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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과 늙음에 대한 통념을 깨자, 그리고 서로 응원하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21)

회사에서 하반기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알다시피 임금피크제란 정년보장 또는 정년 연장을 하겠다는 조건 아래, 근로자가 일정 연령에 도달한 시점부터(보통은 55세를 기점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년보장 또는 정년연장과 임금 삭감을 교환하는 시스템이다. 바뀐 인사정책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그 나이까지 회사에 다니겠어?’, 혹은 ‘다닐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말이다. 사실 임원이 되지 않는 이상 55세까지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을 찾기란 요즘 분위기에서 쉽지 않다.

회사에서 일정 연령(보통 55세 기점)에 도달한 시점부터 임금을 삭금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직원들은 '그 나이까지 회사에 다니겠냐'며 심드렁했다. [사진 flickr]

회사에서 일정 연령(보통 55세 기점)에 도달한 시점부터 임금을 삭금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직원들은 '그 나이까지 회사에 다니겠냐'며 심드렁했다. [사진 flickr]

얼마 전 신문사에 다니는 친구와 임금피크제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일반 기업과 비교해 신문사에는 나이가 많은 기자(직원)가 많은 편이라 직원들이 임금피크제에 대해 느끼는 정도가 달라 보였다.

“난 임금피크제 찬성이야. 연륜 있는 선배 기자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현장에 직접 나가는 일은 적잖아. 그러니 더 많은 젊은 기자들이 현장에서 활기차게 취재하게 하려면 선배들이 좀 뒤로 물러서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거든. 시니어들은 월급을 좀 적게 받고, 대신 잘하는 일 위주로 집중하게 하고. 그게 윈윈 아닐까. 솔직히 나만 해도 2, 30대보다 취재할 때 순발력이나 에너지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니까.” 그녀의 이야기처럼 임금피크제로 주니어와 시니어가 보기 좋게 협업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나 역시 찬성이다.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양측이 서로를 인정해주고 같은 방향으로 조율하며 나갈 수 있는 환경, 그걸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세대 간의 입장 차이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간극 중 하나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은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라고 말하는데, 이미 우리나라는 2000년에 7.2%로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2017년에는 14.2%로 고령사회에 이르렀다.

얼마 전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45년에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고령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가 될 것이며, 2067년에는 고령 인구가 무려 46.2%까지 증가할 것이라 예측된다. 생산가능인구가 부양인구보다 줄어들고 있다는 상황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당연히 노동 가능 연령을 높이는 방안이 마련될 수밖에 없다. 노동 연령의 연장과 관련이 있는 임금피크제는 그래서 필요한 제도이다. 이런 제도적인 보완과 함께 세대 간의 이해와 그들의 특장점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도 중요한 과제이다.

존 바이런 Jon Byron, 틈을 조심하세요 Mind the Gap, 2011 Video, 16mm, color, sound, 16:9, 4 min 14 sec, Courtesy of the artist. [사진 코리아나미술관]

존 바이런 Jon Byron, 틈을 조심하세요 Mind the Gap, 2011 Video, 16mm, color, sound, 16:9, 4 min 14 sec, Courtesy of the artist. [사진 코리아나미술관]

이런 주제가 담긴 흥미로운 작품이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지난 29일 개막한 ‘아무튼, 젊음’(~11월 9일)에 전시된 존 바이런(Jon Byron)의 ‘틈을 조심하세요(Mind the Gap)’이다. 작가는 젊은이와 노인이 어떻게 서로를 판단하고 차별하는지, 세대 갈등이 얼마나 작은 오해에서 비롯될 수 있는지를 4분여의 영상으로 표현한다.

영상은 “각 세대는 스스로를 앞선 세대보다 똑똑하고, 다음 세대보다 지혜롭다고 생각한다”는 조지 오웰의 말을 언급하며 시작된다. 이후 같은 장소에서 조깅을 하고 있는 젊은이와 노인이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속마음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조깅을 마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가갈까 시도해보지만 젊은이의 이어폰과 노인의 보청기로 소통은 무산된다. 결국 두 사람은 ‘저 나이 때 사람들은 다 그렇지 뭐’라고 되새기며 각자의 길을 간다. 젊음과 나이듦에 관한 고정된 이미지 속에 발생하는 세대 간의 간극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셀린 바움가르트너 Seline Baumgartner, 아무것도 Nothing Else, 2014, 2 channel video, color, sound, 16:9, 12 min. [사진 코리아나미술관]

셀린 바움가르트너 Seline Baumgartner, 아무것도 Nothing Else, 2014, 2 channel video, color, sound, 16:9, 12 min. [사진 코리아나미술관]

이 전시는 ‘젊음, 나이, 세대는 모두 상대적일 뿐, 고정된 것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국내외 작가 13인(팀)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나이듦에 관한 고정관념이 어떤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이제 65세가 된 사진작가 신디 셔먼(Cyndy Sherman)이 2017년부터 개인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는 셀피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는데, 그녀는 최근 몇 년간 자신을 찍은 사진인 '셀피'를 왜곡해 젊음과 늙음 사이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하고 있다.

Ari Seth Cohen의 'Old is the New Black' 티셔츠 입은 여성 사진. [촬영 김현주]

Ari Seth Cohen의 'Old is the New Black' 티셔츠 입은 여성 사진. [촬영 김현주]

아리 세스 코헨 Ari Seth Cohen, 어드밴스드 스타일 Advanced Style, 2012-, Photograph displayed on monitor,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of the artist. [사진 코리아나미술관]

아리 세스 코헨 Ari Seth Cohen, 어드밴스드 스타일 Advanced Style, 2012-, Photograph displayed on monitor,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of the artist. [사진 코리아나미술관]

셀린 바움가르트너(Seline Baumgartner)는 50∼70세 무용수의 여유로운 움직임을 촬영했는데, 민첩함과 유연성을 넘어선 나이든 몸으로 추는 대안적 동작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영상으로 전달한다. 사진작가 아리세스 코헨(Ari Seth Cohen)의 작품들을 만나게 된 것도 반가웠다.

그는 2008년부터 뉴욕의 나이 든 패션 피플들을 찍기 시작했는데, 그의 사진은 뉴욕타임즈, 뉴요커, 보그 등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시니어 스타일의 결정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대담한 패션으로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노인의 이미지를 전복하고 또 다른 영감을 전달하고 있다.

신디 셔먼 Cindy Sherman, Posted on Aug. 4, 2017 ⓒ Cindy Sherman,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사진 코리아나미술관]

신디 셔먼 Cindy Sherman, Posted on Aug. 4, 2017 ⓒ Cindy Sherman,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사진 코리아나미술관]

그의 작품 중 한장의 사진은 특별히 유쾌했다. ‘Old is the New Black’이라는 사진 속 노인이 입은 티셔츠의 문구 때문이었다. 인생의 수많은 경험을 거친 연륜이 몸으로 마음으로 드러나는 노인 세대야말로 얼마든지 쿨한 존재일 수 있다는 메시지가 그대로 전달됐다.

‘나이는 수행적이며, 젊음은 상대적이다. 이제는 자신의 연령대에 적용되는 정형화된 규범을 물리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전복하는 사람에게 젊다고 한다’는 전시 설명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젊음과 늙음에 대한 통념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움직이며, 그것에 대해 서로 응원해줄 수 있어야 고령 사회를 무리 없이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나이든 내 모습과 내 자리와 내 속도를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러브에이징(Love-Aging)’이 필요한 시대다.

김현주 우먼센스 편집국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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