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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해소된 386에의 부채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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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팀 차장

최민우 정치팀 차장

2017년 11월 국회 운영위. 전희경 한국당 의원은 “청와대가 주사파 전대협에 의해 장악당했다”고 질타했다. 그러자 당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 의원 말에 매우 모욕감을 느낀다”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그러면서 “5공, 6공때 정치군인이 광주를 짓밟고 민주주의를 유린할 때 의원이 어떻게 살았는지 살피지는 않았다”라며 “거론한 그 사람들은 인생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심지어 “그게 질의냐”라고도 했다.

느닷없는 커밍아웃처럼 보이는 임 실장의 답변엔 ‘어디 감히 너희 따위가’라는 386 운동권의 속내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이는 1980년대 군부독재에서 대학시절을 보낸 이들의 공통된 정서이자 묘한 세대관이었다. 학생운동에 뛰어든 이의 ‘선민의식’과 주변을 맴돈 이의 ‘부채의식’으로 말이다. 이 정부 초대 법제처장으로 현재 청와대 인사수석인 김외숙(52)씨도 인권변호사를 하게 된 이유를 “학생운동에 투신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 옆에서 고시공부를 했던 부채감”이라고 했다. 80년대 소수 운동권을 향한 다수 동료·후배의 ‘주눅’은 그렇게 한 세대를 이어왔다.

그래서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40, 50대의 감정은 복잡하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미안함을 가지며 살아왔는데 ‘더 해 먹었다’라는 배신감과 이제야 짓눌렸던 진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홀가분함이 교차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철승 서강대 교수는 『불평등의 세대』에서 386을 가리켜 “평등의 가치를 한국 사회에 전파했지만, 자신은 연공제에 기반을 둔 동아시아적 위계 문화를 여전히 체내화했다”고 지적한다. “박근혜 정부 붕괴가 박정희 패러다임의 해체”(최장집 교수)를 가져왔듯, 세간엔 “조국 사태로 386 우월감도 시효가 끝났다”라는 말이 많다.

최민우 정치팀 차장