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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파서블? 서울서 8000만원으로 투룸 전셋집을 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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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빵떡씨의 엄마는 모르는 스무살 자취생활(1) 

올해 초부터 서울에 전세를 얻어 살기 시작했다. 동거인은 쌍둥이 동생으로 둘 다 94년생 사회 초년생이다. 동갑내기 90년대 생들이 집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겪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부모로부터의 독립, 연인과의 동거, 결혼문제 등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편집자>

올해 초, 동생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왔다. [사진 빵떡씨]

올해 초, 동생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왔다. [사진 빵떡씨]

올해 초, 동생과 나는 서울로 이사를 왔다. 그전까지 나는 4호선 끝자락 오이도역에서 종로까지 왕복 약 3시간 거리를 통근했다. 코레일에서 개근상이라도 받아야 할 것 같은 기분. 나는 해 뜨기 전에 나가 해 지고 나서 돌아오는 생활에 하루하루 시들시들 말라갔지만, 부모님은 자취를 시켜줄 생각이 요만큼도 없으셨다.

돈도 돈이지만 혼자 사는 여자와 관련된 험한 뉴스를 너무 많이 본 탓이 컸다. 그렇게 1년간의 고된 생활을 하던 중, 쌍둥이 남동생이 기적적으로 서울에 취직하게 되었다. 이로써 부모님은 나를  잡아 둘 명분을 잃었다.

동생과 나는 바로 전셋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각자의 회사가 있는 종로와 상암 사이 그 어딘가에 집을 얻어야 했다. 서로 자기 회사 가까이에 살려고 싸우다 형제와 양심을 다 잃을 뻔했다. 내가 전세를 구한다니 홍대 다니는 친구가 ‘싼 전셋집을 찾다가 김포공항까지 갔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때 진짜 유쾌한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집을 구하러 다녀 보니 그 말은 전혀 농담이 아니었다.

동생과 나의 미션은 '깔끔하고 버스정류장 가까운 8천에 투룸 전셋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요구사항을 들은 부동산 아저씨는 "쓰흐으읍…흐아아…"하며 그 일대 미세먼지를 이산화탄소로 치환하길 반복하셨다. 미간이 플룸라이드를 타기 좋게 파였을 때 부동산 아저씨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셨다.

부동산 아저씨는 우리를 한 옥탑방으로 데려가셨다. 가는 내내 “여기가 천장이 쬐끔 낮은데, 많이는 아니고 쬐애끔...”하며 밑밥을 까시는 게 어딘가 수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에 나오는 다락방처럼 천장이 낮은 집이었다. ‘모모’는 요괴보다 목디스크를 조심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8천의 예산으론 마땅한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예산을 1억으로 상향 조정했다. [사진 빵떡씨]

8천의 예산으론 마땅한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예산을 1억으로 상향 조정했다. [사진 빵떡씨]

8000만원으론 도저히 둘이 살만한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예산을 상향 조정했다. 부동산 아저씨는 1억짜리 집이 있다며 우리를 데려가셨다. 돈의 자릿수가 바뀌니 이제 좀 사람이 살 만한 구색이 나왔다. 평수도 나쁘지 않고 채광이랑 수압도 괜찮았다.

그런데 화장실이 보이질 않았다. 나와 동생이 두리번거리자 아저씨는 서프라이즈 고백을 준비한 남자친구처럼 짜잔~ 하며 계단 밑 문을 열어젖히셨다. 변기가 계단 밑에 박혀있는 XS 사이즈 화장실이었다. 허리를 펴고 똥을 쌀 수가 없어 보였다. ‘저 화장실에서 똥을 싼다면 장까지 살아가는 유산균을 아무리 먹어도 구부러진 장에서 길을 잃고 다 죽을 것이다…’라는 생각에 얼른 집을 빠져나왔다.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이 처음 자취방을 구할 때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부동산 아저씨만 쫄래쫄래 따라다니다가 나중에 ‘그 집이 채광이 좋았나…’ ‘거기가 반전세도 된다고 했나…’ 하며 어버버 다 까먹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집을 보러 다닐 땐 표를 만들어서 체크하는 게 좋다. 집의 수압은 어떤지, 곰팡이 핀 곳은 없는지, 도배는 따로 해야 하는지, 천장과 바닥이 너무 친밀하진 않은지, 화장실은 제대로 된 구석에 박혀 있는지 등등을 표로 정리해야 나중에 의사결정을 하기 수월하다. 물론 위에서 본 두 집은 정리할 필요도 없이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나와 동생은 보증금 6천에 월세 15짜리 반전세 투룸을 보여주신다는 부동산 아주머니를 따라 나섰다. [사진 빵떡씨]

