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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간 자녀 vs 신장 준 재혼녀…80억 유산 누구에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우의 그럴 法한 이야기(3)

장남인 내가 유언장 상속 명단에서 빠졌다면? 큰돈을 갚아야할 친구가 갑자기 쓰러졌다면? 가사전문법관으로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변호사가 우리가 현재 또는 가까운 미래에 마주할 법률문제의 해법을 사례 위주로 들려준다. <편집자>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부인과 성격차이로 2001년 이혼한 A씨. 2년 뒤 B씨와 재혼해 살다가 2018년 숙환으로 사망했다. 상속재산 분할로 A씨의 자녀들과 B씨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사진 pixabay]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부인과 성격차이로 2001년 이혼한 A씨. 2년 뒤 B씨와 재혼해 살다가 2018년 숙환으로 사망했다. 상속재산 분할로 A씨의 자녀들과 B씨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사진 pixabay]

A씨(1945년생, 남자)는 1970년 결혼하여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는데 2001년경 성격차이 등을 이유로 부인과 이혼하였다. 이혼 후 A씨는 홀로 지내다가 2003년경 12세 연하의 B씨와 재혼하였다. 이비인후과 개업의로 활동하던 A씨는 B씨와 사이에서는 자녀가 없었고 B씨와 함께 생활하다가 2018년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A씨는 젊어서부터 신장기능이 좋지 않았는데, 이혼할 무렵인 2002년부터는 신장이 거의 망가져 투석을 하게 되었고, 2008년 B씨로부터 한쪽 신장을 기증받는 신장이식수술을 받았다. 한편 A씨의 전 부인과 자녀들은 이혼 직후 뉴질랜드로 가서 한국에 거의 입국하지 않았고, A씨로부터 자녀들의 신장 기증 의사를 물어보는 전화를 받은 외에는 A씨와 거의 연락도 하지 않았다.

사망 당시 A씨의 상속인으로는 전혼 자녀 3명과 재혼 배우자 B씨가 있고, 상속재산으로는 서울시 서초구 소재 아파트(공유 지분 2분의 1)와 서울시 용산구 소재 토지와 건물(공유 지분 2분의 1), 부산시 해운대구 소재 토지 등 부동산 10건 시가 합계 70억 원, 은행 예금, 보험, 주식 등 합계 20억 원과 임대차보증금반환채무 합계 9억 원이 있었다.

상속재산 분할과 관련하여 A씨의 자녀들과 B씨 사이에 의견이 달라 결국 가정법원에서 재판을 하게 되었다. A씨의 자녀들은, B씨가 서초동 아파트와 용산 토지 건물의 각 2분의 1 지분을 증여받은 것을 비롯하여 A씨의 생전에 A씨로부터 받은 것이 많은 반면, 자신들은 어머니와 이혼 당시에 정한 양육비 외에 아버지인 A씨로부터 특별히 받은 돈도 없고 대학교 공부를 할 때는 물론 결혼할 때에도 도움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 자신들이 받아야 할 상속분보다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픈 A씨와 15년간 함께 살며 간병하였다는 B씨는 자식들도 못하는 신장이식까지 아낌없이 했으니 기여에 상응하는 만큼 재산을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진 pxhere]

아픈 A씨와 15년간 함께 살며 간병하였다는 B씨는 자식들도 못하는 신장이식까지 아낌없이 했으니 기여에 상응하는 만큼 재산을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진 pxhere]

이에 대해서 B씨는, A씨가 아프거나 나이가 들었을 때에도 A씨의 자녀들은 남의 일처럼 여기고 아픈 아버지를 모시지 않았던 반면, 자신은 아픈 A씨와 15년간 함께 살면서 간병하였고, 심지어 자식들도 못하는 신장이식까지 아낌없이 해 주었으므로, 그러한 기여에 상응하는 만큼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경우 어떻게 상속재산이 분배되어야 할까?

