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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내가 좋아하는 팀 AI가 편파중계…판교식 야구 감상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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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편파중계, 팬질 무한 허용하는 AI야구앱 

엔씨소프트 AI기반 야구앱 페이지는 이용자가 선호하는 팀에 따라 시작화면이 달라진다. 왼쪽부터 SK 와이번스, 두산 베어스, 키움 히어로즈, LG 트윈스 팬의 시작화면. [사진 페이지 캡처]

엔씨소프트 AI기반 야구앱 페이지는 이용자가 선호하는 팀에 따라 시작화면이 달라진다. 왼쪽부터 SK 와이번스, 두산 베어스, 키움 히어로즈, LG 트윈스 팬의 시작화면. [사진 페이지 캡처]

프로야구팀의 단장이 다른 팀으로 간 주축 타자의 대체 선수를 공개한다. 그러자 백발이 성성한 스카우트들이 고개를 젓는다. “걘 팔꿈치 상처를 입었어”, “커브에 약해”,“나이가 너무 많아” …. 단장은 감에 의존한 스카우트 의견 대신 데이터 전문가의 세이버매트릭스(수학·통계학적으로 야구 기록을 분석하는 방식)분석에 따라 선수 영입을 밀어부친다. 그해 팀은 20연승을 기록하며 1위에 올랐다. 브래드 피트 주연 야구 영화 ‘머니볼’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영화에서 나온 메이저리그(MLB) 구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2000년대 초반 성공사례는 세이버매트릭스를 보편적 야구감상법 중 하나로 확산시켰다. MLB구단 뿐만 아니라 팬들도 각종 기록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야구를 즐기게 됐단 얘기다.
MLB발(發) ‘세이버매트릭스 혁명’ 이후 십수 년이 지난 현재 판교테크노밸리에선 야구를 즐기는 또 다른 차원의 혁신적 변화가 진행 중이다.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야구관람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어서다. 지금까진 방송사가 제공하는 천편일률적 중계화면과 경기기록, 하이라이트 영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했지만, AI를 활용하면 원하는 팀과 선수, 보고 싶은 장면만 모아서 볼 수 있다. 이른바 ‘편파감상’으로 불리는 적극적 콘텐트 소비가 자유자재로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중앙일보는 엔씨소프트의 AI 기반 야구앱 ‘페이지’와 네이버 스포츠의 ‘AI 득점하이라이트’ 개발자를 만나 AI가 몰고 올 야구관람 방식의 변화에 대해 들었다. 두 회사는 지난 7월 초 방한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최고투자책임자(GIO)를 따로 만나 AI 관련 의견을 교환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AI가 경기장면 이해해 편집

3시간 9분.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집계한 올해 평균 경기 시간이다. 바쁜 직장인이 전 경기를 다 보기 쉽지 않을 정도로 길다. 하이라이트 영상이 있지만 응원하는 선수의 타석 장면은 빠져있기 일쑤다. 엔씨소프트의 페이지는 이 같은 야구팬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AI에게 40만장가량의 프로야구 중계 이미지를 주고 딥러닝 방식으로 야구화면을 이해하도록 가르쳤다. 모든 타석 중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가 치거나 아웃당하는 ‘결정적 장면’만을 골라내도록 학습시킨 것이다. 이를 통해 페이지 AI는 경기가 끝나면 5분 안에 3시간짜리 경기를 15분으로 편집한 요약 영상을 앱에 올린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선정해 놓으면 해당 팀의 요약 영상을 매 경기 볼 수 있다.
장정선 엔씨소프트 NLP 센터장은 “AI의 학습량이 늘어나면 앞으로는 ‘올해 엔씨다이노스의 수퍼캐치(호수비)를 보여줘’ ‘양의지 홈런 장면을 모아줘’ 같은 요청도 AI가 해결할 수 있다”며 “모두가 똑같은 장면을 보는 게 아니라 이용자 입장에서 더 즐거운 장면을 자기 주도적으로 손쉽게 선별해서 즐길 수 있는 ‘편파중계’가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 스포츠 AI 득점하이라이트. [사진 네이버 스포츠]

네이버 스포츠 AI 득점하이라이트. [사진 네이버 스포츠]