나와 동생은 보증금 6천에 월세 15짜리 반전세 투룸을 보여주신다는 부동산 아주머니를 따라 나섰다. [사진 빵떡씨]

나와 동생은 다른 부동산으로 향했다. 두 번째 부동산의 아주머니는 당장 보증금 6천에 월세 15짜리 반전세 투룸을 보여주겠다고 하셨다. 동생과 나는 '오 서울에 그렇게 싼 곳이?'라는 기대보다 '얼마나 열악한 곳일까'하는 궁금증에 따라나섰다. 아주머니는 부동산에서 세 발짝 걷더니 바로 옆 창고 문을 열어주셨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생각했다.

'맙소사 창고가 아니라 집이었어…'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포터’가 살던 ‘두들리’네 벽장 같은 집이었다. 좁고, 해가 들지 않고, 퀴퀴했다. 인간이 여기서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마법이다… 누군가 여기서 살았고, 앞으로도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아득했다. 문을 여니 해리포터 대신 방이 바로 튀어나왔다. 현관문에서 길까지 나오는 시간이 0.1초라 출근 시간이 절약되는 슬픈 장점이 있었다.

이런 하자 많은 집에 가면 부동산 아주머니들이 둘러대시는 멘트가 대단히 기발하다.

"이 계단 올라가다 다치는 거 아니에요?"
"어머 술 안 먹으면 되지~"

"방이 너무 좁은데요…"
"책상 밑에 발 넣고 누우면 딱! 맞아"

"방에 기둥이 있어요…!"
"피해 다니면 되지!"

다행히 배에 구멍 뚫고 자라고 하진 않으시네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사진 민음사]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사진 민음사]

『안나 카레니나』라는 책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집 역시 그랬다. 살기 좋은 집은 채광이 좋고 넓고 깔끔해 모두 비슷하게 좋지만, 살기 나쁜 집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살기가 나쁘다.

어떤 집은 너무 좁고, 어떤 집은 너무 습하고, 어떤 집은 교통편이 너무 안 좋다. 아주 기상천외한 이유로 살기 나쁜 집도 있다. 어째서 이런 집들이 애초에 주거 공간으로 허가가 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나와 동생은 스무 군데 정도 돌아다닌 후에야 집을 정할 수 있었다. 지하철역은 멀지만, 버스가 자주 다니고, 곰팡이는 피었지만, 전반적으로 깨끗한 투룸이었다. 이 정도의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선 8천도 아니고 1억도 아니고 1억3천이 필요했다. 엄마가 처음 전셋집 살 때 끼고 있던 반지까지 팔았다는 얘기는 아무래도 거짓이 아니었다.

나 역시 화장실 정도만 내 돈으로 사고 나머지는 은행이 사주는 거였다. 나는 ‘중소기업청년전세자금대출’을 받아서 전세 보증금을 냈다. 35살 미만, 연봉 3500만 원 이하의 중소기업 재직자에 한해 연금리 1.2%로 최대 1억까지 대출해 주는 정책이다. 금리가 워낙 낮아 주변에도 이 상품으로 대출을 받으려고 하는 분들이 많다.

경험자로서 두 가지만 조언을 하자면, 첫 번째, 집을 계약하기 전에 은행에 가서 먼저 상담을 받아야 한다. 내가 대출받을 조건이 되는지, 어떤 집이 대출 기준에 맞는지(모든 집이 다 되는 게 아니다) 등을 알고 집을 계약해야 한다.

나는 거꾸로 집부터 대뜸 계약하고 상담을 받으러 가서 하마터면 대출을 못 받을 뻔했다. 두 번째, 준비해야 할 서류가 상당히, 강조하지만 상당히 많다. 나는 이 서류를 제출하러 일주일 동안 매일 은행에 가야 했다. 나중엔 은행원들이 나를 기억하고 ‘맨날 대출받으러 오시는 그분’으로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잠시 고생하면 2년간 평안하니 이 정책을 활용하시길 추천한다.

동생과 나는 독립 첫날 전세 대출금을 다 갚을 때까지 절대 먼저 퇴사하지 않겠다는 형제의 서약을 맺었다. 아직은 둘 다 착실히 회사에 다니고 있다. 어쩐지 돈은 착실히 모이지 않지만, 원금 상환일까지는 많이 남았으므로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빵떡씨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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