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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아버지’가 말하는 실패 기업의 공통점 “앞에선 두려워 말라면서, 실제론 처벌하더라”

중앙일보

입력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에서 만난 사무엘 웨스트가 노키아의 실패한 '게임용 휴대전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 전화는 불편한 게임방식과 우스꽝스럽게 전화를 받아야 하는 디자인때문에 크게 실패했다. 박해리 기자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에서 만난 사무엘 웨스트가 노키아의 실패한 '게임용 휴대전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 전화는 불편한 게임방식과 우스꽝스럽게 전화를 받아야 하는 디자인때문에 크게 실패했다. 박해리 기자

세계적인 가구 업체인 이케아는 1980년 ‘에어소파’를 출시했습니다. 값 싸고 무게가 가벼워 한 손으로 들고 소파 아래를 쉽게 청소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죠. 하지만 이 소파는 크게 실패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유럽 가정에선 천장에 대형 선풍기를 많이 설치하는 것을 간과한 탓이죠. 선풍기를 틀면 소파가 방안을 둥둥 떠다니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4일 오후 1시 서울 마포구에 있는 서울창업허브.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혁신 연구가인 사무엘 웨스트 박사는 “결국 이케아는 결국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실패박물관에 에어소파를 기증했다”고 소개했다. 웨스트 박사는 이날 서울의 창업자 100여 명 앞에서 ‘실패에서 혁신으로, 실패 박물관의 교육’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웨덴 헬싱보리, 중국 상하이 등에 실패박물관 개관을 기획한 인물로 ‘실패의 아버지’로 불린다.

‘실패박물관’ 기획자 사무엘 웨스트 박사 #4~6일 ‘스타트업 서울 2019’에서 특별 강연 #인스타보다 먼저 사진공유 앱 개발했던 코닥 #한손으로 드는 ‘에어소파’ 내놓았던 이케아 #시장서 외면 받아. 일부 기업은 도산하기도 #“기술보다 중요한 건 소비자의 마음 읽기”

웨스트 박사는 “성공과 실패는 쌍둥이 같다. 혁신을 위해서는 실패라는 과정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어 “회사의 리더들은 실패를 두려워 말라고 대외적으로 말하고 다니지만, 내부에선 실패한 이들에게 벌을 주는 문화가 여전하다”며 “실패를 권장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좋은 혁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4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있는 서울창업허브에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혁신 연구가인 사무엘 웨스트 박사가 창업자들 앞에서 ‘실패에서 혁신으로, 실패 박물관의 교육’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박해리 기자

4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있는 서울창업허브에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혁신 연구가인 사무엘 웨스트 박사가 창업자들 앞에서 ‘실패에서 혁신으로, 실패 박물관의 교육’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박해리 기자

서울창업허브 1층에는 실패 박물관의 팝업 전시도 열렸다. 전시관에는 노키아의 게임용 휴대폰, BIC의 여성용 볼펜, 애플의 뉴튼 등 12가지 실패 아이템이 전시돼 있다. 웨스트 박사는 코닥의 카메라를 소개하면서 “코닥은 기술로는 뛰어났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지 않아 파산한 기업이다”고 말했다.

웨스트 박사에 따르면 코닥은 인스타그램 같은 애플리케이션(앱)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진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니즈를 파악하지 못한 채 사진을 프린트해 판매하는 것으로만 앱을 활용했다. 웨스트 박사는 “거대 기업인 코닥은 결국 파산했지만 바로 얼마 후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에 1조1200억원에 팔렸다”며 “아주 아이러니한 실패와 성공 사례다”고 말했다.

서울창업허브 1층에서는 실패박물관의 팝업 전시도 열렸다. 전시관에는 12가지 실패 아이템이 전시돼 있다. 사진은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있었던 중국의 무단횡단 감시카메라. 박해리 기자

서울창업허브 1층에서는 실패박물관의 팝업 전시도 열렸다. 전시관에는 12가지 실패 아이템이 전시돼 있다. 사진은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있었던 중국의 무단횡단 감시카메라. 박해리 기자

강연이 끝난 후 창업자들이 자신들의 창업 사례를 발표하는 ‘실패경진대회’가 열렸다. 현재 군복무 중인 류진용(22·경북대)씨는 해군복을 입고 자신이 실패한 대학생들간의 소일거리 거래 플랫폼 ‘유니런’을 소개했다. 류씨는 학생별로 수업 시간표가 다른 점에서 착안해 서로 간 자투리 시간과 자원을 공유하는 플랫폼을 개발했다.

예를 들어 아침부터 오후까지 수업 시간이 빡빡한 A학생은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한 잔 사올 여유가 없다. 반면 여유 시간이 많은 B 학생은 공강 시간을 활용해 약간의 용돈을 벌고 싶을 때 A와 B가 거래를 하는 것이다. 류씨는 경북대에서 베타테스트를 진행했다.

창업자들이 자신들의 창업 실패 사례를 발표하는 실패경진대회가 열렸다. 현재 군복무 중인 류진용(22·경북대)씨는 해군복을 입고 자신이 실패한 ‘대학생들간의 소일거리 거래 플랫폼’을 소개했다. 박해리 기자

창업자들이 자신들의 창업 실패 사례를 발표하는 실패경진대회가 열렸다. 현재 군복무 중인 류진용(22·경북대)씨는 해군복을 입고 자신이 실패한 ‘대학생들간의 소일거리 거래 플랫폼’을 소개했다. 박해리 기자

시작은 괜찮았지만 플랫폼은 결국 실패했다. 실패 이유에 대해 류씨는 “심부름 해주는 앱인 ‘브룽’처럼 색깔이 뚜렷한 다른 경쟁사와 구별되는 핵심가치가 부족한 탓”이라며 “사람들이 원한다고 실제 구매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는데 이 ‘원츠’와 ‘니즈’를 구분하지 못한 탓도 컸다”고 말했다. 류씨는 이날 실패경진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상금 150만원을 탔다. 약물 궁합을 알려주는 앱 ‘약궁’을 만든 김응석(31·한양대)씨가 2등을 차지했다.

서울시는 4~6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글로벌 스타트업 축제 ‘스타트업 서울 2019’를 개최한다. 전 세계 스타트업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판로와 투자, 기술제휴 등 성장의 기회를 찾고 비전을 공유하는 행사다.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조사기관 스타트업게놈의 대표 J F 고디어가 ‘글로벌 생태계 변화동향’을 주제로 발표하고, ‘아시아의 우버’로 불리는 그랩이 세운 투자사 그랩벤처스의 크리스 여 대표가 ‘선도적 창업기업’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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