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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기침체 우려…양적완화 대신 ‘화폐화’로 대응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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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호 12면

‘침체 2020.’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일부 전문가들이 베팅하듯 내놓은 경고였다. 최근 상황이 돌변했다. 설득력 있는 전망으로 굳어지고 있다. 계기는 ‘침체의 전령’ 탓이었다. 바로 미국 국채 10년물과 2년물 금리의 역전이다. 프랑스 유명 비즈니스스쿨 인시아드의 안토니오 파타스 교수(경제학)가 최근 중앙SUNDAY와 전화 인터뷰에서 "금리 역전이 침체의 신호인지는 이론적으로 확립되지는 않았다”며 "다만 역사적으로 빈도가 높기는 하다”고 했다.

미 국채 장·단기 금리 역전 신호탄 #11개월 뒤 내년 7~8월께 시작 전망 #‘금융위기 없는 침체’ 예측 바뀌어 #“몇몇 기업·나라 빚 못갚는다 할 것” #정치서 비롯 무역전쟁이 침체 불러 #초저금리시대 대응책 마땅치 않아

실제 2차대전 이후 금리역전 뒤엔 어김없이 침체가 엄습하기는 했다. 첫 역전이 발생한 지 평균 11개월 뒤에 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년 7월이나 8월께 침체가 시작될 수 있다. 파타스 교수는 “미국뿐 아니라 영국과 독일 등에서도 금리역전 이후에 경기가 침체에 빠지는 패턴이었다”고 설명했다. 반론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이미 ‘침체 2020이 어떤 종류일까’로 관심이 옮아가고 있다.

# 초저금리 침체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침체의 종류를 예측하는 게임에서 역사적으로 아주 예외적인 변수가 하나 있다. 바로 산업화한 나라의 주요 국채 금리가 -0.2~2.2%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는 2.25%다. 대침체(Great Recession)가 시작되기 두서너 달 전인 2007년 9월 기준금리는 5.25%였다.

미 웨이크포레스트대 존 우드 교수(경제학)는 최근 중앙SUNDAY와 통화에서 “2차대전이 끝난 이후 요즘처럼 금리가 낮은 적은 극히 드물었다”고 말했다. 사실 1950년대 미 연방기금 금리가 3% 남짓 상태에서 침체가 발생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요즘처럼 1%대에 머물지 않았다.

저금리를 이유로 이번 금리역전만은 침체를 예고하는 게 아니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주로 미 연방준비제도(Fed) 관계자 등 정책 담당자들이 제기했다. 그들은 “금리역전의 요인 가운데 하나 가 중앙은행 통화긴축이었다”며 “요즘에 주요 중앙은행 가운데 긴축하는 곳은 한 곳도 없다”고 했다. 이런데도 침체 2020이 발생한다면, 2차대전 이후 첫 번째 초저금리 시대 침체가 될 전망이다.

# 정치적 침체

초저금리에도 글로벌 경제를 침체에 빠뜨릴 수 있는 요인은 바로 무역전쟁이다. 지난해 6월 시작돼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9월 1일부터는 중국산 2500억 달러(약 302조원)에 대한 관세가 25%에서 30%로 인상된다. 3000억 달러에 대해서는 1차 예고된 관세 10%가 아니라 15%가 부과된다.

글로벌 경제정보회사인 IHS마킷의 라지브 비스워스 아태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앙SUNDAY에 보낸 e메일에서 “무역전쟁 탓에 한국과 대만 등 수출 의존형 경제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가 이미 타격을 받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율 인상이 무역을 더욱 위축시킬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무역전쟁이 기업에 얼마나 큰 상처를 냈는지는 순이익 증가율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500대 기업의 올 2분기 순이익 증가율이 평균 0.5%에 지나지 않았다. 올 3분기엔 순이익 증가율이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게 월가 투자은행 전망이다. 미 중소기업 순이익은 2분기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미 경제분석회사인 잭스인베스트먼트리서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패권 경쟁을 위한 무역전쟁이 계속된다면, 세계 경제는 미·중 국제정치가 낳은 무역전쟁이 세계 경제를 침체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교역 감소→순이익 감소→투자위축→침체라는 시나리오대로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시작된 침체 2020은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실물경제 불균형이나 금융버블이 아닌 정치변수가 낳은 침체일 수 있다.

# 금융위기 없는 침체?

『붕괴』란 책으로 유명한 애덤 투즈 미 컬럼비아대 교수(경제사)는 지난해 하반기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침체 2020은 금융위기 없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저금리 시대여서 개인이나 기업이 이자나 원금을 갚지 못해 금융이 부실화하는 일이 일어날 확률이 낮아서다.

그런데 무역전쟁이 판을 흔들어 놓았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 기업의 순이익을 줄였다. IHS의 비즈워스는 트럼프의 관세율 인상에 대해 “중국 위안화 가치가 앞으로 15% 정도 급락해야 중국 수출기업들이 받을 충격을 상쇄할 수 있다”며 “관세 인상과 추가 보호관세 때문에 중국 기업의 이익률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비즈워스의 전망을 뒷받침해줄 만한 데이터가 최근 발표됐다. 미 컨설팅회사인 맥킨지가 이자보상배율이 1.5배 미만인 기업이 나라별로 얼마나 되는지 공개했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로 나눈 값이다. 1미만은 돈 벌어 이자내기도 버겁다는 의미다.

맥킨지에 따르면 조사 대상 가운데 1.5배 미만인 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는 인도(43%)다. 다음으로 중국(37%), 인도네시아(32%) 순이다. 한국은 20%였다. 미국은 17%, 영국은 26%, 일본은 2%였다. 이자보상배율이 낮다고 금융부실이 급증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역전쟁으로 기업의 돈벌이가 시원찮아지면, 금융부실이 빠르게 증가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는 한다.

그런데 2014년 이후 중국과 인도 등의 기업들은 자국 통화가 아닌 달러화나 유로화 자금을 마구 빌려 썼다. ‘원조 닥터 둠’인 마크 파버 글룸둠붐 발행인은 최근 투자 레터에서 “무역전쟁이 더 심해지면 몇몇 기업과 나라들이 빚을 갚지 못한다고 선언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 대응수단은?

미 웨이크포레스트대 우드 교수는 “인플레이션 타겟팅은 달리 말하면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가 치솟거나 마이너스 상태가 되는 것을 용인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금리 요동을 통해 경기를 조절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금리 움직임이 없이 초저금리 상태가 이어지면 어떻게 될까.

2008년 위기를 예측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양적완화(QE) 등은 써버렸고 금리도 낮아 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루비니의 말엔 통상적인 정책수단이란 단서가 필요하다. 미 투자은행 JP모건 등은 최근 QE 대신 쓸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편법으로 중앙은행이 시장을 거치지 않고 국채를 사들이는 화폐화(Monetization) 방법 등이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펀드를 만들어 국채를 직접 사들이는 것이다.

기존의 QE는 중앙은행이 시장을 통해 국채 등을 사들이는 방법이다. 화폐화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어 1980년 이후 금기시된 통화정책이었다. 침체 2020이 발생하면, 현대 통화정책 금기의 하나가 또 깨질 전망이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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