'상속'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것 같이, 피상속인(사망자)이 사망하면 그 재산이 상속인에게 당연히 승계되는 것을 말한다. 사망자의 총체적인 재산이 승계되는 것이어서, 부동산이나 예금과 같은 적극재산은 물론이고 은행채무나 임대차보증금반환채무와 같은 소극재산도 함께 이어받게 된다. 그래서 만일 사망자가 적극재산은 거의 없이 부채만 남기고 죽으면, 상속인들은 자신의 의지나 잘못 없이 빚만 떠안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상속인은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이라는 제도를 통해 보호받을 수 있다. 상속포기는 사망자의 재산을 일절 상속받지 않음으로써 상속인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고, 한정승인은 상속을 받기는 하되 사망자가 남겨준 적극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그 빚을 책임지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가족이 빚만 잔뜩 남기고 떠난 것도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재산을 많이 남겼다고 해서 반드시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필자가 가정법원에서 처리한 수많은 상속재산 관련 사건들을 보면, 나누어 가질 유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근심과 미움이 커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B씨와 A씨의 자녀들처럼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혈연관계가 있는 가족이나 친척 사이였는데, 갈등 양상만 보면 그들이 과연 피를 나눈 사람들이 맞나 의심할 정도였다. 상속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상속재산은 불로소득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속사건에서 보여지는 서로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는, 마치 자신이 오랫동안 피땀 흘려 일군 재산을 전혀 모르는 강도에게 빼앗긴 사람의 그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남아선호사상과 호주제도, 장자상속과 제사 주재(主宰) 문제, 부모의 편애 등이 원인이 되어, 딸들이 아들들, 특히 장남과 사이에 갈등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요즈음에는 양상이 더 복잡하다. 심지어 부모와 자식들을 포함한 상속인들이 세 패, 네 패로 나뉘어 끝이 보이지 않는 진흙탕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가족이 재산을 많이 남겼다고 해서 반드시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나누어 가질 유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근심과 미움이 커가는 경우를 더 많이 봤다. [사진 pixabay]

가족이 재산을 많이 남겼다고 해서 반드시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나누어 가질 유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근심과 미움이 커가는 경우를 더 많이 봤다. [사진 pixabay]

그러면 도대체 상속인은 어떤 순서로 되고, 상속분은 어떻게 정해지길래 이렇게 싸우는 것일까?

상속인이 되는 순서는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데, 자기 보다 앞선 순위의 상속인이 있으면 후순위의 상속인은 상속을 받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고, 같은 순위에 있는 상속인이 여러 명이면 함께 상속인이 된다(공동상속인). 사망한 사람의 자식 또는 손자손녀 등(직계비속)이 1순위의 상속인이 되고, 그러한 사람이 없을 때에는 사망한 사람의 부모 또는 조부모, 외조부모 등(직계존속)이 2순위의 상속인이 된다.

자식이나 부모 등이 없을 때에는 사망한 사람의 형제자매가 3순위 상속인이 되고, 그 마저도 없으면 삼촌, 고모, 이모, 외삼촌, 4촌형제 등이 4순위로 상속인이 된다. 사망한 사람의 배우자는 사망한 사람에게 자식이나 손자녀(1순위 상속인)가 있는 경우는 그들과 함께, 사망한 사람에게 자식이나 손자녀는 없고 부모 또는 조부모(2순위 상속인) 등이 있는 경우에는 그들과 동(同)순위로 상속인이 되는데, 이마저도 없으면 배우자 혼자 상속인이 된다(형제자매나 3촌, 4촌 등 3, 4순위 상속인은 배우자보다 무조건 후순위 상속인이 된다).

예를 들어 사망한 사람에게 딸과 아내, 부모가 있으면 2순위인 부모를 제외하고 1순위인 딸과 아내가 함께 상속인이 되고, 사망한 사람이 미혼으로 부모만 있는 경우에는 1순위 상속인이 없으므로 2순위인 부모가 함께 상속인이 되며, 사망한 사람에게 남편과 남동생이 있는 경우에는 배우자인 남편이 혼자 상속하게 된다.

상속인이 여러 명일 때, 사망한 사람이 유언으로 상속인들 사이에 유산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지를 정해 주지 않고 사망하였다면, 상속인들은 서로 협의해서 상속재산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 그런데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정법원에 상속재산을 분할해 달라고 청구할 수밖에 없다.

