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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부패’ 경고한 대법원 판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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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에 대한 항소심의 유죄 판단을 그대로 인정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이 기소된 후 2년4개월 간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 재판을 놓고 끊이지 않았던 법적인 논란이 사실상 일단락됐다고 볼 수 있다. 전직 대통령이 법의 단죄를 받은 이 사건이 한국 정치에 주는 의미를 되새김으로써 다시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본명 최서원)씨, 이재용 삼성 부회장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1·2심 재판부가 다른 혐의와 따로 선고해야 하는 뇌물 혐의를 분리 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중요한 것은 피고인별로 2심 재판부들이 엇갈리게 판결한 부분이 정리됐다는 사실이다. 삼성이 최씨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말 3필(34억원 상당)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원 관련 뇌물 혐의가 주요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경제공동체’로 보고 최씨가 받은 돈을 뇌물로 인정했다. 말 3필 제공에 대해 ‘실질적인 사용·처분 권한이 최씨에게 있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에 대해선 ‘공무원의 직무와 제3자의 이익 사이의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결론은 “대통령의 직무와 청탁 내용, 수수 경위 등으로 인해 사회 일반으로부터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되는지 등을 심리해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판결 중)는 기준에서 도출됐다. 뇌물 범죄를 사회 일반, 즉 시민들의 상식적인 눈으로 판가름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권력형 부패에 엄정한 잣대를 댄 이번 대법원 판결이 던지는 메시지는 비단 박근혜 정부에 머물지 않는다. 대통령과 그 주변의 실세에 권력이 집중되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직무의 공정성을 의심받는 그 어떠한 부패도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단죄인 동시에 현재 살아 있는 권력, 앞으로 출현할 권력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대통령과 측근들이 ‘제왕적 권력’에 중독돼 부패하는 일이 없도록 이제라도 정치 시스템 전반을 수술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