벌인 중일전쟁은 끔찍한 살육극으로 점철됐다. 종전 뒤인 1947년 중화민국 행정원 배상위원회는 일본과의 전쟁으로 군인 365만405명, 민간인 913만4569명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1995년 중국 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 산하 군역사연구부에서 출간한 『중국항일전쟁사』는 항일전쟁 기간 중 3500만 명의 중국인이 죽거나 다쳤다고 기록했다. 인류의 비극이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장애물 경주에서 금메달을 딴 니시 다케이치 선수가 애마 우라누스를 몰고 장애물을 넘는 모스2ㅂ을 그린 그림. 니시 선수는 1945년 이오지마 전투에서 전사했다. [위키피디아]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장애물 경주에서 금메달을 딴 니시 다케이치 선수가 애마 우라누스를 몰고 장애물을 넘는 모스2ㅂ을 그린 그림. 니시 선수는 1945년 이오지마 전투에서 전사했다. [위키피디아]

LA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오지마 전투 전사

일본은 중일전쟁에서 44만6500명의 군인이 사망했다. 종전 뒤엔 소련군에 의해 60만 명의 일본군 포로가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로 잡혀가 노역에 종사했으며 이 가운에 6만 명이 숨졌다.
일본 제국주의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무의미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여름 올림픽 당시 마술(馬術) 경기의 일종인 장애물 경주에서 금메달을 딴 니시 다케이치(西竹一, 1902~1945년 3월 22일) 선수다. 니치는 전차 제26연대장으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 이오지마 전투(1945년 2월 19일~3월 26일)에서 전사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육상 4관왕이 된 미국의 제시 오웬 선수(가운대)가 높이뛰기 시상식장에서 게양되는 성조기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동메달을 딴 독일의 롱 선수와 대화 관계자들은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다. [독일 연방 문서보관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육상 4관왕이 된 미국의 제시 오웬 선수(가운대)가 높이뛰기 시상식장에서 게양되는 성조기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동메달을 딴 독일의 롱 선수와 대화 관계자들은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다. [독일 연방 문서보관소]

히틀러의 베를린 올림픽, 우월주의 선전장으로

일본이 반납한 1940년 여름 올림픽 개최권은 핀란드의 헬싱키로 넘어갔다. 하지만 소련이 1939년 핀란드를 침공해 겨울전쟁(39년 11월 30일~40년 3월 13일)을 벌이면서 이 올림픽은 아예 취소됐다. 인류의 제전인 올림픽을 전쟁으로 중지된 두 번째 사례다. 1916년 베를린 여름 올림픽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된 것이 첫 사례다. 전쟁이 끝난 1936년 베를린에서 여름 올림픽이 열렸지만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이를 게르만족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선전장으로 참여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의 아프리카계 선수인 제시 오언스(1913~1980년)가 100m, 200m, 400, 계주, 멀리뛰기에서 금메달을 따서 4관왕에 오르면서 인종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1944년 예정됐던 런던 올림픽도 나치·파시스트·군국주의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아 끝내 열리지 못했다. 하지만 런던은 종전 뒤 처음 열린 1948년 여름 올림픽을 개최해 평화와 화합의 제전으로 이끌었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창설 70주년 기념 국제 관함식에 참가한 본 해상자위대 소속 스즈키 함이 중국 칭다오항에 입항한 모습.중국을 방문한 일본 함정으로는 처음 욱일기를 게양했다. 일본은 도켜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욱일기를 이용한 응원을 막지 않을 방침이다. 평화와 하합의 제전인 올림픽에서 군대가 쓰는 군기를 흔들며 응원하는 나라를 정상 국가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EPA]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창설 70주년 기념 국제 관함식에 참가한 본 해상자위대 소속 스즈키 함이 중국 칭다오항에 입항한 모습.중국을 방문한 일본 함정으로는 처음 욱일기를 게양했다. 일본은 도켜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욱일기를 이용한 응원을 막지 않을 방침이다. 평화와 하합의 제전인 올림픽에서 군대가 쓰는 군기를 흔들며 응원하는 나라를 정상 국가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EPA]

도쿄올림픽·패럴림픽에서 욱일기 응원 허용

가장 먼저 논란을 일으킨 것은 욱일기다. 한국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8월 29일 전체회의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에 도쿄올림픽 기간 전후 경기장 내에서 욱일기와 욱일기를 활용한 유니폼·소품 반입과 이를 활용한 응원 행위를 금지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 외교부도 지난 3일 조직위가 욱일기의 경기장 반입 등을 허가할 것으로 알려지자 “욱일기라는 것이 주변 국가들에 과거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은 일본 측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재고를 요구했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는 이와 관련, “(욱일기를) 반입 금지품으로 하는 것은 상정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조직위가 “(욱일기가) 일본 국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깃발을 게시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선전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일본 언론이 4일 전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스타디움에 나치 깃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관객들이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다. 평화와 하합의 장이 돼야 할 올림픽이 나치 이념과 게르만족 우월주의의 선전장으로 변질된 나쁜 선례다. [위키피디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스타디움에 나치 깃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관객들이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다. 평화와 하합의 장이 돼야 할 올림픽이 나치 이념과 게르만족 우월주의의 선전장으로 변질된 나쁜 선례다. [위키피디아]

침략 상징으로 여기는 군기 흔들며 응원할 판

욱일기(旭日旗는) 붉은 태양 주위에 빛이 퍼져 나가는 모양을 형상화한 문양을 담은 깃발이다.  중세 이래 일본 규슈(九州) 지역의 무인 집안에서 가문의 문장으로 애용했던 것을 19세기에 수정해 군기로 써왔다. 일본은 1869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중앙집권을 이루면서 과거 지방영주인 다이묘(大名)가 지배하던 한(藩)의 군대를 모두 통합해 일본군을 조직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육군은 1870년 통합군에 쓸 깃발로 욱일기를 고안해 법령으로 이를 채택했다. 1888년에는 일본 해군이 이를 군함기로 채용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전투기에 국적 표시용으로 욱일기 문양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육군과 해군은 이 깃발을 앞세워 침략 전쟁을 수행했다. 깃발은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일본 제국군이 해체되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일본이 1951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주권을 회복하고 1954년 7월 1일 자위대를 창설하면서 육상자위대는 이를 자위대기로, 해상자위대는 자위함기로 채택해 사용해왔다. 올림픽·패럴림픽 행사장에서 군기를 흔들며 응원하는 것은 올림픽 정신에 어긋난다. 더구나 이웃 나라들에서 침략과 살육의 상징으로 여기는 깃발이라면 더더욱 부적절하다.

도쿄 올림픽 패럴림픽 개최 1년을 앞둔 지난 7월 23일 도쿄 시내에 설치된 올림픽 앰블렘 앞을 한 남자가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도쿄 올림픽 패럴림픽 개최 1년을 앞둔 지난 7월 23일 도쿄 시내에 설치된 올림픽 앰블렘 앞을 한 남자가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도쿄 올림픽, 평화·화합의 축제 되게 해야  

2020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주도하는 ‘일본 제일주의’의 선전장이자 ‘정상국가(전쟁할 수 있는 나라)’ 선포 행사장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올림픽 정신에 충실한 평화와 화합의 제전이 되도록 국제사회가 독려해야 한다. 올림픽은 어디까지나 국가와 민족, 이념을 넘어선 전 인류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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