이 때 기준이 되는 원칙적인 분할 비율(법정상속분)은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균등한데, 다만 사망한 사람의 배우자의 법정상속분은 사망한 사람의 자식이나 부모의 상속분에 50%를 가산한 만큼이 된다. 예를 들어 사망한 사람에게 딸, 아들 각각 1명씩과 아내, 부모가 있으면 딸, 아들과 아내만 상속인이 되고 그 비율은 1:1:1.5가 되기 때문에 딸과 아들은 각각 상속재산의 2/7씩, 아내는 3/7을 상속받게 되고, 사망한 사람이 미혼으로 부모만 있는 경우에는 부모가 각각 상속재산의 1/2씩 상속받게 된다.

가정법원에서 상속재산분할 재판을 할 때 상속인들이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 것은 법에서 정해진 상속분 대로 분할하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공평하지 않다는 주장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상속인들이 피상속인의 생전에 받은 것이 많으니 자신보다 적게 받아야 한다는 것이고(특별수익 주장), 다른 하나는 다른 상속인들과 달리 자신은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였고 상속재산의 유지나 증가에 특별히 기여했으니 다른 상속인들보다 더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기여분 주장).

"너는 젊을 때 사업자금을 지원받은 것이 있지 않느냐" "결혼할 때 나는 받은 것이 없는데 너는 부모님이 아파트를 마련해 주지 않았느냐" "나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었는데 너는 대학등록금은 물론 유학자금까지 지원받지 않았느냐" 등이 특별수익에 관한 주장이다. "내가 아버지 곁에서 매일 밥과 반찬을 해서 나르고 용돈을 드릴 때, 너는 미국에 가서 살면서 20년 동안 아버지를 몇 번이나 찾아 왔느냐" "어머니가 암수술을 받고 입원했을 때 지극정성으로 간호하고 치료비를 부담한 사람이 나 외에 누가 있느냐"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서 아버지 집이 넘어갈 뻔 했을 때 내가 그 빚을 갚아 드리지 않았으면 지금 저 상속재산이 남아 있었겠느냐" 하는 것들이 기여분에 관한 주장들이다.

그 밖에도 상속재산분할 다툼에는, 상속재산 중의 일부는 사망한 사람의 명의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상속인들 중 어느 한 사람의 것이라는 주장(명의신탁)도 꽤 많다. 특별수익을 한 상속인의 상속분은 다른 상속인들보다 줄고, 기여분이 인정된 상속인의 상속분은 다른 상속인들보다 늘어나며, 명의신탁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그 재산은 분할 대상에서 제외된다.

A씨의 자녀들과 B씨의 다툼도 바로 이러한 '특별수익'과 '기여분'에 관한 것이다. B씨가 A씨 생전에 받은 부동산은 자신의 상속분을 미리 받은 것, 즉 특별수익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 기여분은 재판 실무에서 인정되는 경우가 드문데, 가족들이 서로 돌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어서 피상속인을 잘 모셨다는 정도만으로는 '특별한' 기여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B씨의 신장 제공과 같은 기여는 특별한 기여로 보기에 충분하다.

이 사건은 결국 조정(재판과정에서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합의하는 것으로,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다)으로 끝났는데, B씨가 특별히 수익한 부분과 기여한 부분을 동등하게 보기로 하여, 상속재산을 법정상속분대로, 즉 A씨의 자녀들 각각 2/9씩, B씨 3/9만큼 상속받기로 쌍방이 합의하였다(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판결로 결정할 때 특별수익과 기여분을 계산하는 방법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은 그 무엇보다 크다. 다소 부당해보여도 조금 손해보고 양보하면 온 가족이 평안해진다. 재산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고 정신이 황폐해지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사진 pxhere]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은 그 무엇보다 크다. 다소 부당해보여도 조금 손해보고 양보하면 온 가족이 평안해진다. 재산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고 정신이 황폐해지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사진 pxhere]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슬픔은 그 무엇보다 크다. 그렇지만 그것 못지 않게 안타까운 것은, 남겨진 재산 때문에 평소 사랑하던 가족들이 평생을 보지 않을 철천지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쯤 되면 유산은 '복(福)'이 아니고 '독(毒)'임에 틀림없다. 가족 중에는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사람도 있고, 무리하게 떼를 쓰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때로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공평'과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다소 부당해보여도 자신이 조금 손해보고 양보하면 온 가족이 평안하여지고 결국에는 양보한 사람의 자손들이 더욱 복 받게 될 것이며 그 재산을 남겨주신 분도 하늘나라에서 기뻐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재산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고 자신의 마음과 정신이 황폐해질 위험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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