네이버 스포츠의 ‘AI 득점 하이라이트’도 AI가 득점 상황을 편집해 보여주는 서비스다. 생중계되는 영상 속 움직임과 영상 내 문자를 인식하는 기술을 조합했다. 득점이 시작되는 투구와 득점이 이뤄지는 장면까지를 찾아서 편집해준다. 네이버는 지난해 한국시리즈 생중계 도중 홈런 장면을 반복해서 볼 수 있게 해주는 ‘AI 홈런 장면 되돌려 보기’ 서비스를 출시한 바 있다. 성하경 네이버 스포츠 개발담당자는 “이번 포스트 시즌에는 생중계 중 홈런을 포함한 모든 득점 장면을 되돌려 볼 수 있게 해주는 기능도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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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머치토커’ 박찬호 AI와 실시간 채팅

투머치토커 이미지를 활용해 방송광고에 출연한 박찬호. [중앙포토]

투머치토커 이미지를 활용해 방송광고에 출연한 박찬호. [중앙포토]

 AI의 역할은 영상편집에 국한되지 않는다. 언어 AI 기술은 야구팬들의 각종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창구가 된다. 페이지 채팅창에 “오늘 경기 누가 제일 잘했어”란 질문을 올리면 AI가 기록과 함께 해당 선수를 알려주는 방식이다. 특히 응원하는 팀이 졌을 경우 AI가 판단해 반응에 감정을 섞는다. 지난 경기 결과에 대해 이겼을 경우 “와! 우리팀이 이겼어요” 등 긍정적 반응과 함께 기록을 알려주고 졌으면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페이지는 최근 ‘투머치토커’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46)의 성격과 말투를 빌린 ‘찬호박’ AI 챗봇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존 인물의 말투와 화법을 차용해 AI가 얘기하면 더 친근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기대해서다. 예컨대 “찬호박, 메이저리그 경험 얘기해줘”라 물으면 특유의 장황한 말투로 메이저리그 생활에 대한 경험과 굳이 필요 없는 정보까지 잔뜩 설명해 주는 식이다. 양푸름 엔씨소프트 AI서비스실 기획팀장은 “이기면 좋고 지면 기분 나쁜 이용자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게 해당 정보에 대한 감정을 AI가 판단하고 그걸 반영해 전달한다”며 "유명인의 말투를 따라 하게 하는 서비스는 향후 다른 특징 있는 이들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엔씨소프트가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야구앱 페이지에서 박찬호 선수AI와 대화하는 내용. 이용자가 질문하면 AI가 최근 '투머치토커'라는 별칭으로 광고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박찬호 선수 특유의 대화법을 적용해 답변을 한다. [사진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가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야구앱 페이지에서 박찬호 선수AI와 대화하는 내용. 이용자가 질문하면 AI가 최근 '투머치토커'라는 별칭으로 광고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박찬호 선수 특유의 대화법을 적용해 답변을 한다. [사진 엔씨소프트]

정보를 취향에 맞게 가공

 뉴스 기사, 각종 중계 영상, 문자 데이터 등 수많은 정보를 이용자가 즐길만한 정보로 재가공하는 작업도 AI가 한다. 예컨대 경기 시작 전 오늘 경기 활약이 기대되는 선수를 데이터에 기반해 누가 될지 알려준다. 최근 저녁 경기에서 장타율이 높은 선수, 해당 요일에 출루율이 높은 타자, 기온이 낮아지면 제구력이 좋아지는 투수 등을 AI가 분석해 꼽아준다. 뉴스 기사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선수가 언급된 기사를 추려주고 구어체로 바꿔 보다 편하게 읽을 수 있게 해준다.
문자중계에도 변화가 올 전망이다. 응원하는 팀에 따라 이모티콘을 활용해 감정을 넣는 서비스, 경기를 해설해주는 AI 아나운서의 야구중계 목소리를 팀에 따라 톤을 바꿔주는 서비스도 선보일 계획이다. 장정선 센터장은 “기존 AI 서비스가 사용자와 상호교류하는데 초점을 뒀다면 우리는 사용자가 필요한 콘텐트를 제공하는데 AI기술을 집중하고 있다”며 “야구는 종목 특성상 언어·비전·지식 ·음성 등 AI의 대표적인 기술 분야를 적용하기에 좋은 분야”라고 설명했다.
판교=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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