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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엔 세차장 크기 액화수소충전소…수소열차도 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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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의 '수소경제'는 어디쯤 와 있을까. 중·장기 과제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중앙일보는 ‘한국형’ 수소경제의 바람직한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해 독일·미국·일본·중국 등 주요 국가의 수소경제 준비 상황을 해외 현장에서 취재했다. [편집자 주]

독일 린데그룹이 뮌헨 근교에 설치한 액화수소충전소. [뮌헨=김도년 기자]

독일 린데그룹이 뮌헨 근교에 설치한 액화수소충전소. [뮌헨=김도년 기자]

#지난달 6일 방문한 독일 뮌헨 근교 소재 액화수소충전소. 900bar(일반 공기 압력의 900배)의 고압가스로 저장했다가 충전에 쓰는 일반 수소충전소와 달리 이곳은 액체 형태로 수소를 저장한다. 부피가 큰 기체를 액체로 바꿔 저장하다 보니 좁은 공간에서도 충전소 설치가 가능하다. 이 충전소가 차지하는 공간도 가로·세로 5m로 세차장 공간 정도에 불과했다. 특히 액체수소 저장탱크 내부 압력은 일반 공기와 비슷한 2기압으로 폭발 위험을 크게 낮췄다고 평가된다. 독일 린데그룹은 이 같은 액화수소충전소를 독일 전역에 5곳 설치했다. 토마스 쉐퍼 린데그룹 매니저는 "주택가 바로 옆에 설치했는 데도 지역 주민 민원이 한번도 들어온 적이 없다"며 "공간이 부족한 서울·도쿄·홍콩 등지에선 액화수소충전소가 유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수소경제' 현장을 가다① #가스 대신 액화수소, 25m²면 가능 #영하 250도 저장, 영하 40도 주입 #수소차 차량공유 스타트업 등장 #버스·배송트럭 등으로 보급 확대

#같은 달 3일 독일 함부르크 인근 북스후데 기차역. 오후 1시37분에 출발하는 브레머뵈르데행 수소열차 '아이린트(iLint)'를 직접 탑승했다. 이 열차는 지난해 9월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물'을 의미하는 'H2O' 화학식이 열차 외관은 물론 좌석에도 그려져 있어 한눈에 수소열차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미끄러지듯 플랫폼을 빠져나간 열차 내부에선 디젤기관차가 움직일 때 들리는 소음이 들리지 않을만큼 조용했다. 독일 북부 쿡스하벤에 거주하는 얀 바그너씨는 "북스후데를 거쳐 함부르크로 이동할 때 종종 이 열차를 탄다"며 "쾌적하고 조용한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독일 함부르크 인근 북스후데 기차역에선 쿡스하벤까지 이동하는 수소열차 '아이린트'를 탑승할 수 있다. [함부르크=김도년 기자]

독일 함부르크 인근 북스후데 기차역에선 쿡스하벤까지 이동하는 수소열차 '아이린트'를 탑승할 수 있다. [함부르크=김도년 기자]

독일 수소열차 '아이린트' 외벽에는 물을 나타내는 화학식 'H2O'가 그려져 있어 한 눈에 수소열차 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함부르크=김도년 기자]

독일 수소열차 '아이린트' 외벽에는 물을 나타내는 화학식 'H2O'가 그려져 있어 한 눈에 수소열차 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함부르크=김도년 기자]

독일의 수소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에선 볼 수 없는 액화수소충전소가 상용화됐고, 지역 간 이동수단으로 수소열차가 디젤열차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또 독일 전역에 사용 가능한 수소충전소가 92개(9월2일 기준)로 늘면서 우체국 배송용 수소트럭과 수소버스 등 수소차량 보급이 늘고 있다.

