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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만화도 현실도, 강백호의 왼손은 거들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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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강백호. [연합뉴스]

강백호.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KT와 두산의 수원 경기. KT가 7-6으로 쫓긴 8회 말, 강백호(20)가 1사 만루에서 두산 오른손 투수 강동연의 패스트볼을 받아쳤다. 까다로운 몸쪽 높은 코스였지만, 그는 검객처럼 베어냈다. 강한 허리 회전을 이용한 레벨 스윙(지면과 거의 평행한 궤적)에 걸린 타구는 우중간 담장을 넘어갔다. 그 순간, 승부는 끝났다.

KBO리그 흔드는 ‘영파워’ 비밀 #왼손 힘빼고 하체활용 폭발적 스윙 #떨어지는 변화구 완벽 적응 덕 #‘투고타저’에도 타율 오히려 올라

지난해 KBO리그에 데뷔한 강백호는 두 시즌 동안 만루 때 단 하나의 장타도 때리지 못했다. 만루 시 타율이 0.227(22타수 5안타)이었다. 데뷔 후 첫 만루포. 그는 또 하나의 약점을 극복해냈다. 이날 7타점을 몰아친 강백호 덕분에 KT는 올 시즌 처음 5할 승률(2일 현재 승률 0.496, 6위)을 달성했다. 스타에 목마른 KBO리그에서 강백호는 이름(白虎)처럼 귀하고 영험한 존재다. 30대 베테랑 국내 선수들과 메이저리그(MLB) 출신 외국인 선수들이 양분하는 개인 타이틀 경쟁에서 타율 3위(0.339)다.

강백호의 매력은 정확성이 아닌 장타력이다. 지난해 강백호는 고졸 신인 최초로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쳤다. 138경기에서 타율 0.290, 홈런 29개(12위), 타점 94개(22위)로, 신인왕을 차지했다. 지난해 홈런은 고졸 신인 최다 기록이다.

지난해는 규정 타석을 채운 3할 타자가 34명이나 나왔을 만큼 전례 없는 타고투저(打高投低) 시즌이었다. 올해는 공인구 반발력을 낮추면서 타자 기록이 떨어졌다. 투고타저(投高打低) 현상이 두드러진 가운데 강백호 타율은 오히려 지난해보다도 0.049 올랐다. 타격 1위 양의지(NC·0.364)에 뒤지지만, 만에 하나 추월한다면 KBO리그 역대 최연소(20세 2개월) 타격왕이 된다.

지난해 강백호는 체인지업·포크볼 등 떨어지는 변화구에 약했다. 고교를 막 졸업한 그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공이었다. 그는 불과 1년 만에 약점을 극복했다. 이종열 SBS 해설위원은 “시속 145㎞ 공을 공략할 수 있으면 KBO리그에서 충분히 통한다. 강백호는 신인 때부터 시속 150㎞ 공도 때려냈다”며 “올해 변화구 대처 능력이 향상되면서 정말 무서운 타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강백호 스윙의 핵심은 폭발력이다. 왼손 타자인 그는 이동 발(오른발)을 크게 내디디며 파워를 응축한다. 둘레 29인치(약 74㎝)의 허벅지가 단단하게 기둥 역할을 한다. 그리고 코어 존(복근·엉덩이 등의 큰 근육)에서 나오는 회전력으로 방망이를 힘차게 돌린다. 강백호의 스윙이 빠르고 날카로운 건 이런 메커니즘 덕분이다.

배트를 휘두르는 강백호의 두 팔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오른손은 스윙 궤적을 만들고, 왼손은 방망이를 자연스럽게 따라가기만 한다. 이종열 위원은 “손을 많이 쓰면 정확히 때린 것 같은 타구도 잘 뻗지 않는다. 강백호의 스윙은 하체와 코어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백호와 동명이인 주인공이 나오는 일본 농구만화 『슬램덩크』에는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명대사가 나온다. 오른손잡이 슈터가 좋은 슛을 쏘려면 오른손 감각이 중요하다. 왼손은 농구공을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좌타자 강백호의 스윙에서도 ‘왼손은 거들 뿐’이다.

강백호는  6월 25일 부산 롯데전에서 오른쪽 손바닥을 다쳐 6주간 결장했다. 이 때문에 올해 홈런은 12개(23위)다. 그럼에도 KBO리그에서 손꼽는 무서운 타자다. 타격 자세가 조금 흔들리거나 타이밍이 조금 안 맞아도 홈런을 때릴 수 있다. 이런 ‘괴물’은 현재 KBO리그에 박병호(33·키움)와 강백호뿐이다.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승률 등 투수 4개 부문 1위 조쉬 린드블럼(32·두산)이 “가장 까다롭다”고 꼽은 타자가 강백호다. 이승엽 SBS 해설위원은 “올해나 내년쯤 타이틀을 하나 따낸다면 한 단계 더 올라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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