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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미 대사 불러 지소미아 논평에 항의, 과연 옳은 대응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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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의 후폭풍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출하며 한국을 압박해온 미국은 급기야 독도방어훈련까지 문제 삼고 나섰다. 이에 질세라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 파기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비판적 논평을 문제삼아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자제를 요청했다. 한·일 갈등의 전선이 한·미 갈등으로 급격히 확대되는 모양새다.

조세영 외교1차관은 어제 오후 해리스 주한 미 대사를 불러 “미국이 실망과 우려의 메시지를 공개적·반복적으로 내는 것이 한·미 관계와 동맹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공개적 메시지 발신을 자제해 달라”고 했다. 외교부는 ‘협의’란 표현을 썼으나 실제로는 외교적 항의 수단인 대사 초치를 한 셈이다. 상대국 정부의 행동 조치가 아닌 논평만을 문제삼아 대사를 부르는 것은 외교 관례상 보기 드문 일이다. 이례적인 항의 조치가 한·미 간의 견해 차이를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가뜩이나 미국의 조야에서 한·미동맹에 대한 현 정부의 태도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 동맹에 파열음을 일으키고 동맹간의 신뢰를 훼손함으로써 ‘안보 외톨이’를 자처하는 조치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앞서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27일 독도 훈련에 대해 “한·일 간 최근 다툼을 고려할 때 현안을 해결하는데 생산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지소미아 문제로 악화한 한·일 간 갈등 상황에서 일본 편을 든 셈이다. 지난 1996년부터 실시해온 독도방어훈련을 두고 일본은 늘 항의해왔지만, 미국은 중립을 지켜왔다. 그랬던 미국이 부정적 태도로 돌아선 것이다. 이는 한국이 미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지소미아를 깼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미 의회도 비판에 가세했다. 엘리엇 엥겔 하원 외교위원장은 “지소미아를 끝내기로 한 문재인 대통령의 결정을 몹시 우려한다”고 했다. 공화당 간사인 마이클 매콜 의원 역시 “한·일 정보 공유의 미래가 의심스러워진 데 실망했다”고 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데 정부만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어제부터 한국은 일본의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됐다. 정부는 한·미 동맹, 나아가 한·미·일 삼각 협력의 상황 악화 방지와 재복구를 위해 발상을 전환하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