충전소 늘면서 수소차 공유 스타트업도 설립 

충전소가 늘면서 수소차 이용도 확산하고 있다. 수소차를 활용해 친환경 차량공유 사업을 벌이는 스타트업도 있었다.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클레버셔틀(Clever Shuttle)'은 전체 공유 차량 500여대 중 4분의 1을 수소차로 운영한다. 이들 차량은 수소충전소 인프라가 갖춰진 함부르크와 베를린·뮌헨·프랑크푸르트·스튜트가르트 등 4개 도시에서 활용된다. 독일 정부는 이 회사가 활용하는 수소차에는 시중 가격보다 더 싼 값에 수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파비오 아들라스닉 클레버셔틀 선임 매니저는 "수소차가 일반 내연기관 차량보다 가격 자체는 비싸지만, 내연기관 자동차 운행에 필요한 엔진오일·냉각수 교환 등 각종 정비 비용을 생각하면 수소차도 경제적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차량공유 스타트업 '클레버셔틀(Clever Shuttle)'은 2014년 3명의 청년이 설립한 스타트업에서 5년 만에 1500여명의 운전기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함부르크 소재 주차장에 주차된 클레버셔틀의 수소연료전지차. 김도년 기자

독일의 차량공유 스타트업 '클레버셔틀(Clever Shuttle)'은 2014년 3명의 청년이 설립한 스타트업에서 5년 만에 1500여명의 운전기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함부르크 소재 주차장에 주차된 클레버셔틀의 수소연료전지차. 김도년 기자

충전 인프라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독일 린데그룹은 독보적인 액화수소충전소 제조 기술을 갖췄다. 액체로 만든 수소를 저장하려면 저장용기 내부를 영하 250도로 유지할 수 있는 저온 저장 기술이 필요하다. 극저온 상태의 액화수소를 순식간에 영하 40℃ 온도 가스로 만들어 차량에 주입할 수 있는 기술은 독일과 미국·프랑스·일본 등 4개국 정도만 보유하고 있다.

정부 간, 민관 간 협업 모델 구축한 독일. 국민 지지 이끌어 

독일에서 수소 산업 생태계가 빠르게 진화하는 비결은 크게 3가지다. 첫째, 독일 교통부·경제부·환경부 등 관계 부처가 칸막이를 터 국립수소연료전지기구(NOW·National Organisation Hydrogen and Fuel cell Technology) 와 같은 '컨트롤타워' 조직을 만든 것이다. 한국의 수소경제 정책은 산업통상자원부(기술 개발)·국토교통부(충전소 보급)·환경부(보조금 지원) 등이 나눠 담당한다. 개별 부처 업무에만 집중하다 보니 협업이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다. 독일은 이를 한데 모아 자연스럽게 협력도록 했다.

둘째, 독일은 민간 참여를 늘리기 위해 민관 합동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수소차가 부족한 상황에서 충전소 보급 사업은 진입 초기 대규모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일 린데그룹은 물론 프랑스 수소기업 에어리퀴드, 벤츠·현대차 등 완성차 기업들도 독일이 세운 특수목적법인 'H2모빌리티'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민과 관이 합동으로 비용을 내 인프라를 구축한 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인프라를 민간 기업에 이양해 민간 참여를 늘린다.

독일인이 생각하는 미래 차, 여론조사 결과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독일인이 생각하는 미래 차, 여론조사 결과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셋째, 수소 산업에 대한 국민적 지지다. 독일 자동차 전문지 'Best Cars'가 올해 1월 여론조사 결과, 미래 차의 대세는 수소차가 50%의 응답률로 1위를 기록했다. 당장은 폴크스바겐·BMW 등 독일 완성차 업체들이 수소차보다는 전기차 생산에 집중하면서, 전기차가 더 빨리 보급되고 있지만, 수소 충전소가 늘게 되면 수소트럭과 버스 등 대형 차량을 중심으로 수소차가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일본과 함께 수소 충전소 보급이 가장 빠른 나라이지만, 여전히 충전소가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루치아 자이슬러 NOW 프로그램 매니저는 "다른 나라에 비해선 빠르지만, 아직도 충전소 인프라가 충분하다고 보긴 어렵다"며 "운송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과 시장 활성화를 정부가 지원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베를린·함부르크·뮌헨(독일)=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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